최근 논란중인 가석방제도는 19세기중엽 영국에서 수형자 통제와 과잉구금의 해소를 위해 시행된 후 미국과 유럽 각국에 전파돼 현재는 대다수의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53년 제정된 ‘형법’에서 가석방심사위원회가 적격여부를 결정해 법무장관에게 신청하는 절차로 돼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신년 언론 인터뷰에서 “꼭 마지막 하루까지 다 채워 100% 처벌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여전히 부정적 여론이 우세한 기업인 가석방에 대해 자칫하면 여론의 뭇매를 불러와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는 걸 잘 알면서도 이런 강한 주장을 하는 이유가 있어 보인다. 지난해 성탄절에도 정부가 모범수 614명을 가석방 하면서 기업총수는 싹 제외시켰다.

징역4년이 확정돼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달 말이면 만 2년간의 수감생활을 지나게 된다. 역대 대기업 회장 중 최장기 수감기록이다. 기업인이라는 이유로 선처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는 역차별 발상이 일어나고 애잔함마저 느끼는 재계 분위기가 확연하다. 최 회장에게 기회를 줘서 국내 5대 기업 중 하나가 획기적 변화를 일으킨다면 교도소에서 1~2년 더 살게 하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투자라는 게 ‘가재는 게 편’이라고, 대기업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하긴 기업인은 감옥에서 놓여나도 사회적 감시망을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가석방되는 기업인에게 경제 살리기의 ‘노역’을 부과한다면 국가 사회에 큰 이익이 될 것이란 설득력을 부인하지만은 못할 것 같다. 돈 있는 사람은 일체의 관용을 베풀어서도 안 되고 죄를 지으면 더 무겁게 처벌해야 한다는 건 반기업 정서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동생의 어이없는 행태, 재벌 총수 일가를 위해서는 증거 인멸도 서슴지 않는 대한항공 일부 임직원의 무조건적인 충성의 민낯이 드러나 공교롭게 반기업 정서를 부추긴 것과 결부되는 현실도 안타깝다. 사람 됨됨이가 다 같지는 않다. 가족이 공범일 경우 둘 다를 구속하지 않은 사법적 온정 관례도 안 통한 지 한참이다.

SK그룹은 형제간에, LIG그룹은 부자간, 태광그룹은 모자가 함께 철창에 갇혔다. 이런 사정에 문희상 새정치연합 비대위원장은 “재벌과 대기업 중심의 수출, 투자 정책만으로는 경제 살리기에 한계가 있다”며 기업인 가석방 은전에 반대 입장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대기업 지배주주와 경영자에 대한 사면권 행사를 엄격하게 제한하겠다고 약속했고, 그나마의 공약이라도 지키라”는 야당의 주장이 견고하다.

반면 새누리당의 서청원 최고위원은 “지금 모범적으로 사는 생계범들도 가족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그런 분들도 나와서 다시 경제 활력이나 대타협을 이루는 데 동참할 수 있는데 왜 기업인만 석방하고 그들을 소외해야 하느냐”고 정곡을 찌르고 나섰다. 못 박아서 말하면 그들은 감옥에서 조차 을(乙)의 신세로 외면 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SK 최 회장 등의 가석방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귀 기울여서 들어야 할 대목이다. 서 최고위원 말대로만 돌아가주면 모르긴 하여도 분명히 ‘갑질’논란에 온기류가 작용할 것이다.

‘가재’는 무조건 ‘게’편만 드는 것으로 보이니 작금의 가석방론이 객관적인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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