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계약직 전환 두고 ‘동상이몽’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조기통합을 두고 시작된 불협화음이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양측 합의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양행 통합이 노사합의를 전제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새해 들어 갑자기 얼굴을 바꿨다. 이에 양측은 기존에 작성한 합의서를 고수하는 것에서 벗어나 급작스러운 통합 논의로 접어드는 모양새다.

합병 전후 합의서 소용 없어노사관계 악화일로
갈팡질팡하는 금융위오히려 양측 싸움 일조

애초 외환은행이 하나은행과의 통합을 두고 반발하는 이유는 하나금융지주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면서 외환은행 노조와 서명한 합의서 때문이다. 당시 하나금융은 2012217일 향후 5년간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을 통합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2·17 합의서에 동의한 바 있다.

하지만 2년반이 흐른 뒤 하나금융은 지난해 7IT부문과 카드부문에 이어 양행 조기통합 카드를 꺼내들었다. 합의서에 서명했던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과 함께 자리했던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이미 떠난 상태였다.

김 전 회장의 후임인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돌연 조기통합에 따른 시너지를 열거하며 통합 추진을 강행했다. 이에 맞서 외환은행 노조는 일제히 반발했고 합의서를 지키라며 대규모 집회와 투표를 이어갔다. 하나금융 역시 강경대응하며 외환은행 노조원들의 중징계를 예고해 원래 나빴던 노사관계는 더욱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나마 3개월이 지난 같은 해 10월에는 금융위의 중재로 대화의 장이 마련됐다. 김 전 위원장의 후임인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노사합의가 수반돼야만 통합을 승인할 것이라는 원칙을 강조했다. 그러나 양측의 입장 차가 큰 탓에 논의는 도돌이표를 찍기에 바빴다.

결국 새해 들어 신 위원장은 양행 통합에 관한 입장을 뒤집기에 이르렀다. 신 위원장은 지난 12일 노사합의라는 전제조건이 없어도 통합을 승인할 수 있다고 말을 바꿨다. 이에 외환은행 노조는 예상과 달리 지지부진한 대화 대신 바로 본협상에 들어가자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원칙적 틀에서
부분적 변경으로

현재 양측의 가장 큰 의견 차이는 외환은행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여부다. 외환은행 무기계약직원은 총 2000명으로 외환은행 노조는 추가로 작성한 합의서에 있는 대로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추가 합의서는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과 김기철 전 외환은행 노조위원장이 20131029무기계약 근로자를 20141월 중 6급 행원으로 전환하기로 한다고 서명한 것을 말한다.

그러나 하나금융은 추가 합의서에는 무기계약직을 6급 행원으로 전환한다는 원칙적인 합의만 들어 있으며 세부사항은 노사 협의를 거치기로 했다고 반박 중이다. 결국 전원이 아닌 일부를 선택적으로 전환하며 급여나 승진에 있어서도 차별을 둬야 한다는 논리다.

타행의 경우 국민·신한·우리은행 등은 이미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사례와 계속 무기계약 틀을 유지한 사례가 혼재돼 있다. 또 정규직 전환 시에도 원래 정규직과는 다른 직군을 만들어 차등을 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노조는 관련 합의서를 작성했던 만큼 쉽게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승인 신청도 함께 표류하면서 하나금융 일각에서는 노사합의 없이 승인 신청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편 금융권은 신 위원장의 입장 변화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지난해 KB금융 사태에서도 금융당국이 중심을 잃으면서 일이 커졌다는 비판의 연장선상이다. 사실 하나-외환은행 통합 승인에 있어서도 금융위가 태도를 오락가락 바꾸면서 노사 불화를 키운 면이 없지 않다.

금융권 관계자는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노조의 오랜 반목은 놀라울 것이 없더라도 금융당국의 입장 바꾸기는 지나친 감이 있다면서 합의서에 명시된 내용을 어느 정도 준수하는 선에서 논의가 이뤄지면 지난 KB사태와 같은 파란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nykim@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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