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국회 운영위원회의 출석을 거부하고 사퇴의사를 밝히자 박근혜 대통령이 의원면직시켰다. 김 수석의 국회 출석 거부에 대해 대부분의 정치권과 언론 매체들은 ‘초유의 항명(抗命)’ ‘청와대 비서실의 공직윤리 붕괴’ ‘뻔뻔하기 그지 없다’ 등 일제히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마치 마녀사냥에 나선 듯 했다.

그러나 김 전 수석은 ‘원칙을 지키기 위한 사퇴’였다고 항변했다. 그는 “지난 25년간 특별한 경우 외에는 민정수석이 국회에 출석하지 않는 것이 관행으로 정착돼 왔는데 정치공세에 굴복해 나쁜 선례를 남기기 않기 위해 불출석했다”며 사퇴서를 제출했다.

김 전 수석의 국회 출석 거부를 ‘항명’이라고 질책하는 건 옳지 않다. 그의 국회 출석 거부와 사퇴는 본인이 옳다고 믿는 ‘소신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내던진 의(義)로운 결정으로 평가된다. 특히 그의 출석거부와 자진 사퇴는 고위 공직자들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소신과 원칙을 버리고 윗사람의 비위나 맞추기 위해 굴종한다는 데서 더욱 돋보였다.

김 전 수석에 대한 국회출석 요구는 사실 무근으로 판명된 ‘정윤회 문건’과 민정비서실의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과 관련되었다. 그러나 문제의 의혹들은 김 전 수석이 작년 6월 민정수석으로 부임하기 전에 발생했던 것으로 직접 그와는 관련이 없다. 여기에 그는 국회에 나갈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밖에도 그는 여야가 청와대 정호성 제1부속과 안봉근 제2부속 비서관을 부르지 않고 자신을 출석토록 강요한 데 대해 ‘정치적 거래’로 간주했다. 그래서 김 전 수석은 ‘정치공세’로 여긴 끝에 국회 출석을 거부했다.

김 전 수석의 국회 출석 거부와 사표 제출 동기는 원칙과 소신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는 ‘정치적 거래’를 거부하고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권력의 핵심인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직을 헌 신짝처럼 미련 없이 내던졌다.

그런데도 새정치민주연합측은 “‘청와대 내부시스템’과 ‘공직기강’이 완전히 무너진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개탄했다. 여당인 새누리당측도 “청와대 통제가 안 되고 있다는 게 만천하에 드러났다”고 질책했다. 서울의 조간신문들도 ‘항명’ ‘뻔뻔하기 그지없다’ 등 나무랐다.

하지만 지난 날 정치권과 언론매체들은 기회 있을 때 마다 대통령 참모나 고위공직자들이 대통령 앞에서 말씀이나 받아 적고 침묵해선 아니 되며 옳은 말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NO)’라고 말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대한항공의 조현아 ‘땅콩 회항’ 사건이 터졌을 때도 언론매체들은 재벌기업 오너(주인)의 ‘황제경영’을 질타하며 임직원들은 맹종만 해선 안되고 바른 소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주문했다.

김 전 수석의 국회출석 거부와 사퇴는 저 같이 정치권과 언론들이 그동안 줄기차게 주장했던 대로 맹종을 거부했고 용기 있는 ‘NO’ 였다. 그의 국회 출석 거부는 ‘공직 기강’ 파괴가 아니라 정무직으로서 얼마든지 거부할 수 있는 정치적 소신 표명이었다. 또한 윗사람의 말씀 받아쓰기 거부였고 정치적 원칙 표출이었다. 고위 공직자들의 회전의자 보존을 위한 비굴과 굴종 거부였으며 정치권의 ‘정치공세’에 대한 당당한 ‘NO’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과 언론들은 김 전 수석의 국회 출석 거부에 대해 ‘공직윤리 붕괴’라며 매도했다. 어제 이 말했다가 내일 저 말하며 2중 잣대를 들이대는 정치권과 언론들의 수준을 드러낸 민낯(화장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앞으로도 소신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 정치공세를 거부하며 권력의 핵심 자리를 내던지는 제2, 제3의 김영한 의인(義人)이 나타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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