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680% 이자 감당 못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에 반해 서민경제는 날로 악화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고리사채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벼랑 끝에 놓인 서민들에 있어 사채는 피할 수 없는 마지막 선택일 수밖에 없다. 악덕 고리 사채업자들은 서민들의 이런 절박함을 이용해 온갖 악질적인 수법으로 돈을 뜯어내고 있다. 경찰은 악덕사채업자들을 지속적으로 단속하고 있지만 사채의 폐해는 끊이지 않고 있다.

얼마 전에는 악덕 사채업자의 횡포에 아버지가 딸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고리 사채의 늪에 빠지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에 이 사건의 전말과 사채의 실태를 알아 봤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돈을 빌려주고 터무니없게 높은 이자를 뜯어낸 혐의(대부업법 위반)로 사채업자 김모(30)씨와 백모(33)씨 등 5명을 구속하고 대부업체 직원 등 13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지난 9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 등은 2007년 3월부터 최근까지 서울 강남구 논현동 등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광고를 보고 찾아온 이모(23·여)씨 등 212명에게 연 120~680%의 고리로 돈을 빌려준 뒤 이자로 33억여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렇게 고리 이자를 챙기는 과정에서 이들은 채무자들에게 “돈이 없으면 몸으로라도 때우라”며 성매매를 강요하기도 했다. 이뿐 아니라 김씨 등은 채무자들의 주변인들 전화번호를 입수해 “가족과 친구들에게 모든 사실을 알리겠다”고 협박을 일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채무자들 중 여대생 3명은 이들의 강요에 못 이겨 서울 강남의 유흥업소에 취업해 돈을 벌어야 했다”며 “이들은 유흥업소에 취직시킨 여대생들에게 성매매를 하게 한 뒤 화대를 빼앗기도 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밑 빠진 독에 물 붇기

경찰조사 결과 이들은 매일 일정액을 갚지 않으면 다시 원금에 이자를 포함해 제대출하는 이른바 `꺾기'수법으로 채무자들을 벗어날 수 없는 수렁에 가둔 것으로 드러났다. 또 채무자들은 ‘꺽기’로 늘어난 대출금을 갚기 위해 다시 다른 사채업자의 돈을 끌어 써야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관계자는 “채무자들 중 일부는 거의 삶을 포기한 상태나 마찬가지였다”며 “사채업자들은 사채를 이용해 채무자들을 노예로 만든 뒤 고정적인 수입원으로 이용한 셈”이라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등록금 마련을 위해 사채를 쓴 한 여대생은 사채 빚을 갚기 위해 강제로 유흥업소에 취직해야 했다”며 “이 여대생의 아버지는 딸이 사채 빚에 쫓겨 유흥업소에 취직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 격분한 나머지 딸을 살해한 뒤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전했다.

경찰이 전하는 이 안타까운 사연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2007년 3월 여대생 A씨와 그 친구 2명은 등록금 등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생활 정보지를 보고 대부업자에게 각각 3백만 원씩을 빌렸다. 하지만 수입이 일정치 않은 이들이 제때에 돈을 갚기란 쉽지 않았다. 연체가 시작되면서 여대생 3명의 지옥같은 나날도 시작됐다.

제때 돈을 갚지 못하자 ‘꺾기’ 수법으로 이자가 배로 뛰면서 1년 사이 1500만 원으로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업자의 협박도 강도를 더해갔다. 두려움에 떨던 A씨 등 3명은 결국 각서를 쓰고 지난해 6월 강남의 한 유흥업소에서 성매매를 해야 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꽃다운 나이에 캠퍼스를 거닐며 미래를 꿈꿔야 할 여대생들이 사채업자에 시달리며 밤마다 성매매를 해야 했지만 그 대가는 아무것도 없었다. A씨 등이 성매매로 번 돈은 고스란히 사채업자의 손에 쥐어졌다. 더욱 끔찍한 것은 이렇게 막장 인생을 살아도 사채 빚은 계속 늘어만 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채업자들은 인정사정없었다. 경찰에 따르면 업자들은 A양 등에게 “24시간 내에 연락이 안 되면 부모나 남자친구 등 주변 사람들에게 성매매 사실을 알리겠다”고 협박하는 수법으로 A양 등에게 족쇄를 채웠다.

또 사채업자들은 성매매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이 만족스럽지 못하자 가족들에게 연락해 빚을 대신 갚으라고 협박하기 시작했다.

결국 모든 사실을 알게 된 A양의 아버지는 딸의 유흥업소 취업 사실을 알고 격분했다. 딸의 빚을 어떻게든 갚아보려 애썼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A씨의 아버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딸을 목 졸라 살해하고 자신도 평택의 한 저수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리사채의 끝에 선 사람들

사채업자들은 A씨 부녀가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악행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한 술 더 떠 A씨 친구 2명에게 죽은 A씨의 빚까지 대신 갚으라고 협박했다. 견디다 못한 A씨의 친구들은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이런 사실들을 경찰에 털어놓았고 업자들은 포승줄을 받게 됐다.

한편 경찰은 무등록 대부업체와 고리사채 업자들에 대해 집중단속을 펴겠다는 방침이다.

광역수사대의 한 관계자는 “대부업체에 의한 피해가 날로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앞으로 꾸준한 단속을 통해 피해자를 줄여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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