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주인 조씨, 화려한 인맥으로 감옥행 면해”

조씨와 관련된 검찰의견서

“그 사람(고시원 주인)이 저지른 불법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비슷한 다른 사건의 경우 고시원 주인이 불구속에 무죄로 방면된 경우는 없었습니다. 유가족과의 소송 현장에 무려 6명의 ‘대규모 변호인단’을 대동하고 나와 기를 죽이더니 뻔뻔한 얼굴로 자신의 책임을 덮으려 하더군요.”

지난해 10월 20일 아침 발생한 서울 논현동 D고시원 방화 살인 사건으로 막내 여동생(故 서진(여·당시 21세))을 잃은 서성봉(31)씨는 고시원 주인 조모(62)씨를 향한 적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범인 정상진은 붙잡혔지만 유가족들의 싸움은 반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직접적인 가해자는 법의 심판대에 섰지만 상황을 악화시킨 ‘간접적인 가해자’가 여전히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까닭이다.

유가족의 분노는 극에 달해있지만 정작 조씨는 “자신도 피해자”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조씨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대리인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조씨의 대리인은 “유가족들이 일방적으로 사장님을 모함하고 있다. 그분들도 안됐지만 사장님 역시 피해자라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피해자들이 지목한 사건의 또 다른 가해자는 다름 아닌 고시원 업주 조씨다. 실제 조씨는 비슷한 사건을 경험한 다른 고시원 업주들과 달리 유일하게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으며 최근 유가족들이 제기한 형사 소송에서 승소해 무죄방면 되는 ‘호사’를 누렸다.

이런 가운데 조씨가 경찰 고위층과의 인맥을 이용해 사법처리 과정에서 일종의 ‘특혜’를 누린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다. 평소 조씨가 경찰 최고위층을 들먹이며 친분 관계를 강조했다는 주변 상인들의 증언과 그를 감싸는 경찰의 행태는 충분히 의심을 사고도 남을만하다.


“조씨, 관할 지구대 귀한 손님”

형사소송에서 패한 유가족들은 남은 민사소송에 희망을 걸고 있다. 그러나 무려 6명의 대규모 변호인단을 조직해 방어에 나선 조씨의 기세에 맥이 풀린 모습이다. 이미 경찰로부터 ‘사건을 적당히 마무리하라’며 적잖은 압력에 시달려왔던 유가족들은 힘든 싸움을 앞두고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강남 일대에서 200억원대 자산가로 알려진 조씨는 사고가 발생한 D고시원 외에도 여러 사업에 손을 뻗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 상인들의 말에 따르면 조씨는 평소 지인들에게 “경찰 고위층과 친하다”는 이야기를 자랑삼아 해왔다. 한 상인은 “조씨가 평소 관할 지구대에 매일 같이 출입해 담당 경찰관과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자주 봤다”고도 말했다.

유가족들은 평소 조씨의 행동과 주변 상인들의 말로 유추해볼 때 그가 어떤 식으로든 경찰에 줄이 닿아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해자 가족들은 “경찰 조사가 시작된 직후부터 마치 경찰이 조씨를 비호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호소했다.

유가족 서씨에 따르면 사건이 발생한 뒤 담당 형사들은 유가족들에게 “조용히 덮고 넘어가자”며 사건 무마를 종용했다. 서씨는 “당시 사건을 담당한 경찰관이 사망조서를 작성하러 간 동생에게 ‘이쯤해서 조용히 사건을 덮자’고 말해 흥분한 동생과 경찰사이에 한바탕 시비가 벌어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 같은 경찰의 ‘이상한 작태’는 사건 발생 보름여 뒤인 지난해 11월 4일 피해가족들이 정확한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기로 하면서 노골적으로 불거졌다. 기자회견 일정을 언론사에 알리자마자 경찰은 유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꼭 이렇게 해야겠느냐” “적당히 마무리 짓고 넘어가야한다”며 회견 자체를 강하게 만류한 것.

그러나 피해가족들은 예정대로 기자회견을 열었고 이 같은 사실이 기사화 된 바로 다음날 고시원 주인 조씨가 뒤늦게 불구속 입건돼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이후 조씨는 검찰로부터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그는 유가족들이 제기한 형사소송에서도 무혐의 판결을 얻어 승승장구했다. 이 과정에서도 조씨가 자신의 막대한 재력과 인맥을 동원해 법망을 빠져나왔다는 정황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조씨는 유가족들이 제기한 소송에 대항하기 위해 법무법인 대륙·아주 소속의 변호인 6명을 변호인단으로 선임했다. 개인간의 소송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친 ‘오버액션’이 아니냐는 빈축을 사기에 충분한 대목이다.


“전직 고검장과 친분 있는 게 잘못이냐”

주목할 것은 조씨의 변호인단이 소속된 법무법인에 전직 서울고검장 출신 A변호사가 대표로 재직 중이라는 점이다. 조씨는 A변호사와도 상당한 친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조씨가 자신의 재력과 A변호사의 영향력을 이용해 소송 과정에서 상당한 특혜를 누렸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조씨는 A변호사와의 친분 여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왜 그런 걸 물어보느냐. 친분이 있는 게 잘못된 거냐”며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그는 “더 이상 그 사건에 대해서 답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대리인’에게 서둘러 전화기를 넘겼다.

조씨 대신 전화를 받은 남성은 자신을 “사장님의 대리인”이라고 소개했다. “법적 대리인(변호사)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남성은 “어디 기자냐. 그런 것 묻지 말고 할말만 하라”며 시종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박 변호사와 조씨 사이의 친분 관계에 대해 묻자 남성은 “그런 소리를 어디서 들었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사장님도 피해자다. 일방적으로 유가족 말만 들어서는 안된다. 피해자(조씨) 입장도 생각해 줘야하는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당시 사건으로 고시원 운영이 중단됐을 뿐 아니라 고시원이 포함된 상가 점포 전체가 고사되다시피 해 물질적·정신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조씨의 대리인은 “사장님께서 요즘 건강까지 나빠져 병원에서 통원치료를 받고 계신다”고 덧붙였다. ‘조씨가 평소 경찰 고위층과의 친분을 자랑한 적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절대 아니라며 펄쩍 뛰었다.

대리인은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절대 그런 말씀하고 다니실 분이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그는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계속해 “사장님도 피해자”라는 주장을 꺾지 않았다.

한편 조씨 측은 유가족과 피해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느냐고 묻자 “몸이 너무 아파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며 피해갔다. 그러나 불과 일주일 전 문제의 고시원 일대를 산책하는 조씨의 모습이 목격됐으며 사건이 발생한 뒤 조씨는 유가족들에게 유감이나 사과의 말은커녕 전화 한 통 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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