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죽은 수녀 이름으로 가짜 도장 만들어 국유지 빼돌려”

심종구 옹이 20여년간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토지 사기 족보. 검찰은 이 족보의 신뢰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부천시 국유지와 사유지가 공무원들에 의해 조직적으로 빼돌려진 사실이 한 노인의 집념어린 추적에 의해 드러났다. 부천에 거주하는 심종구(72)옹은 20여 년 전 부친이 남긴 땅을 찾으려는 과정에서 깜짝 놀랄 사실을 발견했다. 부친이 남긴 땅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정확히 말해 땅은 그대로 있었지만 서류상으로 그 땅은 다른 사람의 소유로 돼 있었다. 심 옹은 혹시 자신이 땅의 지번을 잘못 알았거나 뭔가 착오가 있었을 것이라 판단하고 몇 번을 확인해 봤다. 하지만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심 옹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에게 땅을 말 그대로 강탈당한 것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부친이 남긴 땅을 되찾기 위한 노력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땅을 찾는 작업은 생각보다 훨씬 험난했다. 아무리 증거를 찾아내 보이고 내 땅이라 주장해도 공무원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심 옹을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 그러면서도 심 옹이 자료를 내밀며 “내 땅이 다른 사람 명의로 돼 있는 이유를 설명해 보라”고 요구하면 꼬리를 내리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답답해진 심 옹은 지금까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봤으나 철옹성같은 공직사회에 자기주장을 펴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다름 아니었다. 심 옹이 20년간 조사한 것은 무엇일까. 그 내용을 살펴보면 기가 막혀 벌어진 입을 다물기 힘들다.

심 옹의 주장에 따르면 부천시 공무원과 법조계 공무원이 짜고 등기서류 등을 조작해 땅을 빼돌렸다. 장기간에 걸쳐 작업이 이뤄졌기 때문에 빼돌린 땅은 백만 제곱미터는 족히 된다는 게 심 옹의 설명이다.

심 옹은 “예전엔 토지 관리가 허술했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노는 땅을 몰래 접수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내가 알기로 지방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고 아직도 일부에서 이렇게 땅을 챙기는 공무원이 있다. 부천지역 국유지와 사유지의 상당부분이 몇몇 공무원에 의해 조직적으로 사유화 됐다. 부천시는 이를 알면서도 은폐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심 옹의 주장을 정리해 보면 25년 전 부천시 공무원과 법원 직원이 국유지를 국가에 상환하지 않고 서류를 꾸며 특정종교재단에 불법으로 넘겼다. 이어 서류를 조작해 이 땅을 다시 사유지로 바꿔 불법 매매했다는 것이다. 심 옹은 이를 설명하면서 서류 뭉치를 꺼내보였다.

심 옹은 “이 서류에 보면 등기부등본에 도장이 찍혀 있는데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가짜라는 것을 알 수 있다”며 “두 건의 토지 등기가 3~4일 간격으로 동일인 명의로 작성됐는데, 도장이 서로 다르다. 또 땅을 매입한 이는 이미 오래 전에 죽은 수녀로 돼 있다. 서류대로라면 죽은 사람이 땅을 매입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부천시는 이에 대해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심 옹은 분통을 터뜨렸다.


부동산 놓고 겉과 속 다른 종교단체

또 심 옹은 “수녀가 속한 종교단체도 이 땅이 불법 매입된 것을 알면서도 땅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며 “부천시 공무원과 해당 종교단체가 땅 장사를 하면서 서로 은밀한 거래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에 대한 증거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심 옹의 주장에 따르면 공무원들이 도시계획 과정에서 수만제곱미터의 국유지와 상속자가 없어 환원되는 개인소유 토지(무주분 토지)를 종교단체와 짜고 관련 서류들을 조작, 불법 상환하거나 불법 증여 매매했다는 것이다.

심 옹이 문제 삼는 땅 중 국유지는 부천시 소사구 소사동 20-2, 20-4, 20-5, 20-6번지 등 18,918.9m²다. 이 땅은 지난 61년 특정종교재단(재단법인 M성당)에 상환 완료되어 66년 7월 이 토지들이 부산의 모수녀회에 증여된 것으로 등기되어 있다. 그러나 심 옹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토지는 정부기록보존소의 분배농지상환대장에 등재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국세청의 국유재산 매각사실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심 옹은 “부천 지역 공무원들이 어떻게 땅을 빼돌렸지 조사하는데 내 반평생을 바쳤다. 그 결과 1961년부터 2008년까지 공무원들이 부천 국유지를 빼돌린 과정을 상세히 담은 족보를 만들었다”며 커다란 종이 두루마리를 펼쳐 보였다. 심 옹이 제작한 이 족보는 실로 놀라웠다. 연도별로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땅을 빼돌렸는지 상세히 기록돼 있음은 물론 각 해당 연도에 수사당국이 공무원들의 혐의를 조사한 내용까지 기록돼 있었다.

족보에 따르면 인근 부천 소사동 19번지와 산 6-1, 7-1, 8-2, 20-1, 20-11번지의 약 16,830m²는 수녀인 유00씨(1972년 사망)가 지난 63년부터 66년까지 국가 및 개인으로부터 매입하여 소유해온 것으로 기록돼 있다. 또 이 땅은 유씨의 매매나 증여사실도 없이 특정종교단체에 매매되었고, 단체에 이전되거나 증여된 것으로 등재돼 있다. 즉 상속자가 없으므로 당연이 국유재산으로 귀속되어야 할 국가재산이 불법으로 증여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20년간 사기 행각 기록 족보제작

심 옹은 “이 사건을 내가 추적하자 전직 공무원들 중 정모씨와 박모씨 그리고 김모씨 등이 자살했다. 자신들의 비리가 드러나 뒤늦게 법의 심판을 받느니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이들이 죽는 바람에 비리를 캐내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부천시는 심 옹의 이런 주장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부천시 측은 심 옹이 조사한 내용을 면밀히 조사했으나 불법성 여부를 찾을 수 없어 이를 심 옹에게 통보했다고 밝혔다. 또 적지 않은 부천의 국유지가 불법으로 개인 소유화됐다는 심 옹의 주장에 대해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호히 못 박았다. 하지만 심 옹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반박해 달라는 요청에는 “현재 자료를 찾기 힘들어 답변이 어렵다”며 답을 피했다.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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