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의 조삼모사…중소형사·가입자 ‘갸웃’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실손의료보험 체계 개편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보험업 감독규정 개정안이 다시금 보험업계의 이슈로 떠올랐다. 특히 오는 4월부터 출시되는 모든 실손보험 상품은 보험료가 기존 상품보다 낮아지고 자기부담금이 20% 이상으로 책정된다. 들여다보면 소비자들의 호주머니에서 직접 나가는 보험료가 줄어드는 대신 실제 질병이나 사고를 당했을 때 가입자가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늘어나는 식이다

자기부담금 두 배로 뛰어신규 가입 시 따져봐야
악화된 손해율 핑계로 보험료는 이미 인상 랠리

보험업계가 실손의료보험 체계 개편을 앞두고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개편안에 따르면 향후 새로 나오는 실손보험 상품의 보험료는 내려가고 자기부담금은 올라간다.

그러나 주판알을 튕겨보면 소폭 인하된 보험료보다는 당장 병원에 갔을 때 가입자의 부담금이 급증해 실손보험 성격 자체의 의미가 퇴색된다는 분석이다.

또 신규 가입자의 경우 기존 상품과 함께 선택의 여지를 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새 상품을 선택해야만 한다. 게다가 올해 초 각 손해보험사들이 손해율 악화를 이유로 일제히 실손보험료를 올린 상태에서 이 같은 개편은 오히려 소비자들에게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지출한 의료비
어디까지 보장

실손의료보험은 실제 손실을 보장하는 보험으로 가입자가 병원이나 약국 등에서 실제로 지출한 의료비를 보상해주는 상품이다. 과거 도입기에는 의료비의 최대 100%까지 전액보장을 내건 상품이 많았다. 그러나 200910월 금융위의 실손보험 표준화 이후 최대 90%까지 보장하는 상품만 출시할 수 있도록 통일됐다.

또 이번 개편으로 보험사들은 오는 4월부터 최대 80%까지 보장하는 상품만 출시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연간 자기부담금 상한 총액은 200만 원으로 취약계층을 보호할 계획이다. 신규 가입자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없이 새로운 자기부담금 비율이 적용된 상품만 들 수 있다. 기존 가입자의 경우 선택적으로 신상품으로 전환하거나 원래 계약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더불어 내년 1월부터는 고가 의료시술은 보장이 제외되는 대신 보험료가 큰 폭으로 인하되는 상품이 나오게 됐다. 상대적으로 병원에 갈 일이 적은 소비자들이 가입하면 평소 납부하는 보험료를 낮출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된다. 그러나 비정기적으로 발생하는 자기공명영상(MRI)이나 로봇 등 비싼 시술은 본인이 전액 부담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선택적 자유
침해 주장도

현재 실손보험 가입자는 지난해 약 3000만 명을 넘기며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가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중복보장이 되지 않는 실손보험 특성상 추가 가입의 여지가 적은 상황에서 이 같은 금융당국의 개편안은 다소 물음표를 남긴다.

사실 실손보험 논쟁은 보험사들이 정작 실손보험 사업을 해보니 생각보다 손해율이 나빠 보험료를 올리려던 데서 시작됐다. 금융당국이 보험료 인상을 엄격히 틀어쥐고 있는 만큼 대놓고 불만을 표하지는 못했지만 꾸준히 상황을 어필한 것도 같은 연장선상에서다.

이에 금융당국은 개편안으로 보험사들이 보험료를 올리지 않는 대신 소비자들의 자기부담금을 높일 수 있도록 우회적인 길을 열어줬다. 그러나 국내 손보사 대부분은 이미 지난달 실손보험료를 평균 11.67% 올린 상태다. 그것도 손해율이 나쁜 중소형사보다 상대적으로 봐줄 만한 대형사의 인상률이 훨씬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손보사들에 이어 생보사들도 다음 달 실손보험료를 올릴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들은 5년간 묶여있던 실손보험 요율 인상이라는 명분 하에 갱신 시 보험료는 낼 대로 내면서 자기부담금은 늘어나는 늪에 빠지게 된다. 결국 명목상 보험료는 낮추되 실제 자기부담금은 높이는 금융당국의 조삼모사에 일부 대형 보험사를 제외한 중소형사와 소비자들의 고민만 깊어지게 된 셈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이번 개편안으로 손해를 보는 것은 자기부담금이 강제적으로 증가하는 신규 가입자들과 보험료를 크게 인상하지 못한 중소형 보험사들이라며 손해율을 낮추는 것은 자기부담금 증가가 아닌 비급여 진료비에 대한 외부기관의 심사 등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nykim@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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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 이미 오른 실손보험료얼마나 올랐나

평균 두 자릿수 인상대형사일수록 많이 올려

실손보험을 판매 중인 11개 손해보험사 중 실손보험료를 올린 10개 손보사의 인상폭이 공시됐다. 이들 보험사는 실손보험료를 최소 7.1%에서 최대 17.9%에 이르기까지 높여 평균 두 자릿수의 인상률을 기록했다.

특히 삼성화재는 평균 인상률 17.9%로 손보사 중 인상률이 가장 높았다. 이어 현대해상, 메리츠화재가 16.0%로 공동 2위를 달렸다. LIG손보와 동부화재는 각각 15.9%, 15.0%4~5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손보업계 관계자는 이번 실손보험료 인상은 5년 만인 데다가 그간 손해율에 비해서는 높은 인상폭이 아니라고 본다면서도 다만 손해율이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은 대형사가 보다 인상폭이 컸다는 점에서 업계의 의견이 갈리고 있다고 말했다.

nykim@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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