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길재 통일부장관은 지난 6일 한 민간단체 주최 특강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을 정면 힐책(詰責)했다. 그는 이 대통령의 회고록 중 남북관계와 관련한 부분에 대해 “그 뒤에 있는 내용은 제가 다 알고 있다.”며 “그렇게 말하면 안된다. 알고 있다고 해서 다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 것”이라고 훈육하듯 면박을 주었다. 현직 장관으로서 직전(直前) 대통령, 그것도 같은 당 소속 대통령에 대해 무례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 그는 ”그 뒤에 있는 내용은 제가 다 알고 있다.“며 자기를 과시하기도 했다.

류 장관은 이 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통일부를 외교통상부에 통합하려던 시도와 관련해서도 질책하였다. 그는 “2008년에 통일부가 없어질 뻔했는데 지금도 (통일부) 직원들은 그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갖고 있다.”며 “당시 본부 직원 80명의 옷을 벗겼다. 말이 안 된다. 그래놓고 통일을 하겠다고...”며 아랫사람 꾸짖듯 했다.

물론 통일부를 외교부로 합치려던 이 전 대통령의 구상은 옳지 못했다. 나도 당시 ’일요서울’ 2008년 2월3일자 칼럼 ‘애물단지로 전락한 통일부 없애야 하는가’란 제하의 글에서 반대했다. 나는 이 글에서 햇볕정책 정권 시절 ‘북한 로동당의 하부기구가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빗나가던 통일부’는 ‘밉더라도 죽이지 말고 살려야 한다.’며 ‘통일부는 통일의 그날까지 살려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류 장관이 직전 대통령의 부처 인사개편을 두고 직원들의 “트라우마” 운운하며 “말이 안 된다.”고 책망한 것은 주제넘은 표현이었다. 현직 장관으로서 직전 대통령에 대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를 벗어난 말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그는 통일부 직원 “트라우마” 운운하며 직원들에게는 듣기 좋은 인기영합 발언을 토해냈다.

류 장관은 이 전 대통령의 통일부 인사개편과 관련, “그래놓고 통일을 하겠다고” 반박했는데, 이 전 대통령이 반(反)통일적인 몹쓸 짓을 한 것으로 들리게 했다. 어느 정권이든 새로 들어서면 인사개편에 나서는 게 통과의례로 되어있다. 특히 직전 정권과 이념적 편차가 심한 이명박 정부의 경우 많은 인적 쇄신이 필요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 장관은 “그래놓고 통일을 하겠다고”며 개탄했다. 이 전 대통령과 각을 세운 야당 의원이나 할 말이었다.

그밖에도 류 장관은 이 전 대통령이 5.24 대북제재 해제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한 데 대해서도 토를 달았다. 류 장관은 “남북대화를 하게 되면 5.24 제재조치를 해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대화만 되면 5.24 조치는 당장이라도 풀릴 수 있는 걸로 오해케 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월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5.24 조치가 “북의 도발에 대한 보상이란 잘못된 관행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나온 것”이라며 5.24 조치를 쉽게 풀어줄 대상이 아님을 시사했다. 다만 그는 “어쨌든 남북이 당국자간에 만나서 얘기를 해야 한다.”고만 말했다. 그는 5.24 조치가 북한의 고약한 도발 버릇을 바로잡기 위한 것임을 역설했는데 반해, 류 장관은 북한이 대화에 응해오면 해제해 줄 수 있는 가벼운 문제로 받아들이게 했다.

그러나 북한이 대화에 나온다고 해도 천안함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쉽게 수용할 리 없다. 류 장관은 대화가 열리면 5.24 조치를 “해제할 수 있는 계기“된다고 밝힘으로써 북한이 천안함 도발 사과를 하지 않고 어물어물 넘겨도 해제해 주려는 게 아닌가 의심케 했다.

지난 6일 통일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 내용을 언급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류 장관은 대변인의 말대로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에 대해 “언급”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는 통일부 대변인만 못했다. 류 장관은 대변인에게서 배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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