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세미인 50명 쓰러트린 ‘최악의 카사노바’ 비결은?

김 전 경위가 에 제공한 당시 사건기록.(아래 왼쪽) 박씨 검거 과정이 진술된 경찰기록 중 일부(아래 오른쪽)

“모 감독이 골프 치러 오는데 술 접대를 강요받았습니다.(중략) 접대할 상대에게 잠자리 요구를 받기도 했습니다. K대표는 저를 방에 가둬 놓고 손과 페트병으로 머리를 수없이 때렸습니다...” (故 장자연의 친필 문건 中)

지난 3월 촉망받던 신인 여배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인이 숨진 직후 그가 생전에 남긴 친필 문건이 공개되자 엄청난 후폭풍이 몰아쳤다. 문건에는 고인이 소속사 대표와 방송 관계자들로부터 당한 추악한 폭행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던 것. 일명 ‘장자연 사건’으로 비화된 고인의 죽음은 거대한 연예권력이 저지른 ‘사회적 타살’이라는 점에서 전국을 뒤흔드는 대형 사건이었다.

“장자연씨 사건을 보면서 그때 피해자들이 생각나더군요. 순진한 아가씨들을 꾀어 스타로 만들어준다는 감언이설로 유린한 추악한 범죄자가 꼭 20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기자 앞에 내밀어진 건 누렇게 색이 바랜 수사기록 한 건과 ‘1989년 12월 20일’ 날짜가 찍힌 당시 일간지 사건기사 몇 꼭지였다. 그리고 허름한 여관방 침대로 보이는 곳에 누워 요염한 자태를 뽐내는 미녀들의 누드사진 몇 점도 들어있었다. “이 여인들을 홀린 건 단지 ‘유명 프로듀서’라는 범인의 한마디였습니다. 스타로 키워주겠다는 제안에 50명이 넘는 절세미녀들이 낯선 남자 앞에서 옷을 벗고 몸을 내줬죠.”

20년 전 사건을 회상하며 김봉용 전 경위는 가볍게 혀끝을 찼다. 서울시경 형사과 재직시절 후배 형사의 손가락까지 물어뜯으며 격렬하게 저항하던 범인과의 일전이 생각난 듯 이야기 보따리를 푸는 김 전 경위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국민드라마’로 불리는 수사반장 속 ‘마당발 김 형사’(김상순 분)를 기억한다면 김봉용 전 경위의 존재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1971년 3월 첫 전파를 탄 뒤 무려 18년 동안 최장수 드라마 기록을 세운 ‘수사반장’에 등장하는 넉살좋은 ‘김 형사’는 바로 김 전 경위를 모델로 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수사반장> 속 마당발 김 형사 바로 나”

1960년대 초 청와대 경비대로 경찰에 투신해 서울시경 형사과로 자리를 옮긴 김 전 경위는 36년 동안 폭력계와 강력계를 오가며 80~90년대 서울시내에서 벌어진 굵직한 사건·사고를 전담했다.

그는 1976년 조직폭력배 김태촌이 주도한 신민당사 각목 난입 사건을 최 일선에서 진압했으며 1980년 5월 비상계엄령 발효로 삼청교육대가 설치될 당시 서울시경 폭력계 반장으로 재직하며 김태촌, 조양은 등 국내 조직폭력배 계보 상위에 오른 요주의 인물 상당수를 검거해 주목받았다.

1990년대 말 서울 성동경찰서 강력계장을 거쳐 광진경찰서 강력계를 마지막으로 은퇴한 뒤 드라마 ‘수사반장’ 속 박 반장(최불암 분)의 실제 모델인 최중락 전 총경(현 삼성에스원 고문)과 ‘수사반장’ 제작진이 주축이된 ‘반장네 식구들’의 일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김 전 경위는 유독 드라마나 방송계와 인연이 깊다. 70년대 최고의 인기드라마였던 ‘수사반장’에 자신의 캐릭터를 등장시켰을 뿐 아니라 실제 드라마 제작 과정에 참여해 촬영 현장을 직접 돌보기도 한 것. 더구나 김 전 경위의 아들은 최근 드라마 ‘천추태후’ ‘바람의 나라’ 등에 출연한 인기 탤런트 김명수(43)씨다.

냉철한 수사관의 본성 못지않게 예술적 감각까지 지닌 걸까. ‘수사반장’ 촬영 중 제작진 일손이 달리면 직접 카메라를 둘러매고 촬영장을 뛰어다녔다는 김 전 경위. 그는 가장 인상 깊었던 사건으로 거물 프로듀서를 사칭한 희대의 카사노바 이야기를 꼽았다.


‘잡히면 끝장’ 경찰 손가락 물어뜯은 범인

예나지금이나 화려한 연예계를 동경하는 여심(女心)은 불변의 법칙인 듯 하다. 1989년 12월 18일 저녁. 서울 신촌 A레스토랑 인근에 잠복한 서울시경 형사과 김봉용 반장과 부하 수사관들은 엄동설한에 꽁꽁 얼어붙은 몸을 움츠리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일부러 형사 티를 내지 않으려 꿰어 입은 슈트는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범인과 피해자 지모(당시 22세·여)씨가 만나기로 한 건 8시. 그러나 약속시간을 훌쩍 넘겨도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긴장한 얼굴의 지씨가 약속장소였던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설마 범인이 눈치를 챘을까봐 순간 뜨끔했습니다. 아무리 일반인처럼 꾸며도 잠복형사는 티가 나기 마련이니까요. 알고 보니 범인이 지씨를 옆에 있는 다른 식당으로 부른 거였습니다. 뭔가 낌새를 챘다는 얘기였죠.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어 검거조를 곧장 투입했습니다.”

지씨가 불려간 근처 N레스토랑을 급습한 수사팀은 곧 젊은 여인을 앞에 앉히고 싱글싱글 미소를 날리는 용의자를 확인했다. 30대 초반의 ‘꽃미남’인 그는 굳은 표정의 사내들이 포위망을 좁혀오자 금세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나. 둘. 셋.

짧은 심호흡과 함께 날렵한 형사들이 일제히 범인을 덮쳤다. 소스라치게 놀란 지씨의 비명과 잡히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용의자의 고함소리까지 겹쳐 조용한 레스토랑 안은 순식간에 전쟁터로 변했다.

눈앞을 막고 선 젊은 형사의 입가를 주먹으로 있는 힘껏 후려친 범인은 곧장 방향을 틀어 달아나려했다. 그를 놓치지 않기 위해 또 다른 후배 형사가 그의 덜미를 붙잡는 순간, “으악!” 고통에 찬 절규가 터져 나왔다. ‘잡히면 끝장’이라는 생각을 한 걸까.

말끔한 양복에 수려한 용모를 가진 범인은 자신을 붙잡은 형사의 왼쪽 가운데 손가락을 있는 힘껏 물어뜯어버렸다. 경찰들을 따돌리려는 용의자의 몸부림에 결국 김 반장과 나머지 형사들까지 나선 상황. 격투 끝에 수갑을 채우고 난 뒤에야 남자는 얌전해졌다.


“베드신 잘해야 스타 된다니까!”

검거된 용의자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B증권 소속의 박모(당시 32세)씨였다. 그러나 문제는 박씨에게 몸을 주고 돈을 뜯긴 여성들은 하나같이 그를 공중파 방송사의 유명 PD로 알고 있었다는 것. 명백한 사기였다.

“당시 언론보도에는 박씨가 유명 증권사 직원으로 엘리트인 것처럼 묘사됐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박씨는 검거되기 한참 전 회사에서 해고당한 상태였고 유명PD 행세를 하며 여성들을 상대로 용돈벌이를 하는 잡범에 불과했죠.”

피해자들과 박씨가 털어놓은 그의 범행 수법은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박씨는 수려한 용모와 타고난 언변을 무기로 미인들에게 접근해 자신을 공중파 방송사 PD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번에 새로 일일연속극 제작을 맡았는데 여주인공을 맡을 신인 여배우감을 찾고 있다’며 여인들의 환심을 산 것. 김 전 경위의 말을 들어보자.

“길거리 캐스팅을 미끼로 내민 박씨에게 19살 소녀부터 20대 초반의 대기업 비서까지 줄줄이 걸려들었죠. 이들은 유명 PD라는 박씨의 거짓 배경에 속아 순결까지 바친 셈입니다. 출세하기 위해 고위층과의 잠자리를 강요당한 장자연씨와 일면 닮았지요.”

김 전 경위가 기자에게 제공한 당시 사건 기록에 따르면 박씨에게 몸을 뺏긴 피해자는 회사원 권모(당시 19세)양을 비롯해 확인된 것만 30여명이 넘는다. 박씨는 경찰 조사에서 50여명의 여인들을 농락했다고 실토해 충격을 줬다.

“참 불쌍한 여인들이죠. 스타가 될 수 있다는 꾐에 빠져 모텔까지 따라갔으니. 박씨는 카메라 테스트를 한다며 피해자들의 옷을 벗기고 누드사진을 찍었습니다. 또 자기에게 잘 보여야 좋은 역할을 얻을 수 있다며 피해자를 속여 성관계를 갖기도 했지요.”

김 전 경위의 사건기록에 따르면 박씨는 1989년 8월 20일 서울 을지로 R쇼핑 앞에서 미성년자였던 권모(19)양에게 접근, 자신을 유명 PD라고 속여 인근 여관으로 유인했다.

박씨는 ‘촬영 전 몸매를 봐야한다’며 권양을 옷을 모두 벗긴 뒤 이를 카메라에 담았다. 그는 또 “출세하려면 PD에게 잘 보여야 한다”며 권양과 잠자리를 가지기도 했다.

박씨의 파렴치한 욕망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연기를 잘하기 위해서는 성적 묘사에 능해야 한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들어 권양에게 강제로 자신의 몸을 애무하도록 했다. 그가 촬영한 피해자들의 은밀한 사진은 카메라 테스트가 아닌 그녀들을 협박하는 목적으로 쓰였다.

만약 피해자들이 자신을 만나주지 않으면 박씨는 눈앞에 사진을 흔들며 ‘네가 결혼이라도 하면 내가 가만있을 것 같으냐. 내가 시부모에게 입만 뻥긋하면 네 인생은 끝장이다’며 여인들의 숨통을 옭죄기까지 했다.


“생리중이라…” 피해자의 번뜩인 재치

박씨의 파렴치한 행각은 4개월 만에 꼬리가 잡히고 말았다. 그를 검거하는 현장에서 미끼로 나선 마지막 피해자 지씨의 결정적인 제보가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된 것이다. 지씨는 역시 ‘알몸촬영’을 요구하며 여관으로 데려가려는 박씨에게 ‘지금 생리중이라 옷을 벗을 수 없다’는 핑계로 위기를 모면했다.

“지씨가 워낙 뛰어난 미모였던지라 박씨도 그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나중에 꼭 다시 만나고 싶다’며 새로 약속을 잡은 게 결국 화근이 된 거죠.”

며칠 뒤 꼭 만나고 싶다는 박씨의 청에 못 이겨 약속을 잡은 지씨. 그러나 대기업 간부의 비서로 이치에 밝았던 그는 박씨를 만나기 전 그가 소속돼 있다고 말한 방송사에 연락해 사실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김 전 경위의 설명을 들어보자.

“여기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한겁니다. 박씨는 자신과 같은 성을 가진 유명 프로듀서를 사칭했는데 정작 지씨가 방송사에 전화해 진짜 박PD와 통화를 해보니 자신이 만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 챈 거죠. 거기다 박PD는 몇 달 전부터 누군가 자신을 사칭하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지씨의 자초지종 설명을 들은 박PD가 경찰에 정식으로 신고를 접수하면서 사건이 급물살을 타게 됐지요.”

우여곡절 끝에 박씨를 검거하고 김 전 경위는 깜짝 놀랐다고 했다. 말끔한 차림새에 교양 있는 말씨를 쓰는 그는 오히려 진짜 박PD보다 더 ‘진짜’ 같았다는 것이다.

“요즘도 어린 연예인 지망생을 등치는 사기꾼들이 출몰하고 있는데 이 놈들의 수법은 정말 단순합니다. 보고 있기 안타까울 정도죠.”

배우로 성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아들을 둬서일까. 당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소회를 느꼈다는 김 전 경위와의 인터뷰는 적잖은 여운과 함께 마무리됐다.


#리얼스토리 talk box 김봉용 전 경위
“김태촌, 조양은 등 삼청교육대 입소시킨 장본인”

‘수사반장’의 메인 캐릭터이자 유명 탤런트의 아버지인 김봉용 전 경위는 오히려 인터뷰 내내 쑥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젊은 시절 강력사건 현장을 누비고 다니던 속칭 ‘깡다구’는 남아있지만 여전히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은 어색한 모양이었다. 최근 둘째 손녀의 돌잔치를 마쳤다는 김 전 경위는 현재 경기도 구리에서 농산물 도매업을 하며 사업가로 변신했다. 과거 서울시경 폭력계 반장으로 조인환, 김태촌, 조양은 등 굵직한 조폭들과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던 열혈 형사는 과거의 무용담을 털어놓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듯 수차례 머뭇거렸다. 이날 만남을 주선한 최중락 전 총경이 인터뷰 중 대신 김 전 경위의 프로필을 속속들이 풀어주는 대목에서는 한바탕 박장대소가 터지기도 했다.

- 76년 ‘신민당 각목사건’ 당시 김태촌을 검거한 것을 비롯해 국내 조직폭력배들과의 인연이 각별한 수사관으로 알고 있다. 당시 비화들 가운데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 신민당 사건과 관련해 김태촌과의 인연은 각별하다. 그를 삼청교육대에 입소시킨 장본인이 바로 나니까 말이다. 80년대 삼청교육대의 악명이 높았다는 것은 나 역시 인정한다. 그러나 당시 상황에서 사회 정화를 위해 폭력배들을 일제 소탕하는 작업은 경찰의 중요한 임무였다. 물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고통을 당한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인정한다. 정권이 바뀐 뒤 삼청교육대와 관련된 당시 사건들 때문에 나를 비롯한 동료 수사관들이 엄청난 고초를 겪었다. 더 이상 자세한 것은 말하기 곤란하다.

- 오래 수사관 생활을 하다 사업가로 변신했다.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 일반인들은 경찰을 꺼린다. 장사를 시작하면서 사람들에게 일부러 경찰 간부 출신이라는 사실을 숨겼다. 그런데 우연찮게 내 전직이 알려지자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들이 나를 피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자신들의 약점을 잡아 내가 해코지라도 하려는 양 매도하기도 했다. 과거부터 ‘순사’에 대한 좋지 않은 고정관념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런 취급을 당할 때는 많이 괴로웠지만 어쩌겠는가. 적어도 내가 현직에 있을 때 부끄러운 짓을 저지르지 않았고 떳떳했으면 그만이라고 위안할 뿐이다.

- 아버지는 베테랑 수사관이고 아들은 인기 연예인이다. 부자 사이에 가치관의 차이 같은 게 있을 법도 한데.
▶ 그런 건 없다. 아들이 연기를 한다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도와줬다. 나도 오랫동안 ‘수사반장’ 제작에 관여하다보니 어느 정도 방송계 시스템에 익숙해진 상태였다. 아들이 워낙 재능이 있어 스스로 길을 잘 개척해가더라. 아들은 다음달 대선배인 손숙과 함께 새로운 연극작품에 출연할 예정이다.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초대하고 싶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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