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에 의한 TK만을 위한 인사”

법무부는 지난 10일 서울중앙지검장, 대검 중수부장 등 검사장급 이상 검찰 고위간부 51명에 대한 승진 및 전보인사를 지난 12일자로 발표했다. 이와 더불어 검찰 내 ‘빅4’로 꼽히는 대검 공안부장, 법무부 검찰국장이 각각 임명됐다. 이로써 검찰 수뇌부 공백 사태가 한 달여 만에 일단락됐다. 검찰은 6월 말 천성관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찰총장 후보로 내정되자 7월 초까지 이어진 고검장의 잇따른 용퇴로 지도부 공백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이번 인사로 검찰은 일단 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인사는 묘한 뒤끝을 남겨 검찰 내에 어수선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법무부의 이번 인사는 지역안배를 고려했다고는 하지만 TK(대구 경북)와 호남 중심의 인사편중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지난 10년간 소외됐던 영남권 중에서도 부산경남(PK)지역 출신 인사들의 불만은 점점 커지고 있다. 현 정부가 같은 영남임에도 TK이외 지역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는 것이다. PK출신자들은 “PK가 ‘TK 또는 호남’ 식의 지역안배로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법무부는 이번 인사에 대해 “검찰총장의 공석 상태에서 인사를 단행하는 만큼 검찰총장 내정자와 협의를 진행하는 한편 그 직무대행자인 대검찰청 차장검사의 의견도 청취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단행된 검찰 고위간부 인사는 내부 이견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출신 지역과 학교, 사법연수원 기수까지 두루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조직안정에 초점을 맞췄다는 얘기이다. 이번 인사에서는 검사장 및 고검장 승진자가 20명이나 될 정도로 인사폭이 컸다. 또 전체 간부 가운데 중부권 출신인사를 가장 많이 배치, 특정 지역의 편중 시비를 없애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주특기도 충분히 배려되는 등 수뇌부 공백 사태에 장기간 시달려온 검찰의 안정화를 위해 무난한 인사라는 게 검찰 안팎의 평가다.


젊은 간부로 대폭 물갈이

검찰에서 흔히 `빅4'라 불리는 핵심요직에는 경북(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ㆍ최교일 법무부 검찰국장)이 2명, 충남(김홍일 대검 중수부장)과 서울(신종대 대검 공안부장)이 각각 1명씩 맡았다. 경북 출신의 김경한 법무부 장관 아래에 광주 출신인 황희철 차관을 임명한 것은 지역안배 차원으로 해석된다.

또 대검 차장을 제외한 고검장급 8명이 한꺼번에 교체되고 검사장 승진자가 12명에 달하다보니 검사장급 이상 법무ㆍ검찰 간부의 평균 연령이 52.3세에서 50.1세로 낮아졌다. 고검장급 9명의 평균 연령은 55세에서 51세로, 법무부의 실ㆍ국장도 모두 50대 초반에서 40대 후반으로 낮아지면서 검찰에도 기업체와 같이 ‘젊은 간부’바람이 불고 있다.

이번 인사에서는 사법연수원 16기가 4명, 17기 8명이 `검사의 꽃'인 검사장을 달았다. 검사장 승진자는 PK 3명, TK와 서울 및 전북이 각각 2명, 전남과 강원 및 제주가 각각 1명으로 고르게 분포됐다. 지난해 세종증권 매각비리 수사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를 구속기소한 최재경 서울지검 3차장과 올해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한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 모두 검사장으로 영전했다.

지난 1월 인사 및 후속 인사에서 10명이 검사장을 달았기 때문에 올해에만 22명이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에 따라 연수원 13∼14기 중 고검장 승진에서 탈락해 사표를 내는 검사장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추가 승진자는 계속 나올 전망이다. 검사장급 이상 간부 52명의 출신 지역을 살펴보면 서울ㆍ경기 14명과 충청권 4명 등 중부권이 많았으며 TK 13명, PK 11명, 호남 8명, 강원과 제주 각 1명이다. 대학별로는 서울대 34명, 고려대 8명, 성균관대 4명, 연세대 3명, 한양대 2명, 충남대 1명이다.


PK 역차별 불만 커져

그렇다고 이번 인사에 불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불만의 목소리를 내는 쪽은 바로 PK출신들이다. 이들의 불만은 다름 아닌 역차별이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인사는 “과거 10년간 영남출신자들은 주요 인사에서 배제돼 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정권이 바뀐 뒤에도 별로 달라진 것은 없다. 현 정권에선 영남이라도 TK가 아니면 안된다. 호남은 지역안배 때문에 수혜를 입는 측면이 있지만 이도저도 아닌 PK는 주요 보직인사에서 제외되고 있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번 검찰 인사를 살펴보면 PK출신자들 중 검사장으로 승진한 경남·부산 출신은 17기인 김경수(49·진주) 인천 1차장, 조성욱(47·부산) 등 2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기존 직위를 유지하면서 자리만 이동했다. 대구와 경북, 고려대 출신의 약진이 이번 인사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힌다.

검찰의 예산을 쥐고 있는 검찰국장에는 최교일 서울고검차장이 기용됐다. 이 자리는 중앙지검장 자리와 함께 빅4 중에서도 핵심 요직으로 두 자리 모두 경북, 고려대 법대 출신들이 차지했다. 특히 법무부 검찰국장은 두 차례 연속으로 고려대 출신이 꿰찼다. 그동안 지방 차장을 거쳐 부임해온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은 경북 출신인 서울중앙지검 3차장 몫이 됐다.

또 16기 검사장 승진자 4명 가운데 호남 출신인 임권수 부산동부지청장(51·전남), 황윤성(50·전주)대구 서부지청장등 2명이 호남출신이다. 부산 출신으로 경합을 벌였던 김헌정(50·부산) 고양지청장과 문규상(54·부산) 안산지청장은 동시에 쓴 잔을 들었다.

이에 검찰 안팎에선 이번 인사에 대구 경북지역 실세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설도 나오고 있다.

한편 민주당은 공개적으로 검찰 인사를 비난하고 나섰다. “불법.공안.지역 차별인사", “BBK 보은인사이자 노무현 수사팀 영전인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유정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정치보복 수사에 대한 한마디 사과와 반성 없이 공안통치로 가겠다는 대국민 선전포고로, 오늘 인사로 검찰 개혁은 완전히 물건너갔다. 주요 보직 어디에도 호남 출신은 전무한 지역 차별인사"라고 주장했다. 또 김 대변인은 “인사 문제 협의 주체인 검찰총장 인사청문회를 일주일 앞두고 인사를 단행한 것은 법 취지에 어긋난 불법인사로 김경한 법무장관은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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