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 검거하려 절세미녀 호스티스에 작업도 불사”

당시 사건을 다룬 신문 기사 스크랩 (좌) 드라마 의 한 장면. 조 형사(사진 왼쪽)의 실제 모델이 바로 남 경위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쓰고 뜨거운 아픔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잔뜩 인상을 구긴 그의 곁에 바짝 붙어 앉은 미모의 여성은 예의 달콤한 미소와 함께 다시 넘치도록 잔을 채웠다. 술이 약한 탓에 슬슬 올라오는 취기를 달래려 담배를 입에 물었다. 찰칵- 여인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지포라이터를 당겨 불을 붙여준다.

“못 보던 거네. 멋진데?” 한눈에 봐도 고급 명품이 분명한 라이터에 입에 발린 칭찬을 했다. “이거, ‘그 사람’이 선물한거에요.” 미녀가 속삭인 ‘그 사람’이란 한마디에 서울시경 강력계 남광현 형사는 순간 입에 문 담배를 떨어트릴 뻔 했다.

오늘로 꼭 20일. 형사 신분을 감추고 룸살롱에 죽친지 한 달여 째다. 최근 서울 서대문구 일대를 무대로 연쇄 강도 살인을 저지른 범인의 실체가 곧 드러날 것 이란 기대감에 가슴이 뛰었다. 용의자와 관련된 첩보는 놈이 경기도 문산 지역에서 모 지방신문 지국장 행세를 한다는 것 . 그리고 미모의 호스티스와 ‘깊은’ 관계라는 게 전부였다. 뜨내기인 놈을 잡으려면 그녀를 이용하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린 수사팀은 갓 신참티를 벗은 서른 초반의 남 형사를 업소에 잠입시켰다.

“비슷한 거 하나 더 구할 수 있을까?” 짐짓 태연한 척 말을 걸자 여인은 잠시 생각 끝에 대꾸했다. “주말에 만나기로 했는데 그때 같이 봐요 그럼.” 빙고, 드디어 잡았다. 악명 높은 살인범 하나를 검거하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호스티스의 호감을 사는 일은 쉽지 않았다.

1970년 5월 서울 서대문 일대를 공포에 몰아넣은 마취강도 살인범과 ‘수사반장 팀’의 싸움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남광현 경위의 수사 인생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짧지만 굵다.’ 1963년 서울 서대문경찰서 형사로 경찰에 입문해 서울시경 강력계, 폭력계 형사와 계장을 지내고 지난 1986년 현직에서 물러났다.


‘수사반장’ 전성기 이끈 핵심멤버

물론 남 경위의 23년 경력이 결코 짧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와 비등한 경력과 명성을 쌓은 동료 수사관들이 30년 이상 근속하다 대부분 정년을 채웠다는 점에서 남 경위의 은퇴는 상대적으로 이른 셈이다.

‘형사 남광현’의 전성기를 논하기 위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필수요소가 있다. 바로 국내 최장수 드라마로 기록된 MBC ‘수사반장’이다. 인간적인 박 반장(최불암 분)과 더불어 범죄현장을 누비는 다섯 명의 형사들이 모두 최중락 총경(현 삼성에스원 고문)을 비롯한 서울시경 강력계 요원들을 모델로 창조됐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강력계 핵심멤버였던 남 경위 역시 드라마의 중심인물로 분했다. 우직하고 털털한 ‘조 형사’(조경환 분)는 바로 그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캐릭터다. 실제 남 경위는 훨씬 날렵한 외모라는 점만 빼고 ‘조 형사’의 뚝심 있는 성격과 날카로운 분석력은 그를 고스란히 빼다 박았다.

남 경위에게 있어 ‘수사반장’은 그의 전성기를 고스란히 압축해 놓은 결정체다. 당시 드라마가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실제 형사들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뜨거웠다. 더구나 ‘수사반장’에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모두 이들이 해결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경찰 내부는 물론, 밖에서도 ‘수사반장 팀’은 유명인사였다.

남 경위는 “내가 주축이 돼 해결했던 사건이 드라마 대본으로 각색되는 과정에서 곤란한 오해를 산적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대표적인 것이 앞서 언급한 ‘서울 서대문 연쇄 마취강도 살인사건’이었다.

남 경위는 연쇄 강도 살인범을 잡기 위해 그의 내연녀인 미모의 호스티스에게 신분을 숨기고 접근, 결정적인 실마리를 잡았었다. 그런데 문제의 사건이 ‘수사반장’을 통해 전파를 탄 뒤 곤란한 상황이 벌어졌다.


“당신 정말 술집여자 꼬셨어?”

남 경위는 “작가님이 각색을 어찌나 ‘극적으로’ 하셨는지 한동안 아내는 물론 동료들마저 내가 술집여자와 바람을 피운 줄 착각해 고생했다”고 후일담을 털어놓았다. 드라마 속 ‘조 형사’가 미모의 접대부를 유혹해 아슬아슬한 스킨십을 하는 장면이 방영되자 억울한 오해를 산 것.

그는 “하물며 천생연분인 아내까지 ‘당신 정말 술집여자를 저렇게 꼬셨냐’고 따져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다”고 토로했다.

‘수사반장’ 에피소드 880편 가운데서도 극적으로 묘사된 서대문 연쇄 마취강도 살인사건의 전모를 남 경위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1970년 봄, 서울 홍제동 한 주택에서 참혹하게 살해된 70대 노파의 시신이 발견됐다. 집안에서는 강력한 마취제 성분이 나왔고, 범인은 살인을 저지른 뒤 온 집안을 헤집어놓은 상태였다. 얼마 안 되는 현금과 카메라, 라디오 등 값나가는 물건도 싹쓸이해갔다. 최근 인근에서 벌어진 4건의 ‘마취강도’ 사건과 일맥상통한 듯 했다.

“감식반에 연락해서 유사수법 전과자 리스트 빠짐없이 뽑아.” 지시를 받은 형사들은 곧바로 동종범죄 전과자를 추리기 시작했다. 수백 권에 달하는 범죄자 목록을 일일이 뒤진 지 한나절 만에 용의자는 20여명으로 압축됐다.

갓 출소한 전과자가 강도짓이나 살인 등 중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드물다. 적어도 감옥에서 나온 지 두 달은 지나야 사고를 치는 게 보통이다. 이런 기준으로 용의자를 더 줄이자 마지막으로 6명이 용의선상에 올랐다.

수사팀은 이 가운데 반년 전 출소한 문현식(가명·당시 43세)을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다른 이들과 달리 마취강도 전과 3범인 그의 행적만 묘연했기 때문이었다. 곧 수사팀으로 첩보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문현식이 경기도 문산의 모 지방신문 지국장 행세를 하고 있다는 것.

특히 일대 유흥업소 마담들 사이에서 그가 VIP 대우를 받는다는 정보도 입수됐다. 접대부 여러 명을 한꺼번에 앉혀놓고 거액의 팁을 뿌려 일대에선 ‘통 큰 문 국장’으로 통한다는 얘기였다. 강화도 빈농 출신인 문에게 막대한 유흥비는 어울리지 않았다. 더구나 문의 명함에 적힌 연락처와 주소는 모두 가짜였다.

결국 ‘주소지 불명’의 용의자를 추적하기 위해 남 경위를 포함한 형사 3명은 문산으로 급파됐다. 그리고 탐문 끝에 문이 한 호스티스와 깊은 관계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용의자는 내연녀에게도 자신이 머무는 곳이나 연락처를 가르쳐주는 일이 없었다. 언제나 불시에 여인을 찾아와 밀애를 즐기고 간다는 것.

결국 형사들은 내연녀를 통해 문현식을 검거하기로 작전을 세웠다. 경찰 신분을 감추고 손님으로 잠입해 여인의 마음을 움직일 작정이었던 것. 그리고 남 경위가 이 작전에 투입됐다. 술 한 잔 못함에도 ‘룸살롱 죽돌이’로 분한 남 경위는 배우 뺨치는 미모의 여인에게 접근해 환심을 샀다.

매일 함께 술잔을 기울인 끝에 데이트를 즐길 만큼 가까워졌지만 여인은 유독 문현식의 행적에 대해서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잠입 20일 째, 마침내 명품 라이터 구입을 핑계로 문과 약속을 잡은 남 경위와 수사팀은 크게 고무돼 있었다.


무릎 꿇은 중간보스 “살려주십쇼, 형님”

그러나 약속 하루 전 예상치 못한 변수가 터졌다. 여인이 남 경위의 정체를 눈치 챈 것. 속았다는 인간적인 배신감과 경찰이 동거남을 쫓고 있다는 사실에 여인은 망연자실했다. “다른 뜻 없어요. 정보수집 차원에서 만나고 싶을 뿐이니까 걱정 말고 안내해줘요.”

게다가 여인은 문이 저지른 끔찍한 강도 살인 행각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남 경위는 고민 끝에 여인에게 용의자의 혐의를 감추고 직접 그녀를 달랬다.

“꼭 만나야 하나요?” 진심이 담긴 남 경위의 설득에 드디어 여인은 입을 열었다. “오늘밤 자정 사이에 문산 시내 XX여인숙으로 오시면 만날 수 있어요.” 그날 밤 남 경위와 동료형사들은 자정이 다 돼 여인숙으로 들어가던 범인을 붙잡을 수 있었다.

불과 수개월 사이 5건의 강도행각을 벌여 3명의 목숨을 빼앗은 그는 ‘지방 저명인사 사칭 마취강도 살인범’이라는 타이틀로 당시 언론을 떠들썩하게 장식했다.

문현식이 저지른 범죄와 검거과정은 드라마 ‘수사반장’에서 조 형사의 활약상을 담은 에피소드로 각색, 재연됐다.

880편에 달하는 ‘수사반장’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남 경위를 비롯한 서울시경 강력반의 무용담이다. 하지만 과거 그의 동료들 가운데서는 남 경위를 ‘호남 패밀리’의 무릎을 꿇린 ‘조폭 사냥꾼’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더 많다.

특히 서울시경 폭력계에서 김봉용 경위(당시 폭력계장·본지 799호 16면 보도)와 함께 전국 조폭 계보를 싹쓸이하던 시절의 일화는 무수히 많다. 날고 기는 주먹들도 ‘수사반장 팀’ 출신의 폭력계 형사들 앞에서는 ‘꼬리 빠진 강아지’처럼 유순해졌다.

남 경위는 과거 전라도 광주 일대를 접수하고 서울까지 세를 뻗친 ‘서방파’ 검거 과정에서 벌어진 일화를 짤막하게 소개했다.

그는 “호남 조직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유난히 계파싸움이 심한 편이었는데 자기들끼리 세 다툼을 하며 불미스러운 사고들이 많이 터지곤 했다”고 말했다.

남 경위는 “이름만 대면 아는 주먹계 유명인사 정모씨가 당시 서방파 중간보스였다. 그를 체포하기 위해 은신처를 덮치자 정씨는 그대로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남 경위 앞에 꿇어앉은 그는 두툼한 돈다발을 들이밀며 딱 한 마디를 던졌다고 한다. “형님, 살려주십쇼.”

물론 아랑곳하지 않은 남 경위는 그대로 정씨에게 수갑을 채워 연행했다. 그런데 유치장에서 몸수색을 하는 과정에서 길이 30cm가 넘는 ‘회칼’이 정씨의 품에서 불쑥 튀어나와 형사들을 놀라게 했다.

경찰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할 정도로 검거되는 게 싫었다면 남 경위가 수갑을 들고 다가왔을 때 흉기로 그를 해치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미 조폭들 사이에서 경외의 대상으로 통하는 ‘수사반장 팀’의 핵심 멤버를 섣불리 건드릴 수 없었던 것.

남 경위는 처음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고사했었다. 이미 20년 전 이야기가 돼 버린 무용담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며 정중히 거절했던 것. 그러나 막상 기자 앞에서 화려했던 전성기를 회고하는 그의 표정은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남들보다 일찍 물러났지만 현장에서 만큼은 사명감 하나만 갖고 일했다. 단서하나 없는 사건에서도 범인을 추적하고 잡아야 하는 게 형사다. 그야말로 ‘無에서 有를 만드는’ 일에 푹 빠진 시절이었다.”

인터뷰 말미, 이젠 중견 사업가로 변신한 남 경위의 낮은 읊조림에서 기자는 형사라는 직업이 그에게 있어 단순한 ‘향수’가 아닌 최고의 명예였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리얼스토리 talk box 남광현 경위

MB<도주하는 건달 잡다 황천길 갈 뻔…활동비 떨어져 구걸도 해봐

현재 컴퓨터 관련 중견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남광현 경위는 자신의 과거 신분이 언론에 노출 되는 것이 꺼려진다고 했다. ‘잘 나가는 형사’였던 자신을 둘러싸고 쓸데없는 오해가 생길까 우려된다는 것. 설득 끝에 인터뷰를 허락한 남 경위는 과거 범인 검거작전을 펴다 살해당할 뻔한 위기의 순간과 지방 잠복근무 중 겪은 웃지 못 할 굴욕담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 잘나가는 강력계, 폭력계 형사시절 범인들에게 신변의 위협을 당한 경험도 많을 듯 하다.
▶ 두말하면 잔소리다. 깨지고, 부러지는 건 다반사다. 다행히 목숨이 위태로울 뻔한 상황은 없었지만 최 반장(최중락 총경)님과 함께 부산의 건달조직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반장님이 큰일을 당할 뻔 하셨다.
73년 부산항에서 수출용 TV 350대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바로 지역 건달들이 배후였다. 놈들이 고속도로를 지날 것이라는 첩보를 받고 미리 톨게이트에 잠복근무를 했는데 일당이 먼저 눈치를 채 작전이 실패할 뻔 했다.
최 반장님이 놈들 차를 막아서자 건달들은 반장님을 살해하려 전속력으로 차를 몰았다. 반장님은 가까스로 충돌을 피해 차 본네트에 매달렸고 놈들은 반장님을 매단 채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서둘러 부하 형사들이 추격전을 벌여 모두 검거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 서울시경 강력계는 지방에서 벌어진 사건에 급파되는 경우가 유독 많은 것 같다.
▶ 우린 일종의 광역수사대였다. 사안이 크면 지역을 막론하고 최정예 요원들이 현장에 급파됐다. 그런데 막상 형사들의 행색은 그리 말끔하지 못했다. 지금 후배 형사들은 사정이 훨씬 좋아졌지만 당시는 시경 소속 형사라 해도 박봉인데다 활동비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한번은 부산에서 두 달 가까이 잠복근무를 했는데 당장 밥 사먹을 돈까지 똑 떨어진 것이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방법이 없어 결국 길거리에서 ‘구걸’을 했다. 식당을 돌며 경찰신분증을 보여주고 외상으로 밥을 얻어먹는 ‘굴욕’은 다반사였다. (웃음) <수>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