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 전문도굴꾼 아니다”

경찰이 공개한 범행 당시 CCTV 화면. photolbh@dailysun.co.kr

국민배우 故 최진실을 ‘사후납치’한 범인은 비정상적일만치 침착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묘지에서 두꺼운 화강암 묘석을 박살내고 고인을 납치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분. 더구나 그는 쇠망치 하나로 모든 작업을 빈틈없이 해냈다.

고인의 묘소와 불과 17.5m 떨어져 있던 CCTV 카메라는 범인의 얼굴을 제외한 사건 당일의 충격적인 현장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경찰은 범인이 동일 전과를 가진 ‘전문가’일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용의자는 쇠망치와 목장갑, 모자 등 작업에 필요한 도구를 미리 준비했고 훼손된 묘석을 교묘하게 위장하는가 하면 물걸레를 동원해 범행 현장을 말끔히 정리했다. 용의주도한 전문가의 소행으로 봐도 무방한 대목이다.

그러나 범인이 전문 도굴꾼일 것이라는 데는 수사팀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고인의 유골함이 사라진 시점은 당초 알려진 이달 14~15일 보다 열흘 이상 앞선 지난 4일 밤인 것으로 확인됐다.

무려 열흘 가까이 고인의 유골함이 사라진 것을 유족은 물론 묘지 측도 전혀 몰랐다는 얘기다. 전문 도굴꾼이 무덤을 파헤치고 매장품을 훔치는 목적은 단연 ‘돈’이다. 그러나 고인의 유골함을 훔쳐간 범인은 유족에게 어떤 금전적 요구도 하지 않았다.

‘영원한 수사반장’으로 잘 알려진 최중락 총경(전 서울시경 형사과장·현 삼성에스원 고문)은 이번 사건의 범인이 전문 도굴꾼은 아니라고 못 박았다. 최 총경은 “도굴꾼이 최근 사망한 인사의 무덤을 파헤치는 일은 없다”며 “오랫동안 치밀하게 계획을 짠 광 팬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대한민국 강력수사계 대부인 최중락 총경은 서울시경 강력계장, 인천시경 수사과장, 서울시경 형사과장을 역임한 국내 최고의 수사관으로 꼽힌다. 현 경찰청 범죄수사연구관인 최 총경은 1950년대부터 최근까지 수도권 일대에서 벌어진 대부분의 강력사건들을 수집·분석해온 전문가다.


유명인의 유골, 돈 될까

과거 한다하는 ‘호리꾼’(도굴범을 뜻하는 은어)들을 줄줄이 잡아들였던 최 총경은 이번 고인의 유골함 도난이 전문 도굴범 짓이라는 일각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 총경은 “호리꾼은 그야말로 돈 되는 무덤에만 손을 댄다. 이들은 특히 골동품이나 보물 등 당장 현금화 할 수 있는 것만 노린다”고 설명했다. 호리꾼들에게 죽은 지 얼마 안 된 사람의 무덤이나 물건은 관심 밖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국민배우’로 불리며 수십 년 간 톱스타로 군림한 고인의 유골은 더 가치가 높지 않을까. 기자의 질문에 최 총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발각되면 법적 처벌 뿐 아니라 사회적 매장까지 각오해야 할 위험부담을 안을 게 뻔한 ‘장물’을 선뜻 사들일 고객이 과연 있겠느냐는 것이다.

최 총경은 “누군가 전문 도굴꾼을 고용해 유골함을 얻으려한 게 아니냐는 가설도 있지만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아무리 많은 수당을 준다 해도 이번처럼 심각하게 위험한 일감을 받아들이는 호리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건 분명히 범인이 고인의 유골을 간직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한 범죄다”고 주장했다. 돈이나 금전적 이득보다는 생전에 고인을 사모한 광 팬이 오랫동안 준비해 저질렀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더구나 범인이 유족에게 몸값 등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도 이번 사건이 금전적 이득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의견에 힘을 실어준다. 범인은 범행 약 3시간 뒤인 지난 5일 오전 3시30분 경 다시 현장에 돌아와 물걸레와 양동이 등을 동원해 깔끔하게 고인의 분묘를 정돈했다.

일부 언론은 이를 현장에 남은 지문과 기타 흔적을 지우기 위한 행동으로 분석했지만 범인은 이미 두꺼운 목장갑을 낀 상태였다. 단순히 단서를 지우기 위해 범행 현장을 떠난 지 수 시간 만에 다시 돌아왔다는 것도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물청소 등 정성담긴 뒷정리 ‘애정표현’?

하지만 범인의 모든 행동이 고인을 향한 ‘연모의 감정’에서 비롯됐다고 전제하면 상황은 쉽게 풀린다. 고인의 유골이라도 곁에 두고 싶은 이상심리와 부서진 묘분을 정성껏 정리함으로서 故 최진실에 대한 애틋함의 반증이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한편 최 총경은 사건을 담당한 양주경찰서의 공개수사 결정은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평가했다. 최 총경은 “가장 중요한 단서인 CCTV를 일반에 공개하면서까지 제보를 독려하는 것은 그만큼 범인 검거의 의지가 크다는 얘기”라며 후배 형사들에게 덕담을 전했다.


#故 최진실 유골함 절도범 범행 당일 행적

8월 4일
▲ 오후 9시 55분 : 묘소 주변 배회.
▲ 9시 58분 : 손으로 분묘 벽 매만지며 상태 확인.
▲ 10시 11분 : 등산모자 쓴 뒤 마대자루에서
쇠망치 깨냈다 사라짐.
▲ 10시 44분 : 쇠망치로 분묘 뒤쪽 벽 훼손.
▲ 10시 46분 : 유골함 꺼내 사라짐.
▲ 10시 48분 : 꽃, 영정 등으로 훼손된 분묘
은폐한 뒤 도주.
8월 5일
▲ 0시 18분 : 분묘 주변 조명 소등.
▲ 오전 3시 36분 : 걸레, 양동이 들고 나타나 주변 정리.
▲ 3시 41분 : 화면에서 완전히 사라짐.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