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지친 도시인들 손꼽는 피서지는 어디일까. 단연 해수욕장을 꼽을 것이다. 낭만적인 파도소리와 함께 로맨스를 꿈꾸는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바닷가. 하지만 막상 해수욕장에 가면 눈살을 찌푸리는 일들을 겪게 마련이다. 바가지 씌우는 상혼부터 시작해 술에 취한 취객들, 그리고 여성들을 노리는 엉큼한 늑대들까지… 특히 청소년들의 일탈행동은 도를 넘는다. <일요서울>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15일 대한민국 대표 해수욕장인 부산 해운대를 직접 찾아가 그곳의 낮과 밤을 들여다봤다.

지난 8월 15일 오후 2시 해운대를 찾았다.

태양이 내리 쬐는 백사정은 뜨거웠다. 인기가수 조용필의 노랫말에 나오는 동백섬에서부터 달맞이 고개를 올라가는 길목 앞까지 늘어선 백사장엔 형형색색 파라솔이 축제를 연상케 한다. 여름 축제를 찾은 피서객들로 백사장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날 전국에서 해운대를 찾은 피서객 수는 80만 명으로 추산된다.

해운대는 가족단위 피서객보다 젊은 피서객들로 넘쳐났다. 젊은 청춘들은 여름 한철을 위해 몸매관리에 많은 투자를 했고 날씬한 몸매를 비키니차림으로 자랑하고 있었다. 여성들은 이번 여름에 유행하는 가슴이 훤히 드러나고 등이 패인 비키니 수영복을 선호하는 듯 했다. 차라리 반라라고 표현하는게 나을 만큼 민망했다.

여성들은 태양에 검게 그을린 반라에 헤라, 타투 등으로 섹시함을 더했다. 심지어는 여성의 심볼이 드러나는 곳까지 문신을 한 여성까지 있었다. 과거 90년대 플레이보이모델로 활약했던 이승희가 엉덩이에 나비문신을 했던 것을 흉내 내는 듯 했다.

태양아래 파라솔 그늘엔 젊은 연인이 한가롭게 선탠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들의 모습도 반라에 가깝다. 한마디로 해운대는 젊은 청춘들의 몸매 뽐내기로 패션쇼장을 방불케 한다.

쇼가 있으면 관객이 있듯, 이런 좋은 볼거리를 즐기는 이들이 있다. 이른바 몰카족이다. 몰카족은 해변에서 선탠을 즐기는 여성을 비롯해 비키니 차림의 여성들을 몰래 찍으면서 훔쳐보기를 즐겼다.

해운대 인근 분식점을 운영하는 한 노점상 주인은 “여기서 가만히 보고 있으면 건물들 사이로 여성들을 몰래 찍는 몰카족들이 상당하다. 여성들 몰래 민망한 사진을 찍는 남성들이 많아 주의가 필요한 곳”이라고 말했다. 이런 얘기를 듣고 가만히 주변을 살펴보니 모자를 푹 눌러쓰고 짙은 선글라스를 낀 남성들이 보였다. 그러던 중 한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소형 캠코더를 가지고 동영상을 찍는 한 남성에게 여성이 소리치며 항의를 한 것이다. 아슬아슬한 비키니를 입은 이 여성의 몸을 남성이 몰래 촬영을 하다 들킨 것.

인근지역에 살고 있는 45세의 이 남성은 개인 소장용으로 여성들의 몸을 찍었다.

이 남성은 “비키니를 입고 있는 여성들을 몰래 찍은 것은 잘못이지만 어차피 보여주려고 하는 것 아니냐. 내가 상업용으로 찍은 것도 아닌데 선처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몰카족들 기승에 여성들 피해 많아

기자는 촬영을 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이 남성은 “별 생각 없이 찍은 것이다. 워낙 몸매가 좋은 여성들이 많아 해운대는 최고의 촬영 장소로 손꼽힌다. 나는 오늘 처음 나왔을 뿐”이라며 잘못을 뉘우쳤다.

이 남성이 찍은 촬영 장면은 가관이었다. 여성의 전신은 물론, 가슴, 다리 등 특정 부분이 집중적으로 촬영돼 있었다.

이렇게 무분별하게 촬영한 사진이나 동영상은 간혹 인터넷에 유포되기도 한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개인이 촬영을 해서 소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이 이런 사진들을 유포하거나 성인 사이트에 올린다. 결국 여성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자신의 사진이 유포돼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직접 촬영을 당한 A씨(24, 대학생)는 “솔직히 불쾌하다. 내가 남자들 보여주려고 비키니를 입은 게 아닌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를 촬영하는 몰카족들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촬영된 사진이 인터넷 성인 사이트에 올라 갈수도 있다는 데 화가 난다”며 몰카족들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다행히(?) 남성은 이제껏 촬영한 동영상과 사진을 모두 삭제하는 선에서 일단락 됐다.

몰카족을 뒤로 하고 다시 해변가로 향했다. 해변에는 젊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올 여름은 날씨가 좋지 않고 저온현상으로 예년보다 피서객이 줄어들어 지역 상가들이 울상이었다. 이렇다 보니 날씨가 좋은 오늘 같은 날에는 더욱 피서객들이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뤘다. 모두들 튜브 하나씩 둘러메고 바다에 뛰어들거나 같이 온 일행들과 함께 모처럼의 좋은 날씨를 만끽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가족단위 피서객들도 상당했다.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계층이 물놀이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이들을 울상 짖게 하는 일이 있었다. 바로 불량식품이다.

물놀이를 하다 보면 허기를 느끼기 마련인 피서객들이 제일 먼저 찾는 것은 바로 치킨이다. 하지만 이들 치킨들이 유명 상품을 모방한 짝퉁 치킨이라는데 문제가 많다. ‘고촌치킨’, ‘머라카나치킨’ 등 상품명만 보더라도 유사 상품임을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들 유사 상품들은 불량식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폐사 닭이나 유통기한이 지난 닭을 재료로 해 식중독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충분했다. 또한 치킨을 대량으로 튀겨 놓기 때문에 더운 날씨에 음식이 쉽게 변해 위생상 좋지 않은 것은 당연지사. 또한 단속을 해도 탑차나 천막을 치고 영업을 하고 있어 다른 장소로 옮기면 그만인 것이다. 고발 되더라도 벌금을 내고 영업을 계속하기 때문에 근절되기는 더욱 힘들다. 근처에서 슈퍼마켓을 하는 한 주인은 “이곳에서 유통되는 질 나쁜 치킨 때문에 간혹 피서객들이 골탕을 먹기도 한다. 하지만 배달 위주로 판매를 하다 보니 어디서 어떻게 유통되는지 알 수 없다. 음식에 문제가 있어도 항의할 곳이 없는 상태”라며 짝퉁 치킨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하룻밤 즐기려는 청춘남녀들

태양이 기웃기웃 저물며 뜨거운 해운대의 낮은 가고 또다른 세계인 밤이 찾아왔다.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기던 피서객들은 하나 둘씩 짐을 챙겨 자리를 떠났다. 파라솔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해변 곳곳에 있는 노점상에 불이 하나 둘씩 켜졌다. 인근 카페와 상점, 호텔 등의 네온사인이 켜지더니 이내 불야성을 이루며 관광객을 유혹했다. 해운대의 밤은 이렇게 시작됐다.

해변에는 삼삼오오 짝 지은 젊은 남녀들의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낮과는 달리 한껏 치장한 여성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남성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해변에 자리 잡고 술판을 벌이는 통에 여기가 해수욕장인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여기 저기 술에 취한 젊은 남녀들이 눈에 띄었다. 한적한 곳에는 더욱 가관이었다. 두 명의 젊은 여성들이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비틀거리고 있었다. 저만치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그녀들을 주시하는 남성들이 있었다. 남성들은 여성에게 다가와 몇 마디를 나눴다. 이윽고 이들은 서로 의기투합했는지, 함께 해변을 나왔다. 그들은 인근에 있는 노래방으로 직행했다.

파라다이스 인근의 한 식당 종업원은 “이런 일은 흔하다. 노래방에 갔다가 눈이 맞으면 함께 하룻밤을 지낸다”면서 “솔직히 여기 오는 젊은 남녀들 뻔 한 것이 아니겠느냐. 서로 마음에 들면 술 한 잔하고 술기운에 하룻밤 같이 보내는 일은 다반사다”고 말했다.

하룻밤 로맨스를 즐기기 위해선 조건이 있다. 남성들의 숙소가 인근 고급 호텔이나 콘도에 머물고 있어야 한다. 이는 경제력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종업원은 “퀸카의 경우 남성의 스타일만 따지지 않는다. 바로 경제력, 돈이 얼마나 있는가가 남성을 고르는 기준이 된다. 퀸카 여성의 경우 보통 호텔급은 돼야 같이 술 한 잔 마실 수 있다. 또한 중형차는 돼야 퀸카를 꼬실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부산, 광주 등에서 온 유명 술집의 마담들이 ‘나가요 걸’을 헌팅하는, 이른바 ‘길거리 캐스팅’이 성행하고 있다.

명품으로 휘감은 30~40대로 보이는 두 명의 여성들이 길거리에서 ‘캐스팅’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녀들은 길을 지나는 여성들을 바라보며 무엇인가 열심히 얘기를 나눴다.


마담들의 ‘나가요걸’헌팅도

호기심이 발동한 기자는 살며시 뒤로 다가가 그녀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봤다.

“자는 어떻노?”, “걔는 별루다. 다 좋은데 가슴이 너무 작다”, “저쪽 쟤 괜찮네”.

그녀들은 여성들을 지켜보며 ‘캐스팅’을 하고 있었다.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미모의 여성이 있었다. 그녀들은 그 젊은 여성에게 다가가 뭔가를 설명하자 젊은 여성B씨는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러자 그녀들은 안타까워하며 자리를 떴다. B씨는 “갑자기 다가오더니 몸매 좋다며 어떻게 관리하는지 알고 싶다고 물었다. 그래서 평소 운동을 한다고 했더니 혹시 아르바이트 할 생각 없냐며 대뜸 룸살롱 얘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룸살롱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관심 없다고 말했다. 연예기획사에서 길거리 캐스팅 제의를 받아본 적은 있는데 룸살롱 나가요걸을 해수욕장에서 캐스팅하는 것은 처음이다. 황당하다”고 말했다.

중년의 여성들을 뒤따라가 기자신분을 밝히고 질문을 해봤다. 하지만 이 여성들은 “할말없다”며 이내 자리를 떴다. 뒤따라가며 계속 질문을 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 같았다. 이들에 대한 궁금증을 뒤로 하고 자리를 옮기려 하자 한 노점상 주인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 중년의 여성들에 대해 알고 있다며 조용히 불러 세우는 것이었다.

노점상 주인에 따르면 “아까 중년의 여성들은 모두 룸살롱 마담들이다. 이곳에는 예쁘고 날씬한 여성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마담들이 길거리 캐스팅을 하기 위해 자주 찾는다. 낮에도 잘빠진 비키니 여성들에게 캐스팅 제의를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일부 가출 여고생들의 경우 대 놓고 남성들에게 접근해 술을 사달라거나 재워달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노점상 주인은 “여름방학이나 주말인 경우 고등학생들이 해변을 메운다. 이들이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거나 여성들을 놓고 서로 싸우기도 한다.

심지어 여고생들의 경우 성인 남성들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성매매를 제의하거나 재워달라는 경우도 있다. 해수욕장이라는 특수한 장소 때문인지 더욱 과감해 진 청소년들의 성문화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라며 청소년 문제의 심각성을 주장했다.

남고생들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하다. 최근의 트랜드와 어울리는 꽃미남들이 여성들에게 접근하고 성추행을 하는 등 일부 청소년들의 탈선 현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해변의 낭만은 실종

실제 성추행의 위험에 빠졌던 경험이 있는 C씨는 “요즘 학생들은 무서운 존재다. 해변을 걷다 헌팅이 들어 와 함께 술을 마셨는데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남성들이 우리 일행을 한 명씩 데리고 산책을 가는 것이었다. 나도 연하남을 따라 함께 산책을 했는데 자꾸 으슥한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가려고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키스를 하는 것이었다. 너무 놀라 소리치며 밝은 곳으로 도망갔다. 요즘 고등학생들이 무섭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다시 해변으로 가봤다. 자정을 넘은 시간이었지만 아직도 해변에는 질펀한 술판이 여기저기서 이뤄지고 있었다.

낮에는 사람으로 뒤덮였던 해변이 밤이 되자 술병과 쓰레기로 뒤덮여 있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청소년들과 객기에 바다로 뛰어드는 어른들. 해변의 낭만은 이미 옛날 얘기가 됐다. 해운대의 밤은 일탈을 꿈꾸는 청소년들과 여성들을 노리는 늑대들만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인상준 기자] sky0705in@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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