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러시아 마피아 피격사건’ 수사, 정부기관이 방해했다”

러시아 마피아 조직이 연루된 수산물 밀거래 사건 당시 신문기사.(좌) 김 경위가 적발한 거액 환치기 사범 검거 관련 기사.

‘퍽! 퍽! 퍽!…’ 2003년 4월 17일 저녁 8시 6분. 어스름한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그때, 숨 먹은 듯 둔탁한 소음이 조용한 아파트 현관 앞을 울렸다. 순식간에 10여발의 실탄을 내뿜은 두 자루의 총은 방금 저지른 살인의 여운을 머금은 듯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젊은 동양계 ‘킬러’는 탄창이 빈 7.62mm 러시아제 바이칼 권총과 정교하게 제작된 사제 총을 미련 없이 버렸다. 묵직한 소음기까지 장착된 총기는 차가운 복도에 제법 큰 소리를 내며 나뒹굴었다.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쓴 그는 제3자의 인기척이 다가오자 서둘러 현장을 빠져나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청년의 뒷모습. 그 너머엔 핏물에 잠겨 미동조차 하지 않고 엎드린 중년남자와 배에서 선혈을 쏟으며 꿈틀대는 또 다른 외국인이 있었다. 수상한 소리에 잰걸음으로 달려온 아파트 경비원 임모(당시 60세)씨는 끔찍한 광경에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머리와 왼쪽 가슴, 명치 등 급소 5군데를 정확하게 명중 당한 중년사내는 이미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국내 사상 초유의 ‘민간인 총기 살인사건’이 벌어진 그날 밤, 특보를 접한 경찰청 외사국 김종도 수사관(경위)과 팀원들은 짧은 탄식을 뱉었다. 4개월 전 수사팀은 러시아 거대 마피아 조직의 거물이 국내에 들어왔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줄곧 그를 주시해왔었다. 수사팀이 점찍은 요주의 인물, 러시아 마피아 ‘야쿠트파’ 보스 나우모브 와실리(당시 54세)가 그날 밤 대한민국 부산 한가운데서 괴한의 총에 맞아 즉사한 것이다.

지난 2003년 전국을 뜨겁게 달군 ‘부산 러시아인 피격살인사건’은 소문만 무성했던 해외 마피아 조직의 실체가 드러났다는 점에서 희대의 사건으로 꼽힌다. 더구나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러시아 마피아의 암투가 대한민국 거점 도시 부산에서 벌어졌고, 총기소지 자체가 불법인 국내에서 소음기까지 장착된 권총이 ‘민간인’의 살인무기로 사용됐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국내 조폭 넘어 ‘해외 범죄조직’ 추적

“많은 이들이 ‘마피아 조직원이 저지른 권총살인사건’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지만 그 속엔 굉장히 복잡한 사연이 숨어있습니다. 무엇보다 ‘경제적 이익’을 내세워 정부부처가 자국 경찰의 수사를 무마시켰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사상초유’의 사건이지요.”

당시 경찰청 외사국 소속으로 사건을 수사했던 김종도(金鐘道·61) 경위는 고려인으로 추정되는 범인을 놓친 것과 ‘마피아 돈줄’로 전락한 부산 해산물 수입관행의 부정을 속 시원히 파헤치지 못했다는 점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김 경위는 1970~80년대 대한민국 조직폭력단을 일갈에 휘어잡은 서울시경 폭력계 핵심멤버로 명성을 날렸다. 신20세기파, 서방파, 맘보파 등 굵직굵직한 주먹조직의 수뇌들과 현장담판을 지은 그는 현재도 국내 주요 조직 간부들 사이에서 ‘형님’으로 통한다.

14년 간 강력·폭력계 형사로 입지를 다진 김 경위는 90년대 초 경찰청(본청) 외사국으로 자리를 옮겼다.

‘해커’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1990년대 첫 창설된 사이버수사팀(당시 해커수사대)을 맡아 외사국 수사관으로 변신한 그는 그곳에서 정년퇴임을 맞았다. 정년이 가까운 멤버는 ‘방출’하는 게 관례였던 본청에서 퇴직일을 꽉 채우고 퇴임식까지 챙긴 수사관은 김 경위가 유일하다.

특히 외사국 현역시절 해외 범죄조직 수사에 있어 탁월한 정보력을 자랑한 것으로도 유명했다.

지난 1997년 ‘S증권 국제부 직원 북경 납치사건’을 수사한 그는 중국 현지에서 조선족 일당 14명을 일망타진하고 몸값을 고스란히 되찾은 바 있다. 이는 한국인 해외 납치사건의 시초로 기록됐다.

2003년 현직 교수와 유명 법조인 등이 줄줄이 연루된 중국 부동산 불법투기 조직의 실체를 벗긴 것도 김 경위였다.

첩보를 입수한 뒤 홀몸으로 상해에 건너간 그는 투자자인 척 조직 사무실에 잠입해 일당의 눈을 속이고 거래 고객의 명단을 ‘훔치는’ 배포를 발휘한 것. 그 해 환치기(불법외화거래) 수법을 동원해 불법 투기를 조장한 일당 6명과 고객 13명을 무더기로 잡아들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실제 유출액 350억원, 언론엔 ‘90억원’ 보도”

다시 2003년 ‘부산 러시아 마피아 피격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나우모브가 살해되기 수개월 전인 같은 해 초, 경찰과 보안당국은 마피아 조직의 거물이 국내에 들어왔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은밀히 내사를 시작했다. 러시아 마피아 조직의 이상 징후를 당국이 미리 눈치 챘다는 얘기다.

하지만 내사결과 드러난 이들의 국내 활동 내역은 무기밀매나 마약거래 같은 ‘평범한 사업’(?)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피아들은 다름 아닌 부산·동해안 일대 ‘수산물 밀수출시장’을 놓고 조직 간 피 튀기는 전쟁 중이었던 것. 국내 수산물 소비량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탓에 우리정부는 사실상 이를 묵인했다.

“우리나라와 러시아는 매년 해산물 수입 쿼터(한도량)를 협의하는데 그 양이 1990년대 이후 계속 줄어드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먹는 명태, 킹크랩, 조개류 등은 도저히 정상적인 수입 경로만으로는 국내 소비량을 따라갈 수 없었지요. 이런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해외 선박과 우리 수입업자 사이의 직접 거래, 즉 밀거래가 관행으로 굳어진 겁니다.”

문제는 러시아 마피아 조직이 불법거래를 좌지우지한다는 점이었다. 이들은 대규모 선박회사를 운영하며 자국 연안의 해산물을 싹쓸이해 한국, 일본 등지에 팔아 막대한 수입을 챙겼다.

“물론 국내 업자들이 지불한 대금은 ‘환치기’ 수법을 통해 수수료 한 푼 떼지 않고 러시아 마피아 소굴로 흘러들어갔습니다.”

김 경위에 따르면 2003년 한 해 동안 수산물 밀수입 대가로 무려 350억원의 거금이 러시아 마피아 수중에 들어갔다. 그러나 당시 언론에는 수입액 규모가 90억원으로 축소돼 보도됐다.

더구나 중간에 수사가 잠정중단 되는 바람에 경찰에 적발된 사례는 전체 밀수입 규모 중 극히 일부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적어도 연간 천억 원대 이상의 자금이 부산을 통해 러시아 마피아에 들어갔을 것이란 얘기다.


“나우모브, 국내 A은행 통해 조직돈 빼돌려”

나우모브 피격사건은 이 같은 엄청난 이권을 둘러싼 마피아 조직 간의 암투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나우모브가 이끄는 야쿠트파와 경쟁관계인 ‘피드라코프파’에서 킬러를 고용, 부산 일대를 장악한 그를 청부살해했다는 것.

그러나 김 경위는 나우모브가 야쿠트파 보스로 제법 큰 선박회사를 운영함과 동시에 또 다른 상위 조직의 간부였다고 전했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나우모브는 야쿠트파를 운영하며 동시에 상위 조직의 자금관리를 담당한 중간보스였습니다. 그는 일본, 미국 등지에 마련한 조직의 거점은행 계좌를 관리하며 거액을 주무르던 핵심인물이었지요. 그런데 나우모브는 조직자금 일부를 자신의 계좌로 빼돌렸습니다. 조직이 눈치 채자 일본으로 도망쳤던 나우모브는 2002년 말 한국으로 건너와 직접 사업을 챙겼죠. 국내 A은행에 개인계좌를 연 그는 업자들에게 이 곳으로 대금을 입금하도록 요구했습니다. 나우모브는 경쟁 조직뿐 아니라 몸담았던 마피아 내부에서도 ‘공공의 적’이었던 셈이죠.”

피격사건 수사가 본격화되자 국내에서 활동 중인 러시아 마피아 등 해외범죄조직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또 부산항을 거점으로 벌어지는 수산물 밀거래가 이들 단체의 주요 돈줄이라는 사실도 확실해졌다. 이들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돈줄’을 말리는 게 최우선이었다.

“당시 명태와 킹크랩 등 러시아 산 수산물을 다루는 국내 수입업체를 일일이 조사했습니다. 약 700여개 업체가 추려지더군요. 이 가운데 지속적으로 러시아 선박과 크게 거래한 업체가 150군데 정도였습니다. 이후 수개월에 걸쳐 내사가 이뤄졌지요.”

수산물 불법거래를 둘러싼 우리 경찰의 수사가 상당히 진전됐다는 소식은 러시아 현지에도 전해졌다. 한국으로 날아온 당시 러시아 외사국장은 주한 러시아 대사관 고위 관계자와 함께 경찰청 외사국을 찾아왔다.

“러시아 당국도 마피아들의 불법조업으로 수산물 수출 분야에서 엄청난 손해를 입은 상태였습니다. 우리 수사팀에서 확보한 밀거래 선박과 업체리스트를 제공해달라고 부탁하더군요.”

당시 외사국이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확인한 러시아 쪽 선박은 300여대에 달했다. 이들은 모두 몇몇 마피아 조직이 운영하는 업체에 소속돼 있었다. 수사협조 여부를 놓고 논의가 시작되자 곧 예상치 못한 세력이 수사팀의 목을 조였다.

당시 해양수산부가 러시아 당국에 협조 불가는 물론 수산물 밀거래와 관련된 수사를 접으라며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나선 것. ‘정부가 러시아와의 협상에서 따오는 어획 쿼터가 매년 줄어드는데 그나마 마피아와 연계된 줄마저 끊기면 국내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경제적 이익을 생각하면 그쪽 말도 일리는 있지요. 하지만 마피아 조직이 국내에 들어와 생기는 부작용을 막는 게 더 큰 의미의 국익이지 않습니까. 결국 경제논리에 밀려 수사는 흐지부지됐지요. 정부부처가 자국 경찰 수사를 방해하는 웃지 못 할 촌극이었습니다.”

국내 강력범죄 사건부터 조직폭력소탕, 해외 마피아 추적까지 위험천만한 임무에 몸을 던진 그는 태권도 4단의 무술 유단자다. 해병대 태권도대표로 전국체전 우승을 거머쥔 뒤 전투부대인 청룡부대에 소속돼 월남전을 경험한 김 경위는 특채로 경찰에 입문했다.

이후 경찰 무도사범으로 활약하며 경찰무도대회를 재패한 그는 70년대 중반 국내 최초의 이종격투기 단체인 대한프로권법협회를 창설하기도 했다.

초임시절 ‘조폭 사냥꾼’으로 이름을 날렸던 만큼 ‘어깨’들과의 주먹싸움도 빈번하지 않았을까. 기자의 질문에 김 경위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경찰무도대회 재패, 정통 무도파

“시경 폭력계에 오래 몸담다 보면 나름의 ‘아우라’가 풍긴다고 하더군요. 하위 조직원을 검거하면서 주먹을 쓰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일격에 제압됩니다. 정말 보스급들은 형사 앞에서 함부로 힘자랑을 못합니다. 영화나 소설에서 벌어지는 조폭과 경찰의 난투극은 그야말로 픽션에 가깝지요.”

무도경관 특유의 절도(節度)와 폭력계 형사의 호기(豪氣), 세계를 무대로 뛰는 외사국 전문 수사관의 지략(智略)을 겸비한 김종도 경위와의 만남은 시종 이채로움의 연속이었다.


#리얼스토리 talk box 김종도 경위

“76년 ‘신민당 각목사건’ 모 국회의원이 둘째딸 동거남에 지시한 것”

김종도 경위가 과거 70~80년대를 풍미한 폭력조직 실세들과 나눈 추억담은 기자의 귀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맘보파’ 오재홍, ‘서방파’ 오기준, ‘전주파’ 김용남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주먹계 거성들이 자신들을 검거한 김 경위를 ‘형님’으로 모셨다. 김 경위는 인터뷰 짬짬이 그들과 얽힌 추억담을 풀어놓으며 회상에 잠기곤 했다

- 김영삼 총재 시절 신민당 각목사건 배후가 당 내부인사라는 설이 있다. 정말인가.
▶ 사실이다. 당시 신민당은 주류와 비주류의 다툼이 치열했다. 사건 때 당사에 난립한 건달들은 김태촌을 비롯해 광주와 목포 등 호남지역을 기반으로 한 세력이었다. 실제 이들을 끌어들인 인물은 목포 출신 건달인 박모(김 경위는 실명을 거론했으나 기사에는 옮기지 않았다)씨다. 그는 신민당 소속 국회의원 S씨의 둘째 사위였다. 아니, 사위라기보다는 딸의 동거남이라는 표현이 더 맞다. S의원의 차녀는 뛰어난 미인이었는데 건달인 박씨와 사랑에 빠졌고 집에서 쫓겨났다. 친정과 절연한 S의원의 딸은 서울 보문동의 허름한 연립주택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그런데 전당대회를 앞두고 비주류 측이 당권을 장악하기 위해 ‘주먹’들의 힘을 빌리기로 결정하면서 S의원이 나섰다. 그는 사위인 박씨를 불러 ‘너희들 힘이 필요하니 사람을 모아 달라’고 지시했고 박씨는 장인의 뜻에 따라 고향 목포와 광주 등을 돌며 동료들을 모아 사건을 일으켰다.

- 노태우 정권 시절 ‘범죄와의 전쟁’의 기화가 된 88년 칠성파 이강환과 일본 야쿠자 가네야마(한국명 김재학)의 결연식 현장을 담은 동영상이 언론에 공개 돼 큰 충격을 줬었다.
▶ 당시 영상을 가장 먼저 확보한 게 나였다. 아마 내부 보고 과정에서 언론에 유출된 것 같다. 당시 부산 칠성파 보스였던 이강환은 모 유력정치인으로부터 지원유세 부탁을 받고 성사를 눈앞에 둔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역 세력의 반발로 뜻을 접은 이강환은 이후 일본 야쿠자와의 연합을 통해 세력 확장을 노렸다. 재일교포 출신으로 사카우메 조 방계조직의 우두머리인 가네야마와 오사카에서 ‘사카스키’(의형제)를 맺기로 한 그는 당시 전국의 건달 보스들과 유명인사를 ‘인기가수 디너쇼’와 ‘스포츠 친선교류’라는 핑계로 현지에 초대했다.
물론 상당수 인사들은 이 행사가 한·일 거물 조폭들의 결연식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대표적인 경우가 과거 수원파 우두머리였던 최모씨다. 그는 무대에 장식된 자신의 이름과 조직명이 적힌 휘장을 보고 화를 내며 곧바로 자리를 떴다. 그와 함께 참석했던 인기방송인 K, 톱스타 S씨 등 연예인들도 분위기를 눈치 채고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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