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화술로 여성들 유혹한 제2의 박인수

여성들을 특유의 화술로 유혹해 ‘난봉꾼’, ‘바람둥이’의 지칭어가 된 카사노바. 그의 엽색 행각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대한민국에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에 사는 40대 김모씨는 인터넷 애인대행 사이트를 통해 여성들을 유혹해 8개월에 걸쳐 64명의 여성들과 성관계를 맺고 이를 동영상으로 촬영해 협박했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의 경우 화술이 뛰어난 것을 빼면 평범한 사람이다. 지난 1950년대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박인수 사건과 유사한 형태를 보여 우리도 놀랄 따름”이라고 밝혔다. <일요서울>은 64명의 미혼 여성들을 농락한 김 씨의 사건을 파헤쳐 봤다.

명문 사립대 영문과를 졸업한 김씨는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게 없었다. 잇따른 사업 실패로 백수 생활을 전전한 김씨는 결국 2000년 경 부모님이 운영하는 떡집을 대물림 받아 수년째 운영하고 있었다. 결혼 생활도 순탄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오래전부터 별거에 들어간 상태였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를 통해 애인대행 사이트를 접한 김 씨는 그곳에서 마음만 먹으면 여성들을 유혹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품게 된다.

김씨는 수많은 애인대행 사이트 중 O사이트와 P사이트를 주로 이용했다. O사이트의 경우 매일 수십 명에서 수백 명까지 많은 회원들이 들어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여성들의 나이는 대부분 20대 초반에서 중후반까지 다양했다.

애인대행 사이트의 경우 돈만 있으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여성들을 손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예전부터 범죄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그의 사기행각은 곧 실행에 옮겨졌다. 그는 사이트를 통해 ‘명문대 영문과를 졸업한 재미교포입니다. 국내에 머무는 동안 애인이 돼 주면 월 500만원을 주겠습니다’라고 글을 올렸다.

일단 글을 올려놓자 여성들의 쪽지가 폭주했다. 김씨는 쪽지를 통해 그녀들의 신상을 파악한 후 자신의 취향에 맞는 여성들에게 연락 했다.

여성들을 만나면 김씨는 떡집사장님이 아닌 돈 많고 화술 좋은 재미교포로 변했다. 수려하게 차려입은 옷에서부터 말투까지, 여기에 영어를 구사하는 모습에서 여성들은 김씨가 재미교포라고 믿게 된 것이다.

몇 차례 만남을 가진 후 김씨는 여성들에게 500만원이라는 거금을 거론하며 모텔 등지로 유인했고 결국 성관계를 맺게 된다.

김씨는 성관계를 맺으면서 하나의 안전장치를 마련한다. 자신이 만난 여성과의 성관계를 몰래 촬영 한 후 마음에 드는 여성들을 지속적으로 만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 것.

한 번의 만남에서 끝난 여성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수차례 만남을 이어올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다시 만나주지 않으면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며 여성들을 협박했던 것이다.

김씨의 덫에 걸린 여성들은 20대 여성들로 대학생, 회사원, 자영업자, 옷집 점원, 무직자 등 다양했다. 협박을 받은 대부분의 여성들은 협박을 받고도 이를 경찰에 신고조차 할 수 없었다.

돈을 못 받은 여성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디 가서 하소연 할 수도 없었다. 애초에 500만원을 준다는 얘기는 여성들을 낚기 위한 미끼에 불과했다.

김씨의 엽색행각은 8개월에 걸쳐 이뤄졌다.


노트북 64명의 동영상 담겨 있어

그의 행각은 경찰의 첩보를 통해 꼬리가 잡히게 됐다. 애인대행 사이트에서 상당한 범죄 행위가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를 벌이던 중 발각되게 된 것.

경찰관계자는 “애인대행 사이트에서 범죄 행위가 이뤄지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를 벌이던 중 김씨의 행각이 수상해 조사를 하게 됐다. 평범하게 생겼는데 그렇게 많은 여성들을 만났다는 게 황당했다”고 전했다.

경찰이 전하는 김씨의 외모는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경찰은 “딱 40대 남성의 모습이다. 평범한 그가 64명의 여성들을 농락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특히 김씨가 만난 여성들의 외모가 상당히 예뻤다는 게 더욱 경찰관계자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고.

경찰 관계자는 “피해 여성들은 하나같이 외모를 잘 꾸미는 미모의 여성들이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20대 초반으로 세상 물정 모르는 여성들이 많았다. 500만원을 준다는 얘기에 혹해서 쉽게 속았던 것”이라며 수사 뒷얘기를 전했다.

64명이라는 여성들을 농락했다는 것에 놀란 수사진들은 그의 노트북을 조사하면서 한 번 더 놀라게 됐다. 여성들과의 성관계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 이 동영상은 화질이 선명해 상대방이 누구인지 식별이 가능하다고 한다.

경찰은 이 동영상이 인터넷 공유사이트나 성인사이트에 유출된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 여성 대부분이 자신의 동영상이 유출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면서 피해를 하소연했다. 64명 외에 또 다른 피해자가 없는지 조사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사건은 반세기 전 있었던 박인수 사건을 연상케 한다. 1950년대 발생했던 한국판 카사노바 원조인 박인수 사건은 당시 상당한 파문을 낳게 했다.

경찰 관계자는 “64명의 미모의 여성들을 농락한 이번 사건은 1950년대 발생했던 한국판 카사노바 박인수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으로 이런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서 중요한 점은 쉽게 돈을 벌려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이들에게 접근해 사기나 성관계를 목적으로 범죄가 자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불황이 계속되면서 20대 젊은 여성들이 쉽게 돈을 벌려는 경향이 있다. 500만원이라는 돈을 애인 대행을 통해 벌려는 20대 여성들의 잘못된 생각이 이를 악용하는 범죄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64명이라는 여성들을 농락한 김씨. 이제 김씨 사건을 통해 이와 유사한 모방범죄에 더욱 단속의 손길이 필요한 때이다. 희대의 카사노바 김씨가 어떤 형벌을 받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한국의 카사노바 박인수 사건

박인수 사건은 1954년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다. 군대를 전역한 박인수는 당시 해군 대위를 사칭하며 댄스클럽을 들락거렸다. 이곳에서 만난 여성들은 명문대에 재학 중이거나 상류층 가정 출신들이었다. 무려 여성 70여명을 농락해 세간의 화제가 된 사건이다.

특히 당시 박인수는 재판 과정에서 혼인빙자 간음죄에 대한 항변으로 “그곳에서 만난 여성들에게 결혼 얘기를 꺼낼 필요도 없었다. 댄스 클럽에서 만나면 자연스럽게 여관에 가는 게 한 과정이었다. 특히 내가 만난 여성들 중 단 한명만이 처녀였다”는 발언을 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에 대해 당시 1심 판사는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할 수 있다’며 혼인빙자 간음에 대해 무죄를 선고해 더욱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후 검찰은 항고했고 결국 항소심에서 박인수는 징역 1년 형을 받아 유죄가 확정됐다.

[인상준 기자] sky0705in@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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