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고 짧게’ 아닌 ‘가늘고 길게’
 
주식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개인투자자들의 성별을 살펴보면 남자가 여자보다 압도적으로 많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가정 내 경제권에 대한 남자의 역할이 여자에 비해 크기 때문이고 경제에 대한 지식이나 의견에서 여자보다는 남자가 더 적극적인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가정 내에서 여자들의 발언권이 강해지고 사회 및 경제활동 참여가 늘어남에 따라 여자들의 주식시장 진입 역시 점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재테크가 특정인의 전유물이 아닌 모든 계층의 관심사로 떠오른 결과 여자들과 청년층의 참여 역시 늘어나고 있다. 
 
진중하고 보수적인 관점 필요
수익보다 리스크 관리가 중요
 
사회적이나 개인적 이유로 확대된 여자들의 주식투자 패턴과 자세는 남자들의 그것과 어떻게 다를까. 주식투자라는 것이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르게 펼쳐지기에 이를 성별로 묶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명백한 논리적 오류지만 한편으로는 성적 특질에 따른 특이성에서 투자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남자의 투자패턴은 공격적이고 저돌적이다.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무모한 성향을 나타내기도 한다. 따라서 매매횟수가 상대적으로 잦은 편이다. 또한 자만하거나 과신하거나 독선에 빠지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다. 여자는 남자와는 뚜렷하게 대비되는 특질을 보이는데 무엇보다 매매횟수가 남자의 반에 불과할 정도로 적다. 
 
수 년 전, 미국 뮤추얼펀드 뱅가드에서는 270만 고객의 성별에 따른 빅데이터 분석을 실시한 적이 있는데 그에 따르면 남자는 여성에 비해 주가가 낮을 때 주식을 더 많이 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금융 위기 극복 단계에서도 여자에 비하여 남자들은 더 자주 매수타이밍을 놓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결과를 놓고 볼 때 남자들은 스스로 뭘 하는지 모를 때에도 마치 알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며 여자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것은 인정하는 성향이 더 많은 것으로 판단된다. 이것은 앞서 지적한 자만, 과신, 독선이라는 남성들의 특질이 투자패턴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읽힌다. 
 
흔히 시장은 교만함을 싫어한다고 한다. 자만과 독선 역시 마찬가지로 시장이 싫어하는 악덕이다. 겸손하지 않은 자가 시장에서 필패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자만과 과신, 독선이 투자실패를 이끄는 주범이지만 이 악덕이 독이 되는 것은 투자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대인관계나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남자들의 이러한 특질에 대비되는 여자만의 특성은 바로 겸손, 진중함, 보수적인 성향이다. 
 
주식시장이 활황을 보일 때 기업공개를 준비 중인 기업들이 대거 주식시장에 상장된다. 그때 공모주에 가장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집단이 바로 여자들이다. 일반적으로 공모주는 상장 직후부터 얼마동안 화제를 불러 모으며 우상향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반영되고 컨벤션 효과가 발휘된 결과이다. 보수적인 투자자들도 적극 움직인다. 
 
과거 담배회사로 거의 독점적 지위를 누리던 KT&G가 기업공개를 단행했을 때 호혜 및 상생 차원에서 잎담배 수매농가에 주식이 배정된 적이 있었다. 그때 일부 극성맞은 투자자들은 그 잎담배 수매농가까지 가가호호 다니며 그 공모주를 프리미엄을 얹어 사들인 바 있었다. 평생 논밭을 일구며 살아온 농부들은 당연하게도 공모주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였으므로 시골 벽촌까지 찾아와 프리미엄까지 얹어 주는 그들에게 자신의 권리는 양도한 것이다. 
 
그렇게 지방 잎담배 농가까지 극성맞게 돌아다니며 주식을 매집한 이들 중 상당수는 바로 중년 여성들이었다. 그들은 평소 친분이 있는 몇 명이 팀을 이루어 며칠이고 시골 농가를 방문했던 것이다. 
 
상장 이후 실거래가는 공모가에 프리미엄을 얹은 가격보다 더 높아졌음은 두말 할 나위도 없었다. 남자들이 얼토당토않은 자기만의 환상에 빠져 엉뚱한 데 힘을 쓰는 반면 여자들은 확실한 수익이 발생할 곳에 배팅한다. 
 
남자들의 특징 중 하나가 낯선 곳에서도 길을 묻지 않는 것이다. 네비게이션 덕에 길을 헤매는 일은 많이 줄었지만 어쨌든 남자들은 낯선 곳에서도 주변에 길을 묻지 않는다. 주변에 길을 물어보면 쉽사리 해결될 것을 스스로 어떻게 해서든 그 난관을 돌파하려 애를 쓴다. 좋게 말하면 자립심이 강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독선적인 것이다. 
 
주식투자는 수익을 말하기 이전에 리스크를 먼저 대비해야만 하는 위험한 게임이다. 흔히 하는 말로 ‘굵고 짧게’가 아니라 ‘가늘고 길게’가 해답일 수 있다. 따라서 진중하고 보수적인 태도가 나중을 위하여 더 나은 경우가 많다. 따라서 어쩌면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더 어울리는 게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스스로 분위기에 휩쓸려 혹은 가당치 않은 자만심으로 선뜻 투자에 나섰다가 크게 데인 적이 있는 투자자들은 적어도 투자할 때만큼은 자신 안의 여성성을 발휘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주변을 아우르고 겸손하며 진중하고 보수적인 투자 자세, 그것이 오히려 시장이 요구하는 투자 자세일지도 모른다. 
 
전진오 굿세이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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