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경쟁’ 정치권에 엄마들 분노…“총선으로 의원 심판한다”

▲ 뉴시스
찬성토론 무산, 어린이집 원장 입김 등이 부결 원인
학부모들 “반대한 42명 의원, ‘낙선운동’” 예고

[일요서울ㅣ박형남 기자]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 법안 부결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국회의원들을 비판하는 여론이 들끓고 있고, 20대 총선의 새로운 변수로까지 급부상할 조짐이다. 여야 합의로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보였던 정치권은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고, 급기야 4월 국회에서 재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부결에 따른 여파가 20대 총선 ‘낙선운동’으로까지 번질 기미를 보이자 선제 대응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여전히 국회를 믿지 못한다’며 재추진할 수 있을지 여부에 의문을 던지는 학부모들이 많다. 오히려 ‘반대표’를 던진 의원들은 ‘공공의 적’이 되는 형국이다. 20대 총선에 새로운 변수로까지 부상한 어린이집 CCTV 의무화 부결에 따른 후폭풍을 짚어봤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원내지도부 합의에 따라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점쳐졌던 어린이집 CCTV 의무화 법안이 지난 3일 부결됐다. 이날 본회의에 참석한 171명 중 83명이 찬성, 42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기권은 46명으로 과반수를 넘지 못했다. 3표가 모자랐던 것.

그렇다면 어린이집 CCTV 의무화 법안에 반대, 기권한 의원들은 누구일까.

먼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반대 의원 명단을 살펴보면, 김영우·김제남·김희국·박맹우·박성호·박원석·서용교·신동우·심상정·양창영·유의동·정진후·강동원·김기준·김민기·김상희·김성곤·김승남·김현미·도종환·박민수·박주선·박지원·백재현·신기남·신정훈·원혜영·유대운·이원욱·이윤석·이이재·이인영·이종걸·임수경·장병완·전병헌·조경태·주승용·진선미·한명숙·홍종학·홍철호 등이다. 

기권한 인사는 강석훈·김성찬·나성린·박덕흠·서기호·송영근·신성범·심재철·윤명희·윤상현·이정현·이에리사·조명철·최봉홍·하태경·강기정·김관영·김기식·김영주·김용익·노영민·민홍철·박남춘·박영선·박혜자·박홍근·배재정·백군기·부좌현·오영식·유승희·유은혜·유인태·이개호·이상민·이완영·이우현·이재영·이춘석·이학영·임내현·전순옥·전해철·정청래·정호준·김춘진 등이다.

합의문까지 작성했지만…

사실 여야 지도부는 이번 어린이집 CCTV 의무화 법안을 진두지휘했다. 여기엔 지난 1월 발생한 인천 송도 어린이집 폭행 사건 이후 아동학대 사례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커져 여론을 의식해 너나할 것 없이 약속했던 것.

실제로 여야 원내대표는 본회의 전날 관련 법안 처리를 약속하는 합의문까지 작성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 표결을 앞두고 의원들 간의 '눈치보기'가 한창이었다고 한다. 자신이 기권하더라도 다른 의원이 찬성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CCTV 의무화 법안이 부결된 가장 큰 이유는 의원들이 내년 총선을 고려해 어린이집 등의 반대에 부담을 느껴 기권·반대를 했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새누리당 한 의원은 “어린이집 원장들의 입김이 세다”며 “총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또 본회의 전날 보육 단체 관계자들이 국회의원실을 돌며 입법 저지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민간어린이집연합회가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로비를 벌어왔다는 사실과 함께 문건 2개가 KBS를 통해 공개됐다. 이 문건에는 CCTV를 모바일앱으로 24시간 공개하는 건 안된다는 내용 등이 담겨져 있다.

이러한 민간어린이집연합회 요구 조건은 대부분 법사위에 반영되기도 했다. 또한 여야 지도부의 합의로 통과될 것으로 보고, 찬성토론을 하지 않은 것도 부결의 또 다른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대다수 의원들이 법안 내용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단순히 CCTV 설치에 관련된 법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의원-어린이집 커넥션 의혹도

어린이집 CCTV 의무화 부결 직후 학부모들은 정치권을 향해 거센 포문을 열었다. 학모부들은 “송도 어린이집 폭행 사건으로 여론이 시끄러웠을 때 곧바로 통과시킬 것으로 보였으나 이제 와서 무산시킨 것에 대해 화가 난다”며 정치권을 비판했다. 국민여론이 들끓자 여야 지도부는 “학부모님들을 실망시켜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며 4월 국회에서 재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난 여론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4월 국회에서 재추진한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다. 어린이집 원장들의 눈치 보기가 여전할 것이라는 시각과 함께 재추진되더라도 통과될 수 있을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선 것.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부모님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회원수 1만4천여 명의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자발적 시민 모임 하늘 풍선은 지난 4일 성명을 내고 “CCTV는 학대를 당해도 제대로 말도 못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며 “CCTV 법안에 반대한 의원들에 대해 낙선 운동을 펼쳐 나가겠다”고 피력했다.

낙선운동은 온라인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회원수 228만 명에 달하는 대표적인 학부모 카페 ‘맘스홀릭베이비’에서는 반대·기권한 의원들을 명단을 공개하면서“반대표 의원들에게 전화 폭탄을 돌리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또 네이버 육아 카페인 ‘맘스홀릭’에서는 “반대한 의원들 이름을 잊지 말고 총선 때 표로 심판하자”는 글이 빗발치고 있다. 심지어 카카오톡 메시지나 블로그를 통해 “자기 지역구 의원 중 반대표를 던진 의원은 절대 뽑지 말라” 등의 글이 나올 정도다. 

뿐만 아니라 회원수 273만 명인 학부모 커뮤니티 ‘레몬테라스’에서도 “세금도둑이 많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네티즌은 “누가봐도 약자인 아이들이 아닌 어린이집과 교사의 편을 들어준 국회가 제정신인지 의심스럽다”고도 했다. 일부에서는 ‘어린이집-국회의원 간의 커넥션’을 제기하는 등 반대표를 던진 의원들에 대한 비판여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심지어 어린이집 원장들의 영향력이 강한지, 학부모들의 영향이 더 강한지를 대결해보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어린이집 원장들의 표를 생각해 반대한 만큼 학부모들의 힘을 보여주는 논리다.

반대표를 던진 의원들에 대한 ‘낙선운동’ 얘기가 온오프라인을 중심으로 제기되면서 20대 총선을 통해 재선을 노리는 의원들의 한숨은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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