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리맨 연쇄살인범 “나는 주체할 수 없는 사이코”

사진은 성도착증을 소재로 한 영화 '퀼스'의 한 장면

“이씨의 컴퓨터에서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증 사진이 20여개나 발견됐다. 이들 가운데 이씨에게 희생된 또 다른 피해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스스로를 ‘주체할 수 없는 사이코’라며 으스댔다.”

지난달 26일 경찰 불심검문에 걸려 붙잡힌 서울 광진구 연쇄살인범 이모(37)씨. 경찰수사결과 이씨는 적어도 2명의 여성을 무참히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했다. 담당 수사관과 프로파일러는 이씨가 전형적인 성도착자이며 냉혹한 사이코패스라고 결론지었다.

이씨가 검거되던 바로 그날 짙은 화장과 스커트 차림으로 여성 탈의실에 드나들다 발각된 대기업 연구원이 권고사직을 당했다. 대기업 해외사업부 소속 선임연구원이던 그는 명문대를 졸업한 미혼의 엘리트였다. 그는 수개월 간 여장을 한 채 회사 여직원 탈의실과 휴게실을 드나든 것으로 드러났다. 역시 성도착증의 일종인 여성물건성애다.

강간과 살인을 통해 쾌감을 느낀 ‘섹스 살인마’ 강호순 사건(성적가학증)부터 8살 어린 소녀를 회복불능의 장애아로 망가트린 ‘조두순 사건’(소아기호증)까지 최근 변태성욕에 의한 사건사고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흔히 성도착증으로 불리는 이상성행동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교묘히 오가며 사회를 병들게 한다.

정상인의 가면을 쓴 변태성욕자의 다양한 유형과 이들을 구별하고 피할 수 있는 몇 가지 지침을 알아봤다.

이상성행동은 비정상적이고 변태적인, 즉 성도착적 행동을 일컫는다. 문제는 성도착의 정도를 놓고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조두순, 소아성애·성적가학증 동시에 드러내”

물론 부부나 연인사이에 재미삼아 스트립쇼를 하거나 역할놀이(커플끼리 교사와 제자, 의사와 간호사 등 특정 역할을 정해 의상이나 소품을 갖추고 즐기는 것)를 하는 것은 문제될 게 없다.

서울성의학 클리닉 설현욱 박사는 “수많은 남성들이 항문성교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는데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 안전하게만 즐긴다면 이는 성에 대한 개인적 취향, 기호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설 박사는 “다만 상대방에게 강제로 특정 행위를 강요하거나 아예 같은 상황이 아니면 전혀 쾌감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엔 비정상의 범주에 들어왔다고 봐야한다”고 설명했다.

성도착에 해당하는 증상에는 여성물건애, 소아기호증, 노출증, 의상도착증, 관음증, 성적피학증(가학증), 수간 등이 있다. 특히 여성의 속옷, 스타킹 등 특정 물건에 집착해 이를 만지거나 냄새를 맡으며 성적 쾌감을 얻는 유형을 ‘절편음란증’이라고 한다. 절도 혐의로 입건된 피의자 가운데 일부는 이 같은 절편음란증 환자다.

일례로 부산 모 비뇨기과 상담코너에는 아들의 책상 서랍에서 일회용 성리대가 붙어있는 여성 팬티를 발견한 어머니의 사연이 접수되기도 했다.

설현욱 박사는 “여성의 속옷, 스타킹 등은 남성의 성적 호기심을 자극해 상당한 쾌감을 준다. 그러나 이를 훔쳐 모으거나 지나치게 탐닉한다면 비정상으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성도착자는 몇 가지 증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지난해 12월 8살 나영이(가명)를 무참히 강간하고 유기한 조두순(57·복역 중)은 소아기호증과 성적가학증의 특징이 동시에 드러났다.

지난달 검거된 광진구 연쇄살인범 이씨는 여성의 속옷을 훔치고 주민등록증을 모으는 등 물건애착증이 있었다. 그는 또 공공장소에서 노출을 즐기는 일명 ‘바바리맨’ 혐의로 입건되기도 했다.


이런 반응 보이면 조심

설 박사에 따르면 하나의 성도착증은 다른 종류의 성도착증세로 이어지기 쉽고 나아가 인격장애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성도착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증세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비정상적인 성경험에서 즐거움을 얻고 스스로 행동을 통제하기 어렵다면 성도착 징후로 봐야한다. 특히 사회가 용납하는 행동에서 벗어나 스스로 죄의식, 열등감을 느낀다면 서둘러 심리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성도착자 가운데는 자신의 상태를 알면서도 은밀히 이를 즐기거나 거리낌 없이 욕구를 표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은 죄책감에 시달리는 이들보다 치료가 상당히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또 성도착증을 고치지 않고 오래 방치하면 강박증, 불안증, 우울증 등 정신적 합병증을 동반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만약 자신이나 지인이 성도착 징후를 보이면 곧바로 전문가를 통해 상담을 진행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한양대구리병원 정신과 최준호 교수는 “의외로 정신과나 성의학 클리닉을 찾는 환자들 중 처음엔 성도착증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우울증 치료를 위해 왔다가 심층면담을 거치며 성도착증세가 원인으로 드러나는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