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대산대학문학상 희곡 부문 수상작

[일요서울|이창환기자] 여자의 어린 시절 상처를 독자적 은유로 구현한 <시에나, 안녕 시에나>가 오는 27일까지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연극 <시에나, 안녕 시에나>는 어둡고 우울하며 음산하다. 조명과 무대까지 컴컴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처럼 그늘이 지는 단어들만  연상되지만, 큰 불편함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여주인공의 외로움과 우울함을 쉽고 평범하게 터트리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의 독특함은 배우들의 의도된 엇갈림, 진행의 난해함, 플롯 혹은 대사의 반복, 기괴한 유머가 가미된 움직임을 통해서 엿볼 수 있다. 이런 독특함은 시적 은유를 고심한 대사와 잘 어울린다. 외로움을 잘 아는 이가 쓴 연극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시에나, 안녕 시에나에서는 언어를 갖지 못한 감정은 당신 마음 속 괴물의 먹이가 된다는 대사가 몇 번이고 반복된다. 이 문장은 간혹 변형돼 나타나는데, 이 반복이 나중에 충격으로 다가온다. 개인적으로 이 같은 진행을 통해 아이가 겪는 심각한 외로움과 불안감은 단어의 정의로 이해되는 것이 아닌 어떤 단어로도 감당할 수 없는 암흑의 고통 같은 것이라는 울림을 받았다.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던 부분이다. 시가 아닌 연극인만큼 배우의 연기와 연출의 도움도 컸다. 솔직히 언어를 갖지 못한 감정은 당신 마음 속 괴물의 먹이가 된다를 듣던 초반에는 그저 은유를 위한 은유를 뱉는다며 폄하했다. 좋은 은유는 형식만 갖춘 것이 아니라 미지의 파급력을 일으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예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런 은유는 자극이나 재미를 주지 못하며 작위적이다.
 
시에나, 안녕 시에나는 무심한 부모, 소외받는 딸, 화해할 수 없는 관계라는, 자칫 익숙할 수도 있는 설정에 변화를 가미했다. 부모의 직업이 환경운동가인 부분이다. 환경운동가는 봉사활동가 부류와 함께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는다. 천민자본주의와 도덕적해이가 팽배한 현실에서 대의로 여길 만하다.
시에나의 부모는 부부가 함께 환경운동에 시간과 노력을 바친다. 직업에 대한 자부심만큼이나 차갑고 까다로운 성격이다. 그들은 목적과 의무에 빠져 딸을 인생에서 제외시킨다. 시에나가 유일하게 갖고 있는 따뜻한 기억은 고래의 죽음을 슬퍼한 부모가 그 감정을 그대로 가진 채 집에 돌아와 시에나에게 투영하는 순간이다. 죽은 고래의 하류에 불과한 순간이지만, 딸은 그날 밤을 잊지 못한다. 이 기억은 긴 시간 지속된 내면 상처와 부딪쳐 그녀를 괴롭힌다. 이 작품에는 누군가가 추구하는 대의에 깔려,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이들의 무력함이 보인다.
 
지인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들은 적이 있다. 지인의 입에서 나온 트라우마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무섭다, 두렵다 등의 단어로 정의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 같았다. 그 때를 어항이 깨지고 얼굴 위로 모래가 쏟아지는 잔상으로 남았다는 이미지 등으로 전했다. 누울 때마다 땅이 꺼지고 가라앉는 이미지에 휩싸여 금방 잠에 빠져드는 것 또한 긴 트라우마가 원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에나, 안녕 시에나는 내면의 상처가 깊은 관객들을 위한 연극일까, 오히려 추천을 주저해야 할까,  연극을 본 후에도 결정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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