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군사독재 통치 30년 동안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해온 민주투사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으나 그 중심적 역할을 했던 분들의 제각기 다른 현 주소는 대략 우리사회에 드러나 있다. 존경받는 위치에서 국가와 국민 사랑이 한결같은, 또 유명을 달리했지만 그 정신이 한결같았던 분들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의 오늘이 이만큼 민주화됐고 투명사회가 됐다는 데 이견이 없을 줄 안다.

그래서 국가나, 국민이나 그들의 고마움과 업적을 기리고 예우에 소홀하지 않으려 한다. 그렇게 민주화를 이룬 지 30년이 돼간다. 이제 민주투사로 위장하고 민족주의로 포장했던 좌파 극단주의가 가면을 쓰고 있을 방도가 없어졌을 뿐더러 음지에 숨어있을 까닭도 없어졌다. 모든 좌파활동이 표현의 자유, 행동의 자유라는 자유마당 안에서 또아리를 틀 수 있는 사회가 된 것이다.

사법부까지 이념에 멍들어 가고, 과거에 매몰된 폭력이 영웅시 되고, 이를 적극 지지층으로 하는 일부 정치권의 후원이 법치를 조소하는 지경이다. 이런 정치권의 공박이 겁나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에게 ‘칼부림 테러’를 한 김기종이 예전에도 4차례나 대중이 모인 장소에서 기습난동을 부린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종북 극단주의 살인미수범에게 공개 발언기회까지 주며 과잉보호하는 마당이다.

경찰의 옴츠린 태도와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 진보정당의 모호한 태도가 좌파 과격주의자들이 성장하는 토양이 되는 현실이다. 이에 대한 확고한 변화 없이는 제2, 제3의 김기종은 언제든지 또 나타날 수 있다. 민족주의를 자처하는 좌파 극단주의자들의 위험성을 더 이상 간과하면 좌파들의 ‘영웅대접’에 고무된 어떤 경악할 사태가 발생하게 될지 모른다.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때 ‘정권퇴진’을 외치는 폭력시위로 변질되기까지 당시 통합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의 야당 인사들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야간 거리 시위에 동참해 불법을 독려했다. 정치인들이 인기에 영합해 민족주의로 포장한 좌파 극단주의자들의 후원자 역할을 하는 문제가 지금 한국정치가 안고 있는 가장 서글프고 부끄러운 단면이다.

이번 테러 범인이 현장에서 ‘반미’ ‘전쟁반대’ 등의 구호를 외친 걸 ‘민족사회주의’ 모습을 보였다는 주장이 나왔다. 민족사회주의는 우리 건국 당시에 국가 구성 원리로 채택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대안적 이념이었다. 그후 내부적으로 군사정권, 대기업 집단을 적으로 삼아 그 적대감을 먹고 자라났고, 외부적으론 반일, 반미 감정을 자양분으로 그 세를 넓혔다. 노무현 전 대통령 출마 당시 대학생들을 상대로 “반미주의자면 어떠냐”고 한 것이 반미 포플리즘의 대표적 예다. 국익에 반하는 발언이란 걸 뻔히 알면서 반미주의를 부추겨 민족사회주의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은 것이다.

지금 인터넷에는 벌써 김기종을 영웅시 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고, 경찰이 사건을 조작하고 있다는 유언비어가 돌고 있다. 김기종 씨가 앞서 네 차례의 폭력난동 범죄에서 제대로 법의 단죄를 받고, 민족주의적 영웅으로 떠받들려 턱없는 과대망상증을 키우지만 않았다면 아마 이번 사건은 충분히 일어나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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