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9일 일본 토쿄 아사히신문 강연에서 “역사적 교훈은 국민 스스로 깨쳐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다음 날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일본 민주당 대표에게 “성노예” 용어까지 써가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것이 좋다.”고 직언했다. 그 보다 1주일 전 박근혜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미국의 알렉시스 더든 역사교수의 말을 인용, “역사란 편한 대로 취사선택해 필요한 것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고 적시했다.

일본 정부는 작년 11월 위안부 범죄를 사실대로 기술한 미국 맥그로힐 출판사 교과서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며 수정을 요구하였다. 여기에 분노한 더든 교수는 앞장서서 18명의 미국 역사학 교수들과 함께 항의 성명을 발표, 일본 정부를 규탄하였다. 19명의 항의 성명은 “역사학자들은 과거로부터 배우기 위해 역사를 가르치고 또 만들어 가고 있다.”고 선언했다. 이어 “국가나 특정 이익 단체가 정치적 목적 아래 출판사나 역사학자들에게 연구 결과를 바꾸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항의 했다.

더든 교수의 지적대로 역사란 개인 의도대로 필요한 것만 취사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메르켈 총리의 말처럼 “역사적 교훈은 국민 스스로 깨쳐야 한다.” 지난 날의 잘못을 사실대로 받아들여 과거 잘못을 올바로 깨달아야 만이 밝은 미래를 열 수 있다

인류의 역사는 주기적으로 변동하며 반복한다. 지난 날의 사건은 훗날 다시 비슷한 사태로 되풀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과거 잘못을 반성하지 않을 때 그 불행은 되풀이된다. 그래서 지난 날의 불행했던 역사는 뼈저리게 반성해야만이 반복을 피할 수 있다. 역사가 지니는 값진 교훈이다.

역사학이 확립된 것은 기원전 5세기였다.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아테네의 헤로도터스(기원전 484-425?)가 ‘역사(페르샤 전쟁)’를 쓰면서부터였다. 헤로도터스 이전에는 신화나 시가(詩歌)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헤로도터스는 인간의 실존한 사건과 일화 등을 조사해 기술했다. 중국에서 사마천(司馬遷:기원후 179-251)이 사기(史記)를 편찬하기 600여년 전이었다.

그러나 필자의 주관을 배제한 객관적 역사 서술은 헤로도터스보다 24년 늦게 태어난 아테네의 투키디데스(460-400BC)에 의해 완성되었다.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서스 전쟁’을 쓰면서 주관적 의견 주입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써내려감으로써 과학적 역사학의 문을 열었다. 그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영광과 수치 그리고 과오를 있는 그대로 기술했다. 더든 교수의 말 대로 ‘편한 대로 취사선택해 필요한 것만 기억’한 것이 아니라 부끄러운 사실도 빠짐없이 담았다.

그러나 아베신토(安倍晉三) 일본총리는 수천년 내려온 역사의 교훈을 외면한 채 편한 대로 취사선택하려 한다.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다. 일본이 다시는 종군위안부와 같은 죄악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만 기억’해선 안된다. 있었던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고 반성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역사란 승자의 기록” “역사는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기록해 나가는 것”이라고 말 한다. 역사란 승자의 마음대로 기록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승자의 일방적 기록은 얼마 못가 지워지고 객관적 사실만 남는다.

아베 총리는 역사란 더든 교수의 지적대로 “편한 대로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님을 각성해야 한다. 메르켈 총리의 직언대로 일본의 위안부 범죄 역사는 일본인 “스스로 깨쳐야 한다.” 일본의 과거 만행과 불행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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