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북한 노림수 남북 대화무드 찬물 끼얹은 이유


한반도의 화약고로 불리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해상에서 남한과 북한이 교전을 벌여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북한이 수개월 전부터 예고해온 서해교전 사태가 마침내 발생한 것이다. 북한 경비정은 지난 10일 우리 해군의 경고를 무시하고 NLL을 침범한 뒤 선재공격을 해 양측이 교전을 벌였다. 이날 충돌로 북한 경비정은 반파됐고 우리 해군은 경미한 피해를 입었다. 국방부에 따르면 북한은 1명이 사망하는 등 사상자를 냈고 우리측의 인명피해는 없었다. 이번 서해교전은 우리 해군측의 피해가 경미하고 북한의 반응도 극렬하지 않아 큰 파장 없이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북한 전문가들은 이번 서해교전은 지난 1, 2차 서해교전 때와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고 지적하고 있다. 북한의 노림수가 숨어 있는 고의적 도발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은 그래서다.

북한 경비정과의 교전 소식이 전해지자 NLL침범 이유에 관심이 모아졌다. 그동안 얼어붙었던 남북관계가 최근 빠르게 녹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갑작스런 도발행위는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이번 서해교전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의문을 갖게 한다. NLL침범 이유와 더불어 ▲1,2차 때와 달리 경비정 한척만 월선한 점 ▲우리 측에 함포를 발사하지 않은 이유 ▲우리 해군의 교전 상황 공개 거부 ▲ 교전 시 북측 경비정 지원 없었던 이유 등이 의문으로 남는다.

북한 측은 경비정이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을 단속하다 NLL을 침범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교전 직전 부근 해상에서 조업 중이던 중국어선은 단 한 척에 불과했다. NLL북쪽에 불법 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이 더 많았던 것을 감안하면 한 척을 쫓아내기 위해 월선했다는 북측의 말은 그대로 믿기 힘들다. 게다가 경비정은 “경계를 넘었으니 배를 돌려 북으로 돌아가라”는 우리 해군의 경고를 수차례 무시했다. 이어 우리측 고속정이 경고사격을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조준사격을 가해 왔다. 해군측의 설명에 따르면 이것이 3차 서해교전의 시작이었다.


입 다문 해군 의문 키워

해군은 NLL을 넘어온 경비정을 향해 경고사격을 했으나 경비정은 우리 고속정을 향해 조준사격을 가해왔고 이로 인해 고속정이 50여발의 총탄을 맞았다고 밝혔다. 교전 당시 북측은 경비정 한 척뿐이었고 우리측은 고속정 4척이 대응기동했다. 수적으로 봐도 경비정은 훨씬 불리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먼저 조준사격을 가한 것일까. 여기에 대해선 해군도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경비정의 공격의사가 분명했는지도 의문이다. 경비정은 85㎜ 대구경 함포를 탑재하고 있었는데도 이를 사용하지 않았다. 우리측의 경고사격이 심각한 위협이라 판단, 대응사격차원에서 조준사격을 했다면 4:1이라는 불리한 상황에서 함포사격을 했을 법도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우리측의 대응은 비교적 강경했다. 4척의 고속정은 대응명령이 떨어지자 일제히 경비정을 향해 발칸포 등 자동화기를 퍼부었다.

우리 해군은 지금까지 대응공격에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필요이상의 화력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해군은 이에 대해 명령체계의 변화로 신속히 강경한 대응을 했다고 밝혔다. 현장지휘 우선 형태로 체계가 바뀌어 신속한 대응을 한 점은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강력대응은 이야기가 다르다. 대응의 강도는 체계의 영역이 아니라 내부 방침의 영역이다. 경비정이 무모하게 월선한 것도 의문이지만 현재 해빙무드에 초강경 대응을 한 우리측의 급변한 태도도 의문이다. 그러나 해군은 이 점에 대해선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북한 던진 미끼 문 남한

해군의 설명에 따르면 경비정은 14.5㎜ 기관포로 추정되는 자동화기로 50여발을 조준사격한 뒤 더 이상 공격을 하지 않았다. 공격의사가 확실했다면 남측의 맹렬한 공격을 받을 때 85㎜ 대구경 함포를 사용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상한 점은 이뿐 아니다. 교전 당시 NLL이북 북한 도서인 월래도와 기린도, 순위도에 각각 경비정 1척씩이 배치되어 있었지만 협공에 일방적으로 당하는 경비정을 지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순위도에 있던 경비정 1척은 기린도 앞바다에 있는 북한어선 쪽으로 기동을 했으며 나머지 2척은 움직이지 않았다.

북한 전문가들은 단 한척의 경비정이 지원도 없이 월선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이를 미루어 북한이 모종의 노림수를 갖고 경비정 한 척만 보냈다고 보고 있다. 김태영 국방장관도 당일 오후 국회 국방위에 출석해 “경비정이 1척만 움직여 심각한 도발을 계획했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의도적이라면 겨우 배 한 척으로 (도발을) 했을까라는 데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북한의 꼼수에 말린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교전 직후 북한은 고의적인 도발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당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느냐는 논리다. 도발이라면 무모하게 한 척만 월선해 남측 해군과 교전을 벌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북한의 이런 주장을 접한 한 북한 소식통은 “북한의 노림수에 남한이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며 “해군의 석연치 않은 태도나 북한의 이상한 도발 등을 미뤄볼 때 이번 사건이 차후 북한에 어떤 빌미를 주게 되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은 북한의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북한은 서해교전이 발생한 직후 언론 매체를 통해 더 높은 수위의 대응을 예고했다.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12일 개인 필명 논평을 통해 서해교전은 남측의 계획된 도발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거듭 밝히면서 남측 군부를 향해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교전이 있기 수개월 전부터 NLL관련 문제를 언급하며 교전을 예고해온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또 노동신문은 이 논평을 통해 “단순한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조선반도의 긴장격화를 노리는 남조선 군부의 고의적이고 계획적인 도발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어 신문은 “불을 즐기는 호전광(남측 군부)들은 반드시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며 “우리는 결코 빈말을 하지 않으며 남조선 당국이 대결과 전쟁의 길로 계속 나간다면 큰 후환이 차려질 수 있다”고 전했다.

향후 북한이 이번 교전을 빌미로 어떤 도발을 해올지 NLL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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