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 신분이란 말에 ‘뻑’가서 2억 사기당했다”

주한 미국 외교관 A(50, 필리핀계)씨가 한국 여성을 상대로 2억여 원을 사기를 친 사건이 발생했다.

부산 해운대경찰서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007년 미국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한 김모(50·여)에게 “필리핀 현지에 컴퓨터 학교를 설립하면 수십배의 이익을 챙길 수 있다며 투자할 것”을 권유했다. 김씨는 A씨가 외교관 신분이어서 별다른 의심없이 투자하기로 결심하고 2007년 9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2억 4천만원을 건넸다. 하지만 1년이 가까이 되도록 투자배당금은 커녕 원금도 받지 못하게 되자 결국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 조사결과 A씨는 투자금을 받은 돈 대부분을 카지노에서 도박자금으로 쓰는 등 유흥비로 모두 탕진한 사실이 확인됐다.

A씨가 현재 외교관 신분이어서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에 따라 국내에서 면책특권을 갖고 있어 국내 형법상 경찰이 적극적으로 수사를 하고도 처벌이 힘들다. 때문에 경찰은 지난 11월 6일 외교통상부를 통해 미국정부에 A씨의 면책특권을 포기를 요청했다.

A씨의 면책특권이 박탈되지 않더라도 민사재판으로 A씨의 퇴직금과 월급 등을 압류해 피해금액을 변제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대 경찰서 외사계 관계자는 “현재 국내에서 외교관이 면책특권을 직접 박탈당한 사례는 없다”면서 “A씨가 자신의 신분을 이용해 거액을 뜯어내고 유흥비로 쓰는 등 죄질이 나쁘다. 미국정부에서 면책특권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A씨 사건이 면책특권이 유지되어 처벌이 받지 않을 경우 반미감정으로 번질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 자칫 외교 분쟁으로 비화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때문에 경찰은 수사에 신중성을 보이며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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