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100돌 맞는 임진년, 한반도 쓰나미 몰아친다”

종말론의 시발점이 된 마야달력.

지구멸망을 다룬 이야기는 상당히 다양하다. 이 같은 낭설들을 바탕으로 벌어진 소동도 국내와 국외를 통틀어 여러 차례 있어왔다. 종말론은 당대의 시대상에 맞춰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 급속히 유포된 이른바 ‘2012년 멸망설’은 과거의 종말론과 조금 다르다. 상당한 과학 수준을 자랑한 고대 마야문명의 달력을 근거로 했고, 3600년을 주기로 공전하는 행성의 궤도와 관련된 천문학적 지식이 뒤를 받치고 있다. 더구나 올 봄 신종플루 등 신종 바이러스까지 창궐하면서 2012년 멸망설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단순히 종말론이 아니더라도 2012년은 대한민국에게 있어 상당히 중요한 해다. 총선과 대선이 예정돼 있을 뿐 아니라 북한 김일성 출생 100돌을 맞아 북측의 움직임도 예의주시해야 한다. 같은 해 세계 주요국에서도 권력이동이 한창 이뤄진다. 국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우리 역시 치열한 알력다툼에 휘말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012년 임진년(壬辰年). 호랑이해를 맞는 대한민국은 어떤 운명을 마주할까.

2012년 지구멸망설이 인터넷을 타고 세계 각지를 강타하고 있다. 지난달 15일 열기구를 띄우고는 안에 6살 아들이 타고 있다고 자작극을 벌인 30대 남성은 “TV토크쇼에 출연해 돈을 벌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고 밝혔다. 그가 돈이 필요했던 이유는 바로 ‘지구 종말에 대비하기 위한 지하벙커를 짓기 위해서’였다.


종말론 너머에 돈벌이 보인다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가르쳐 준다는 인터넷 사이트도 급증했다. 휴대용 식수 정화장치, 가스 마스크, 대기층 파괴로 인한 자외선 노출을 막아주는 차단 담요 등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생존법을 다룬 서적이 200종 넘게 출판됐다.

이전 종말론에 비해 2012년 멸망설에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대부분 사이비 종교인들이 만들어낸 과거 루머와 달리 이번엔 도처에서 ‘돈 냄새’가 진동을 한다는 것. 이달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2012’는 마케팅 전략으로 아예 2012 멸망설을 절묘하게 이용했다.

소니픽처스는 ‘인류보존연구소’라는 이름의 유령 단체의 홈페이지를 만들어 멸망관련 루머를 직접 생산하고 나선 것.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간 루머는 금세 사실로 둔갑해 일대 혼란을 일으켰다.

해당 홈페이지에는 이 연구소 소속 연구원들이 지구가 2012년에 멸망할 가능성이 94%에 달한다고 예측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있지도 않은 연구소를 도용한 지나친 바이러스 마케팅인 셈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 등 권위 있는 연구기관의 전문가들 역시 일련의 종말론은 낭설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NASA의 데이비드 모리슨 박사는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뉴에이지 시대의 신비주의와 할리우드의 기회주의가 만난 사기극”이라고 맹비난했다.


마야달력 종말론의 실체

그렇다면 2012년 멸망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은 어떤 내용일까. 가장 대표적인 것은 2012년 지구와 충돌하는 행성(행성X)이 있으며 마야문명의 달력이 2012년 12월 21일에 끝난다는 것이다. 종말론을 신봉하는 자들은 마야문명 달력의 끝인 2012년 12월 21일에 지구가 행성과 충돌해 인류는 물론 모든 생명체가 소멸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지구 마지막 날’이 존재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마야달력의 2012년 12월 21일은 우리 달력의 1999년 12월 31일, 자동차 주행기록의 99999.99마일과 같다. 즉 계산상의 한 주기가 끝나는 것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마야달력은 56년을 주기로 매일매일 복합적인 요소를 가미해 각각 이름이 붙어있다. 이런 식으로 마야인들은 5126년에 이르는 달력을 만들었다. 현대 과학자들이 마야인들의 방정식에 따라 이를 계산해본바 2012년 12월 21일은 한차례 계산이 끝나고 다음 계산으로 넘어가는 시점이라는 얘기다. 이는 지난 1999년 12월 31일 일명 ‘밀레니엄 버그’라는 괴현상을 우려한 것과 똑같은 소동에 불과하다.

지구와 충돌할 것이라는 행성X의 존재 역시 현재까지는 실체가 없다는 게 중론이다. NASA를 비롯해 각국 천문연구기관 등은 소행성 등 지구로 접근하는 모든 우주 구성체에 대해 상시 관측하고 있다. 하지만 수년 내에 지구에 위협을 줄 만한 위험은 없다는 것.

NASA 수석연구원 데이비드 모리슨 박사는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직경 2마일 이상인 모든 지구 접근체에 대한 ‘지도’를 완성했지만 당장 지구에 위험한 접근체는 발견되지 않았다”며 “세계에 10만이 넘는 아마추어 천문학자들이 있는데 특정 행성이 지구로 돌진하고 있다면 이를 모를 리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2012년 멸망설로 인한 혼란은 크지 않다. 인터넷을 자주 이용하는 중·고교생들 사이에 관련 주장이 말장난처럼 퍼진 정도다. 그러나 앞서 한국에 상륙한 종말론이 적잖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2012년 멸망설을 단순한 인터넷 루머 수준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가장 최근 국내에 상륙한 위기설은 ‘밀레니엄 버그’(Y2K)를 들 수 있다. 2000년 새해가 밝으면 컴퓨터의 숫자 인식 오류로 인해 통신망이 마비되고 자칫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제어하는 장치에 영향을 미쳐 핵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섬뜩한 예언이었다.


한국 상륙한 지구멸망설

이보다 앞서 대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7월 멸망설은 세기말 전 세계인을 공포에 몰아넣었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2001년 미국 9·11 테러가 발생한 직후 또 다시 주목받았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 등장한 ‘적그리스도’가 탈레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추측이 세계를 강타한 것이다.

지난 1992년 우리나라에서 종말론을 신봉하는 모 교회가 주동한 ‘휴거’ 소동도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다. 그해 10월 28일 예수가 재림하고 사람들이 모두 허공으로 올라간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일련의 예언은 모두 빗나갔다. 1999년 7월은 이미 10년 전 이야기가 됐고 3차 세계대전으로 확대될 것이라던 이라크 전쟁도 장기전으로 흐르며 위기감이 누그러진 것이 사실이다.


2012년 격동의 쓰나미 몰아칠 것

지구멸망설은 한낱 낭설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2012년이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해라는 것은 간과할 수 없다. 임진년 용띠해인 2012년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주요국의 대대적인 권력이동이 예정돼 있다.

특히 그 해 총선과 대선을 앞둔 우리나라는 1년 내내 정치적 전쟁에 휘말린 공산이 크다. 4월 국회의원 선거와 12월 대통령 선거를 치르며 사생결단의 대혈투가 자명하다는 얘기다. 4년 임기를 마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도전도, 당대회를 통해 후진타오 주석 후임을 정하는 중국의 대격변이 이뤄지는 때도 2012년이다. 푸틴 총리의 대통령 복귀 가능성이 점쳐지는 러시아 대선도 동시에 치러질 예정이다.

동북아 정치지형이 새판 짜기에 들어가는 그 해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북한의 움직임이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출생 100돌을 맞아 대대적인 잔치를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오랜 외침인 ‘강성대국’ 목표달성의 해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칠순을 맞는 임진년. 그해 북측이 어떤 제스처를 취할지 각 기관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2012년 미국으로부터 군사작전통제권을 넘겨받을 예정인 우리나라는 한반도 전쟁억지력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게 된다. 420년 전 왜의 침공을 받은 것도 공교롭게 임진년이었다는 점은 막연한 불안감을 불러오기에 충분하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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