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 틀’을 벗어던지다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의 시선은 단연 한국 영화계 거장 임권택 감독과 배우 안성기가 만들어낸 영화 ‘화장’에 쏠렸다. 더욱이 메가폰을 잡은 임권택 감독은 만 78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102번째 영화를 선보임으로써 한국 영화계의 새로운 역사를 장식했다. 영화 예술을 위해 혼신을 기울이는 임권택 감독을 만났다.

베니스영화제를 비롯해 해외영화제에서 극찬을 받은 영화 ‘화장’이 오는 4월 9일 개봉한다. 개봉을 앞두고 임권택 감독은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한 카페에서 [일요서울]을 만나 102번째 영화에 대한 소감과 인생이야기를 꺼냈다.

임 감독은 이번 작품에 대해 관객들한테 어떤 점이 마음에 닿았는지 물어 보고 싶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영화 ‘화장’은 삶에서 밖으로 드러내기 참 곤란하고 망설여지는 부분들을 드러내는 영화잖아요.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이 관객들에게 사실감 있게 닿고 있는지, 나만 혼자 앞서거나 뒤처져 있는 건 아닌지 고민스럽다”면서 “스위스 쪽에 사시는 외국 팬에게 어떻게 봤냐고 물었더니 ‘사실감이 있어서 굉장히 좋았다’는 답을 주더라. 그것에 조금 자신감이 생겼다. 더욱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시사회를 하는데 굉장히 폭발적이었다. 당시 이런 반응이 우리나라로 옮겨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영화 ‘화장’은 임 감독이 처음 도전해본 소재다.

그간 임 감독은 영화에서 돋보였던 화려한 풍경이나 다양한 공간을 담아왔지만 이번 작품은 제한된 공간에서 한 중년 남자의 심리를 극대화하는 새로운 시도였다.

임 감독은 “영화를 준비하면서부터 이런 영화는 처음 해봤기 때문에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게 관객들에게 닿을 수 있는지 의문으로 망설여졌다”며 “우연히 명필름에서 기회를 주었고 스스로도 임 아무개다운 영화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찰나에 이 작품이라면 충분히 승부를 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존의 틀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특히 임 감독은 오상무(안성기 분)와 아내의 목욕신을 인상 깊은 장면으로 꼽았다.

그는 “극중 아내(김호정 분)는 남편으로부터 오랜 세월 병간호를 받았지만 남편에게 오물까지 치우게 했을 때 수치심과 미안함을 담았다. 막상 반신만 가지고 촬영했는데 생각했던 사실감이 드러나지 않았다”며 “결국 여배우의 치부까지 드러내는 모험을 했지만 생각대로 아름답게 찍혔다. 배우 본인도 인정했다. 특히 베니스에서 시사회가 끝나고 박수를 받으면서 그 배우에게 미안했던 생각은 이제 버려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임 감독은 또 “영화감독으로 가장 많은 작품을 한 감독이지만 이 장면을 놓고 가장 많이 생각했다. 그것을 찍기까지 배우 역시 고통스러웠을 테고 감독도 힘들었다”며 사실감 있는 영상을 위한 고집을 드러냈다.

작품에 대해서는 한 치 물러서지 않는 고집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에 대해선 겸손함으로 대신했다. “이제 나이가 80인데 하고 싶은 것은 많지 않다. 그간 다 해봤고. 다만 더 좋은 소재로 좋은 영화를 남겼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한때 어설픈 작품들도 했고 옛날에는 뭐를 해야 할지 잘 몰랐다”면서 “이 나이에도 살다 보면 영화에 담고 싶은 소재를 만날 수도 있겠지. 나이 많이 들었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어정쩡하게 산다는 것은 말이 안 되고 무엇을 해도 해야 될 것 같다”며 예술가의 열정을 드러냈다.


임 감독은 또 “영화 말고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다. 삶의 윤활유가 될 수 있는 소재가 있다면 영화를 계속 찍고 싶다”면서 “이제는 작품에 들어가면서 거짓말을 찍지 말자고 생각한다. 몸에 밴 것들이 있어 안에서는 충동질을 할지언정 탈색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사실감 있게 작품을 그려내려했다. 내 영화는 조금 덜 거짓스러운 영화를 궁극적으로 추구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온전하게 평생에 사랑으로만 살아지겠어요. 그렇게 못 살기 때문에 사랑하자는 생각으로 산다”는 말로 감독 임권택의 영화 인생을 대변했다.

todida@ilyoseoul.co.kr

<사진촬영=송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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