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들킨 여성의 운명

[일요서울 | 서준 프리랜서] 성매매를 하는 모든 여성들의 궁극적 소망은 딱 하나다. 바로 더 이상 성매매를 하지 않는 것이다. 하루 빨리 그곳에서 탈출해 평범한 생활로 복귀하는 것이 소원이다. 실제 이러한 탈출과 회생에 성공한 여성들은 ‘소박한 것들의 행복’을 몸소 체험하면서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여성들이 탈출에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또한 탈출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경우는 과거를 그리워하는 경우도 있고, 평범한 생활에 아예 적응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결국 ‘성매매를 안하면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환상이었음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어쩔 수 없이 불법을 저질렀던 사람들이 그 불법에서 탈출했는데, 왜 과거보다 훨씬 더 행복하지 않는 것일까?

서울 시내 한 평범한 미용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최모씨(33). 그녀는 여느 미용실에서 일하는 미용사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일에 대한 열정도 그렇고, 깍듯하게 손님을 대하는 모습도 서비스 정신이 강한 여성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과거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녀는 20대 중후반을 유명한 성매매 집결지인 용주골에서 보냈다. 당시 성매매특별법이 발효된 뒤라, 손님들이 밀물처럼 밀려드는 시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손님들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빚도 갚고 새 삶을 위한 터전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과거에 꿈꾸던 미용사일을 하면서 하루하루 행복해 보이는 삶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그런데 그녀의 마음은 온전히 행복하지 않다. 아직도 과거 성매매를 했던 시절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녀를 괴롭게 했던 것은 지금의 미용실로 오기 전에 해고된 기억이다. 당시에도 그녀는 지금과 다를 바 없이 열심히 일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의 얼굴을 알아본 한 남성 때문에 결국 미용실을 그만두게 됐다. 그 전까지 살갑게 대해주던 원장의 얼굴도 차갑게 변했고, ‘더 이상 여기서 일을 할 수 없다’는 말이 청천벽력처럼 들렸다. 부당해고가 맞지만, 최 씨는 그 어떤 항변도 할 수 없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부당해고 보다 최 씨의 과거가 더 부당하게 느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내가 일했던 곳은 용주골이었고, 지금 일하는 곳은 전혀 다른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일부러 용주골에서도 먼 지역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숨을 곳은 없었다. 결국 과거가 탄로가 나고 미용실에서 쫓겨났다. 지금은 새로운 곳에 취업했지만, 매일 매일이 좌불안석이다. 언제 나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나타날지 불안하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이제 남은 선택은 지방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방이라고 무조건 안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방 사람들도 용주골에 놀러갔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평범한 생활로 돌아왔지만, 나의 마음만큼은 아직 평범해지지 못하다.”

도대체 그 남성은 어떻게 그녀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일까? 답은 두 가지 밖에 없다. 그 남성이 유난히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거나, 혹은 그녀의 얼굴이 동영상으로 촬영되어 떠돌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녀는 음란 사이트 등에 익숙하지 못해 자신의 영상이 있는 것 까지는 확인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사이트에 접속을 하더라도 자신의 얼굴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에 틀림없다. 수천, 수만 의 포르노 동영상 중에서 어떻게 자신의 얼굴을 찾아내겠는가. 어쨌든 그녀는 지금의 생활이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과거 자신의 택을 무척이나 후회하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고통을 견뎌야만 하는 여성은 최 씨 혼자만이 아니다. 성매매 지대에서 탈출한 상당수의 여자들이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에 찾아오기 등 천태만상

과거 성매매 시절 남성들이 몰래 찍었던 포르노는 여성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성매매 여성들은 늘 어두운 모텔에서 불을 끄고 섹스를 하는 경우가 많다. 거기다가 대다수 남성들이 먼저 모텔에 들어가다보니 그들에게는 몰래 카메라를 설치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 따라서 여성들은 미처 몰카가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고스란히 자신의 얼굴이 노출되는 ‘테러’를 당하게 된다. 그리고 일단 한번 인터넷에 오르게 되면 수백, 수천 개의 파일이 복제돼 다양한 사이트로 전송된다는 것. 이렇게 되면 여성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손을 쓸 방법이 없게 된다. 실제 이러한 일을 당한 성매매 집결지 탈출 여성은 간신히 되찾은 자신의 생활을 다시 접어야 했다.

또한 만약 성매매 업소에서 진 빚을 완전히 갚고 나오지 못했을 때에는 결혼을 하거나 직장을 얻었을 때 해당 주소지로 찾아와 협박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당사자는 공포심 그 자체를 느끼게 된다고 한다. 이제껏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왔던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면 해당 지역의 사회에서 매장당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결혼한 남편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결혼이 파탄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여성은 제대로 된 위자료도 요구하기 힘들어진다. 만약 합의이혼을 하지 않고 소송을 하게 될 경우 또 한 번의 추가적인 신분폭로가 예상되기 때문에 그저 남편이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 결국 간신히 성매매 집결지를 탈출하거나 더 이상의 성매매를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한편으로 안타까운 면이 적지 않다. 과거의 어려웠던 경제여건, 그리고 잘못된 생각으로 했던 일들이 미래의 평생을 좌우한다는 점은 다소 불합리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한 성매매 여성은 이에 대해 ‘생각보다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폐쇄적’이라고 말한다.

“내가 듣기에 외국에서는 포르노 배우가 정치도 한다. 또 집단으로 나서서 세금을 내고 합법적인 지위를 요구하기도 한다. 선진국이라는 외국에서 그런 일이 생긴다는 점을 봤을 때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후진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는 과거이지 않은가? 그런 일로 평생을 어둠 속에서, 좌절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면 그것은 이 사회 자체가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러나 당분간은 이런 현실이 쉽게 개선될 수 있는 여지는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갑자기 사람들의 인식이 바뀔 것도 아니고 정부에서 이런 부분까지 일일이 지원하거나 도움을 주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성매매 여성은 혼자 힘으로 이러한 세태와 맞서야 하는 것 말고는 다른 결론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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