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이창환기자] 산울림 소극장 개관 30주년 기념 <고도를 기다리며>13인의 명배우와 함께 517일까지 공연된다.

사무엘 베케트가 던진 <고도를 기다리며>1953년 초연 이후 파리에서만 300회 이상 공연됐고 세계 50여 개 나라로 퍼져나갔다. 작가는 196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영국의 연극학자인 마틴 에슬린이 <고도를 기다리며>부조리 연극이라고 명명함으로써 고도를 기다리며는 반연극 또는 부조리 연극이라는 새로운 물결을 제시하게 된다.
 
이 문제작을 한국의 고도인 임영웅 연출이 뛰어난 배우, 스텝들과 함께 다시 재현했다. 고전의 여운에 빠지기를 고대했던 관객들을 위해서다. 임영웅 연출은 희곡 안에 담긴 작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풀어낸다. 그의 다양한 연출 이력은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정점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25년 만에 돌아온 배우 정동환과 각각 14년과 10년 만에 돌아온 안석환·김명국, 박용수·정재진이 일정을 나눠 공연한다. 배우 한명구, 이호성, 박상종은 750450회 동안 고도를 기다리며를 지켜온 전문가들이다.
 
부조리극이라는 것과 반세기 이상 지난 현대 고전이라는 점 때문에 요즘의 관객들은 쉽게 몰입하지 못할 수 있다. 인물들의 대사 톤, 대화의 추상성과 반복, 그보다 더한 몸짓은 낯설게 느껴진다. 황량한 배경 앞에서 배우들이 하는 행동은 실소마저도 쏙 들어가게 한다. 바보스러운 행동의 의도가 관객들을 웃기기 위함인지, 언어로 표현되지 못하는 흐름을 전달하려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워서다. ‘슬픈 희곡정도의 장치로 보이기도 한다. 개인의 생각에 따라 유쾌할 수도 있고 연민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170분이라는 러닝타임 중 40~50분 정도를 참고 지켜본다면 귀가 열리고 눈이 뜨일 것임을 확신한다. 극 속 거지들, 기묘한 주인과 노예 앞으로 집중력이 쏠릴 것이다. 4명의 인물들은 바보, 벙어리, 폭군이었다가도 갑자기 철학자, 천재, 신경쇠약자로 변한다. 그 변신은 상대방의 한마디 질문으로 이뤄지거나, 머릿속 화석으로 굳어버린 흔적에 스위치를 켜는 것으로 촉발되기도 한다. 관객들은 들쑥날쑥한 인물 덕분에 웃을 수 있고, 때로는 전율을 느낄 수 있다. 인물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고받는 고도를 기다려야지”, “아 참 그렇지부분은 아무리 어리석은 행위를 반복하고 또 망각하더라도, 누구나 하나의 이상은 안고 산다는 메시지로 연결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봤다.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의 비실체성과 비극성은 이런 감정을 굳히게 해준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배우가 능력을 펼칠 여백이 요즘 연극보다 많다. 해석에 따라 혹은 배우의 정신에 따라 미묘한 차이를 누릴 수 있는 작품이다. 그래서 어떤 연극보다도 재 관람에 대한 의욕이 생긴다. 쟁쟁한 배우들의 일정 분담 또한 재 관람 의지를 북돋아준다.
 
줄거리-
시골길. 앙상한 나무가 한 그루 서있을 뿐 아무 것도 없다. 그 나무 아래에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실없는 수작과 부질없는 행위를 반복하며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이어서 포조와 그의 짐꾼 럭키가 등장하여 많은 시간을 메운다. 그리고 그 기다림에 지쳐갈 때 쯤 한 소년이 등장하여 말한다. “고도씨는 오늘 밤에는 못 오고 내일은 꼭 오시겠다고 전하랬어요.” 이렇게 어제인지, 오늘인지, 혹은 내일일지 모르는 하루가 저물어 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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