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된 주식시장에 물 만난 고기 될까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액면분할과 관련한 국내 주식시장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대표적인 초고가주로 거론되던 아모레퍼시픽은 이미 지난달 액면분할을 결정했다. 올해 들어 액면분할을 공시한 기업은 아모레퍼시픽과 아모레퍼시픽그룹을 포함해 총 7개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번 아모레퍼시픽 액면분할을 계기로 삼성전자와 같이 잘 알려진 주식들의 액면분할도 가능해질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거래량 늘어나면서 주가 오르고 시가총액 불어
소액투자자 참여 확대가 국민주 탄생으로 이어

액면분할이란 고액주식의 액면가액을 일정한 비율로 나눠 주당 가격은 낮추고 주식 수는 늘리는 것이다. 분할 이후에도 시가총액은 동일하지만 표면적인 주식 가격이 내려가고 주식 수는 많아지면서 거래량이 활성화되는 효과가 있다.

예를 들어 1000만 주가 발행된 A주식의 액면가는 5000원이고 주가는 100만 원이라고 가정해보자. 이를 10분의 1로 액면분할하면 주식 수가 1억 주로 불어나고 액면가는 500, 주가는 10만 원으로 쪼개진다.

이처럼 액면분할은 총 자본금이나 기업가치에는 근본적인 변화를 주지 않는다. 하지만 소액투자자들의 참여로 거래량을 증가시키면서 주가를 상승시켜 결과적으로 시가총액도 불어나게 만드는 촉매 역할을 한다. 이렇게 되면 기업 입장에서도 고가주에서 얻을 수 있는 권위 대신 시가총액 증가로 인한 실익을 취하는 것이 나은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일부 기업들은 주식 수가 확대되면서 주주들이 늘어나기 때문에 주주권 행사에 따른 잡음을 우려하기도 한다. 특히 오너가 소수지분만을 갖고 있는 기업의 경우 경영권 방어와도 연계되는 민감한 부분이기에 거부감이 더하다. 국내 초고가주 기업들 역시 이를 비롯한 다양한 이유로 액면분할을 꺼려온 것이 사실이다.

한국거래소의
액분 압력 성공?

최근 한국거래소는 국내 증시 활성화를 위해 초고가주 기업들을 상대로 액면분할에 대한 은근한 압력을 넣어왔다. 침체된 주식시장을 액면분할을 통한 거래량 증가와 배당 확대 정책으로 살려내겠다는 의지의 발현이었다.

흔히 말하는 초고가주는 액면가 5000원 환산 시 주당가격 50만 원 이상의 주식을 뜻한다. 거래소에 따르면 액면가가 높을수록 시가총액 비중이 컸으나 거래량은 저조했다. 반면 액면가가 낮을수록 환산주가를 기준으로 한 주가와 거래량은 높은 흐름을 보였다.

또 액면가가 높을수록 회전율은 낮은 반면 액면가가 낮을수록 소액투자자 거래비중은 증가했다. 이로 인해 개인투자자들의 접근성이 올라가면서 외국인에게 다수 돌아가던 배당금이 국내로 재유입되는 효과까지 가져왔다.

실제로 거래소가 기존 초고가주 기업들의 주가를 분석한 결과 액면분할을 실시한 기업들의 주가가 오르고 거래량도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SK텔레콤과 제일기획은 액면분할 직후 주가가 단기적 또는 장기적으로 상승했으며 거래량 역시 급증하는 흐름을 보였다.

이에 거래소는 초고가주에 대한 액면분할로 개인투자자들의 접근성을 높이면서 동시에 배당촉진 정책을 실시해 국민주가 될 수 있는 경우에 주목했다. 특히 주당 주식가격이 100만 원을 넘기는 삼성전자, 롯데제과, 아모레퍼시픽 등을 대상으로 직간접적 압박에 들어갔다.

당초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액면분할에 관한 사항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발을 빼왔다. 그러나 주가가 300만 원에 근접하자 결국 액면분할을 선언했고 이후 주가는 300만 원을 훌쩍 넘겼다.

삼성전자·롯데제과도
아모레퍼시픽 따라갈까

때문에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삼성전자 역시 액면분할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액면분할의 길로 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간 삼성전자는 애플과도 종종 비교당하며 액면분할을 실시해야 한다는 지적에 휩싸여 왔다.

들여다보면 전 세계 시가총액 1위인 애플의 경우 지금까지 총 4차례의 주식분할을 실시했다. 이로 인해 애플의 발행주식 수는 43000만 주에서 603000만주로 14배나 늘어났고 시가총액은 지난 277469000만 달러(860조 원)로 세계 증시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사실 애플은 2013년 초까지만 해도 시가총액이 삼성전자의 두 배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현재는 삼성전자보다 무려 네 배가 넘는 수준으로 격차를 크게 벌렸다. 여기에는 실적이나 신제품 출시 및 판매전략 외에도 주식분할이 큰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이 외에도 코카콜라는 현재까지 10차례의 주식분할을 실시했으며 월마트와 마이크로소프트(MS)9차례의 주식분할을 거친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의 경우 액면에 관한 제한규정이 없어 무액면주식 발행이 허용된다. 때문에 국내의 액면분할과는 약간 다른 주식분할의 개념을 띠고 있지만 본질은 비슷하다.

또한 미국 다우지수 종목은 통상적으로 주가가 100달러에 근접하면 분할을 실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우지수의 종목 선정에는 거래량도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주식분할을 실시하지 않으면 지수에서 퇴출당할 공산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 시가총액 상위종목 중 90%에 달하는 기업은 주식분할 후 주가와 거래량에서 호조세를 보였다. 일본 역시 시가총액 상위종목 중 62.5%에 달하는 기업이 주식분할 후 주가가 상승했고 종목 거래량도 큰 폭으로 늘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아모레퍼시픽의 경우 서경배 회장이 액면분할에 워낙 부정적인 입장이었음에도 사방에서 펼쳐오는 직간접적인 압박에 결국 주식을 쪼갠 것이라며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삼성전자 역시 계속해서 액면분할을 하지 않고 버틴다면 이재용 부회장을 향한 압력도 점점 거세질 것이라고 말했다.

nykim@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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