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검찰이 기소해온 사건에 대해 이례적으로 판결 전에 잠정적인 결론을 밝혔다. 판사는 본안사건에 대해 판결문으로만 말할 수 있다는 절대적인 원칙을 깼다는 점에서 더욱 괄목할 일이다. 세월호사건 당일에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기소된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 사건에서 담당 재판부가 “박 대통령과 정윤회 씨가 세월호 당일 만났다는 소문은 허위”라고 못 박았다.

담당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는 “정씨의 휴대폰 발신지 추적기록, 청와대 출입관련 공문, 같이 있었다는 한학자 이모씨의 증언 자료를 종합해볼 때 가토 전 지국장이 기사화 한 소문의 내용은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허위가 증명됐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변호인 측의 여러 주장에 대해서도 “가토 전 지국장 측은 청와대 취재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고, 정씨 취재도 하지 않았다는 점도 인정하고 있다”며 “이는 사실관계를 확인치 못한 점을 자인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변호인 측은 소문의 사실 여부보다는 가토 전 지국장이 사실이라고 믿어서 보도했는지, 사안이 그만큼 공적 관심사였는지 등에 중점을 둔 변론준비를 하라는 일침을 가했다. 판결 전에 재판부가 이런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우리 언론은 일부 좌파언론이 언론탄압 운운하며 독재정권의 하수인으로 검찰을 비난한 것 말고는 크게 눈에 띄게 산케이신문 보도를 문제 삼은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외국 언론이, 그것도 한국민에게 씻지 못할 민족적 피해를 준 일본의 신문이 한국의 국가원수를 대상으로 찌라시 소문을 근거한 거의 ‘희롱’ 수준의 기사를 낸 걸 표현의 자유로 인정하는 너그러움(?)을 보인 것이다. 얼마나 허무맹랑해 보였으면 판결 전까지 예단을 금물로 하는 재판수칙을 깨고 문제의 기사가 전혀 확인 없이 쓴 엉터리 기사라고 밝히는 극히 이례적인 결론을 내렸겠는가.

언론뿐 아니라 ‘보수’의 침묵과 방관자적 자세도 마찬가지다. 보도기본조차 모르는 산케이신문의 저급함과 무례함에 대해 분개해서 나서면 꼭 박근혜 정권에 아첨이라도 하는 것처럼 비춰질까 우려한 비열함인지 모른다. 아직도 제1야당의 중진급 국회의원이 라디오 인터뷰에서 천안함 사태를 북한의 소행으로 믿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판이다.

정확히 6년 전인 2009년 4월 당시 박연차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100만 달러를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몰랐던 일”이라며 이를 시인하지 않았으나 박연차 회장의 진술은 아주 일관되고 구체적이었다. 박 회장은 “2007년 6월 말 100달러짜리 지폐묶음 형태로 100만 달러가 든 가방을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을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던 바다. 검찰은 또 돈이 전달된 뒤 노 전 대통령이 그를 직접 만나 “도와줘서 고맙다는 답례인사를 받았다”는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 구체적인 것은 노 대통령의 환전 요구에 따라 박 회장이 직원 130명 명의를 빌려 달러로 바꿔 전달했다는 진술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 회장이 ‘특별한 사정’에 의해 허위진술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폈다. 이 때문에 노무현-박연차 간 진실게임은 둘중 누군가는 죽어야만 하는 ‘치킨게임’이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산케이신문 사건 얘기하다가 돌연한 얘기 같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 저택 얘기가 훗날 어떤 논란거리로 등장케 될지 갑자기 궁금해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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