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재기 꿈꾸다 좌절…중국서 생 마감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한때 진로소주와 카스맥주를 쌍두마차로 국내 주류시장을 이끌며 재계에서 19위까지 올랐던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이 최근 중국 베이징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향년 63세다. 장 전 회장은 외환위기 이후 그룹이 공중분해되면서 10년간 캄보디아와 중국 등 아시아권에서 도피생활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끝내 고국땅을 밟지 못하고 숨을 거둬 ‘비운의 황태자’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재계 황태자서 수천억 ‘꿀꺽’… “힘들고 괴롭다” 되풀이
누리꾼 “황태자의 객사, 위엄 어디갔나? 인생무상이다”

업계 관계자는 “재계의 황태자에서 범법자로 추락해 도피 생활을 이어가며 심신이 지칠대로 지쳤을 겁니다"라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사망 전날도 한국의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괴롭고 힘들다', ‘나의 명예가 회복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되풀이 한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 <뉴시스>

6일 재계와 대사관 등에 따르면 장 전 회장은 지난 3일 베이징에 있는 자택에서 심장마비 증세로 숨을 거뒀다. 한국대사관 측은 그가 병원으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사망했다고 전했다.

젊은 나이에 맛본
성공과 추락

1985년 선친 장학엽 회장에 이어 진로그룹의 2대 회장으로 취임한 장 전 회장은 수천억원에 달하는 분식회계와 비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2년6월·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집행유예 기간이던 2005년 캄보디아로 도피했다가 2010년 중국으로 도피처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장 전 회장이 10년 간의 오랜 도피생활과 재기실패로 상당한 심리적 압박을 받아온 것으로 보고 있다. 그의 사망으로 진로그룹의 과거사에 관심이 모아진다.
장 전 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79년 진로에 입사했다. 선친인 장학엽 회장에 이어 1988년 제2대 회장에 취임해 진로의 사세 확장을 이끌었다.

진로그룹은 한때 계열사를 20개 넘게 거느리며 재계 19위까지 올랐지만 1997년 외환위기 속에서 자금난에 빠지면서 몰락하기 시작했다. 무리한 사세 확장으로 경영이 악화한 탓이었다.
진로의 모태는 1924년 합자회사인 진로그룹의 창업자인 우천 장학엽이 평안남도 용강군에 설립한 진천양조상회가 그 기원이다.

1950년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옮겨가 낙동강, 금련소주를 생산했고, 1954년 전쟁 후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서광주조(西光酒造)를 세우면서 ‘진로소주'를 다시 생산해냈다.
1961년 최초의 계열사인 서광산업(현재의 서광모드)을 설립했으며, 1966년 진로주조로 상호를 변경하고, 1975년 사명을 진로로 바꿨다.
1985년 진로그룹의 설립자인 우천 장학엽이 향년 81세로 폐암에 걸려 사망하면서 제2대 회장으로 장진호 회장이 취임했다.

1987년계열사인 진로종합유통를 설립했으며, 이 시점이 진로그룹의 유통업 진출의 신호탄이었다. 1989년 본사를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으로 이전했다. 1992년(주)진로와 미국의 쿠어스사가 50:50 비율로 합작한 진로쿠어스맥주를 설립한다. 1994년 진로쿠어스맥주는 카스를 출시하며 명맥을 이어나갔다.
1996년에는 대한민국 재계 순위 24위로 오르는 기염을 토했고, 진로그룹 산하에 24개의 방계 및 계열회사가 있었다.

하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 탓에 결국 이듬해 불어닥친 IMF를 비껴가지 못했고 부도를 맞았다. 
1998년 3월에는 핵심 계열사인 (주)진로와 (주)진로종합식품등 6개 계열사 등이 서울지방법원과 대법원이 법정관리와 화의신청개시에 대한 인가를 명령받았다. 1999년 12월에 진로의 맥주사업부문인 진로쿠어스맥주를 OB맥주에 매각하였고, 2000년 2월 진로의 위스키사업부문인 진로발렌타인스가 프랑스의 위스키업체인 페르노리카사에 매각됐다.

결국 2003년 1월에 진로가 한국증권거래소(현 증권선물거래소)로부터 상장을 폐지당했다.
2005년 7월 진로는 하이트맥주에 인수됐다. 또한 현재 (주)석수와 퓨리스가 하이트진로음료로 사명이 바뀌었으며 하이트맥주와 진로가 합병돼 하이트진로(주)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장 전 회장은 분식회계, 비자금 횡령 등으로 구속기소돼 2004년 10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검찰은 그가 1994∼1997년 자본이 완전히 잠식된 진로건설 등 4개 계열사에 이사회 승인없이 6300억 원을 부당지원하고, 분식회계를 통해 금융기관에서 5500억 원을 사기대출받은 혐의 등을 적용했다.
장 전 회장은 진로의 대주주였으나 2004년 4월 법원의 정리계획안 인가에 따라 진로 지분 전량이 소각됐다. 또 그의 재산도 대부분 법원에 의해 가압류됐다.

기업회생 자금 횡령
옛 임원 고소하기도

외환위기 와중에 진로그룹이 부도나면서 모든 것을 잃은 장 전 회장은 진로를 되찾으려는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외자를 유치하거나 자신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기업을 앞세워 진로 인수전에 뛰어들 가능성도 일각에서 제기됐다.
그러나 장 전 회장은 분식회계와 사기대출 등으로 거액의 공적자금을 낭비한 책임이 있는 범죄자인 데다가 정서적으로도 다시 경영활동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경영인으로 복귀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고 진로를 되찾기도 어려워졌다. 결국 그는 집행유예로 풀려나고서 2000년대 중반부터 기약 없는 해외 도피 생활에 들어갔다.
장 전 회장은 10여 년간 캄보디아, 중국 등을 떠돌며 생활했다. 외국에서 은행, 부동산 개발회사, 카지노 등을 운영하며 재기를 노렸지만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13년에는 기업 회생을 위해 마련했던 거액의 자금을 횡령했다며 옛 진로그룹 임원을 검찰에 고소하기도 했다.

안 잡았나?
못 잡았나?


장 전 회장은 캄보디아에서 도피생활을 이어가던 중 현지에서 탈세 문제가 불거져 2010년 중국으로 도피처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재기하지 못한 장 전 회장은 결국 지난 3일 베이징 자택에서 숨졌다.
원칙적으로 집행유예형을 확정받은 사람은 출국금지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장 전 회장은 집행유예 확정 판결을 받기 전에 캄보디아로 출국했다. 이 때문에 ‘도피자'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10년간 해외를 전전하다가 결국 중국에서 최후를 맞은 장전 회장에 대해, 누리꾼들은 “결국 객사했다" 라면서 한때 재계 24위까지 갔던 위엄은 어디 갔느냐 라며 “인생 무상" 이라는 반응 쏟아냈다. 

skycros@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