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스위스 로잔에서 이란과 6개국(1+6)은 이란 핵 잠정협정에 서명했다. 이란은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고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단계적으로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풀기로 했다. 이란에는 일부 평화 목적의 핵 활동을 허용하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광범위하고 엄격한 사찰을 받기로 했다. 로잔의 핵 협정은 우리 국민에게 북한 핵 폐기에 대한 한 가닥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그러나 이란과 북한은 전혀 다르다는 데서 희망은 절망으로 꺾인다.

1+6(이란과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독일) 회담을 주도한 이란의 실무 책임자들과 북한은 너무 다르다. 이란의 무하마드 자리프 외무장관과 알리 살레히 원자력 청장은 각기 미국 덴버 대학과 MIT에서 박사학위를 마쳤다. 67세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도 영국 캘레도니언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들은 모두 장기간 서구교육을 받으며 의식구조가 합리화되었다. 더욱이 온건 실용주의 로하니 대통령은 2013년 자유선거를 통해 이슬람 강경파를 누르고 당선, 유권자를 위한 민생정치에 나서 핵보다 민생을 선택했다.
하지만 천방지축 날뛰는 32세의 김정은 북한 로동당 제1비서는 10대 중반 때 스위스에서 2년 유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의 유학은 서구의 합리적 사고체계를 체질화하기엔 너무 어렸고 너무 짧았다. 김은 남한 적화와 “선군(先軍)정치”를 위해 핵 개발을 “유훈”으로 남긴 김정일의 후계자로 세습되었다. 김은 “민생정치” 보다는 “유훈정치“를 책무로 삼는다. 백성이야 굶어죽든 말든 “유훈”에 따라 핵무기 증산에 몰입한다. 김은 중국의 경제지원을 믿고 이란처럼 외부의 경제제재를 무서워하지 않으며 “핵과 경제발전 병진”을 강행할 따름이다.

이란 경제는 폐쇄적인 북한과는 달리 국제경제와 맞물려 있다. 이란은 인구 8000만에 세계 4대 원유 매장량, 하루 평균 300만-40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했었다. 그러나 1979년 2월 회교혁명과 그 해 11월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 점거를 계기로 서방의 경제제재를 받기 시작했다. 2002년 8월 이란의 반체제 단체에 의해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이 폭로되면서 이란은 더욱 가혹한 경제제재하에 들어갔다. 이란 원유 수출은 100만 배럴로 떨어졌고 화폐 리알화 가치도 70%나 하락했다. 실업률은 정부 발표론 11%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20%에 달한다고 한다.

로하니 대통령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벗어나는 길 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로잔 협정에 서명하게 되었다. 이란에 대한 제재가 풀리면 연간 8%의 추가 경제성장을 기대할 수도 있다. 로하니 대통령은 2년 후 실시될 대선에서 재선되기 위해선 핵개발을 중단하고 국민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이란 국민은 핵 타결소식에 “겨울은 끝났다”며 환호했다.

김정은과 하산 로하니는 너무 다르다는 데서 북핵의 이란식 해법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21년전인 1994년부터 북한과는 무려 다섯 차례에 걸쳐 핵폐기를 위한 공동성명과 합의서를 채택해 경제지원에 나섰다. 그러나 모두 북한에 의해 기만당하고 말았다. 북한은 핵포기 대신 3차례나 핵실험했다. 그래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다시는 북한을 신뢰하지 않는다며 “비핵화를 위한 신뢰할 만한 행동부터 보이라”고 요구한다.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김정은과의 어설픈 핵폐기 합의는 열번 한다 해도 열번 다 속는다. 김정은에게 핵무기 개발의 시간과 돈을 벌어줄 따름이다. 그에 대한 대안은 명백하다. 김이 핵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권력을 유지할 수 없다고 통감토록 경제 외교적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김이 권력 유지를 위해선 핵을 버리지 않을 수 없도록 대북 제재를 가일 층 강화해야 한다. 이란 핵 잠정 협정을 접하며 보다 강력한 대북 제재 압박이 절실함을 재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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