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강호순’ 잡고 화려한 피날레 장식할 터

(맨위부터 차례대로) 2001년 현직 경찰수사관과 민간 보험조사관을 대상으로한 보험범죄 유공자 시상식 수상 기념사진. 사진 맨 좌측(원 안)이 박 전 경장이다. 가족 보험사기단 계보도2001년 보험범죄방지 유공자 상 수상 뒤 일간지에 실린 박 전 경장 인터뷰 기사.

형사 경력은 남들보다 짧다. 그러나 현직을 박차고 나온 이후 이룬 것이 오히려 더 많다. 대한민국에서 ‘보험범죄’ ‘보험사기’라는 용어를 가장 처음 수사기관과 언론에 알렸고 사건에서만큼은 ‘국내 최초, 최고 전문가’라는 호칭을 얻었다. 굴지의 대기업이 스카우트 대상으로 군침을 삼킨 청년 형사는 25년 뒤 대한민국 보험범죄조사관 1호로 명예로운 은퇴를 앞둔 50대 중년 신사가 돼 있었다. 오는 10월 55세 정년을 앞두고 거물급 패륜범죄와 마지막 싸움을 벌이고 있는 박한석 경장(현 삼성화재 특수조사파트 수석). 샐러리맨으로 변신한 전직 형사와 그가 겪은 적나라한 ‘쩐의 전쟁史’를 지상 중계한다.

30년 이상 근속한 명수사관과의 인터뷰를 진행해온 <리얼스토리-대한민국 수사반장>의 성격상 수사경력이 불과 4년 밖에 되지 않는 박 전 경장과의 인터뷰는 일종의 모험이었다. 1년 365일, 그렇게 수십 년을 사건현장에서 보낸 고참 형사들의 애환과 경험담을 풀어내는 연재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박 전 경장의 프로필은 기자에게 상당한 흥미 거리임에 틀림없었다. 현직 경찰 출신 가운데 처음으로 민간 대기업에 정식 스카우트된 인물이었고, 더구나 민간인 신분이 된 뒤에도 그의 임무는 범죄꾼을 색출하는 ‘수사’였다.

특히 80년대 후반 국내 최초의 보험사기 사건부터 지난해 연쇄살인범 강호순 파문까지, 거액의 보험금이 얽힌 굵직한 사건은 거의 열외 없이 박 전 경장의 손을 거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직 형사’라는 표현에 박 전 경장은 쑥스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앞서 인터뷰에 응한 선배들에 비해 현직 경력이 짧은 까닭이다.

1986년 서울 남대문경찰서 재직 시절 삼성화재로부터 정식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수사경력 4년차, 이제 막 신입티를 벗은 31세 때였다. 굴지의 대기업인 만큼 조건이 좋았다. 동료들은 ‘도대체 뭘 망설이느냐’며 부러워했다. 어린 두 딸과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그는 과감히 경찰 배지를 반납했다. 대한민국 보험범죄조사관 1호는 이렇게 탄생했다.

“노태우 대통령 재임 당시 국내 6개 정도였던 보험사 수가 갑자기 크게 늘어났습니다. 그만큼 보험 상품도 다양해졌지요. 그러다보니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일부러 사고를 내거나 자작극을 꾸미는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생돈을 허공에 뿌리는 격이니 고민이 될 수밖에요. 시류에 가장 빨리 움직인 것이 삼성화재였습니다. 현직 경찰수사관을 영입해 전문 사기꾼을 색출해내겠다는 계획이었지요.”


‘최초’ 수식어, 혈혈단신의 다른 말

포부는 거창했다. 그러나 ‘보험범죄’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시절 박 전 경장의 첫 임무는 그다지 근사하지 않았다.

“과거에는 보험금 지급 과정에 제3자가 끼어드는 일이 잦았습니다. 특히 상해보험금 지급을 놓고 조직폭력배나 특정 단체 회원들이 몰려와 담당자를 협박하는 일이 부지기수였지요. 이를테면 ‘사람이 이 만큼이나 다쳤는데 왜 보험금을 이 만큼 밖에 안 내놓느냐’며 억지를 부리는 식입니다. 처음 입사해서 경찰 출신인 제가 이들을 막는 일종의 가드(보호자) 역할을 했지요.”

협박과 억지가 난무하던 당시 보험업계에서 유일한 현직 경찰 출신 직원이었던 박 전 경장은 ‘멀티 플레이어’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루 종일 교통사고 현장에 불려나가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파김치가 돼 사무실에 돌아오면 인상 험악한 ‘해결사’들과 얼굴을 맞대야 했다. 격무에 시달리며 업계 사정을 익히는 데 꼬박 10년이 걸렸다.

박 전 경장이 마침내 대한민국 제1호 보험범죄조사관 타이틀을 얻은 건 1996년 6월 삼성화재 내에 특수조사파트(보험범죄조사팀)가 정식으로 구성되면서부터다. 하지만 번듯한 사무실과 직함이 생겼다는 것 뿐, 본격적인 고생길이 열린 셈이었다.

“그때 조사팀에는 저와 총경으로 정년퇴임하신 원로 선배님, 사무직 여직원이 전부였습니다. 그나마 현장 경험이 있는 선배님은 명예고문직이라 실제 사건조사에 나서는 건 저 혼자였지요.”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는 곧 혈혈단신의 다른 말이었다. 보험조사관의 임무는 경찰수사에 앞서 범죄혐의를 입증할 모든 정황증거를 수집하고 이를 분석하는 것. 이 자료를 경찰이나 검찰 등에 넘기면 비로소 정식 수사가 이뤄지는 셈이다.

“회사와 경찰을 통해 조사요청은 계속 밀려들어오는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 지 막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조사를 위한 기본 가이드라인부터 만들어야 했지요.”

현재 국내 보험사의 범죄조사팀이 사용하는 모든 조사계획 양식과 방법론은 그 시절 박 전 경장이 몇 달 밤을 지새우며 만들어낸 것들이다. 또 보안 운운하며 보험사들끼리 공유하지 않았던 가입고객 정보를 업계 공통 정보망으로 구축한 것도 박 전 경장이다. 그가 ‘길’을 닦아놓기가 무섭게 관련 범죄자들이 굴비 엮이듯 잡혀 들어가기 시작했다.


가족사기단 엄마, 전처 자식은 범행서 ‘왕따’

1999년 박 전 경장의 뇌리에 지워지지 않는 희대의 사기사건이 벌어졌다. 중년 부부와 대학생 세 자녀, 조카와 올케, 친구까지 엮인 ‘보험사기단 패밀리’가 경찰에 적발된 것. 보험설계사 출신 김모(당시 48세)여인을 필두로 한 일가족 24명의 기상천외한 범죄수법을 포착해 세상에 알린 것이 박 전 경장이다.

사건은 각종 일간지와 TV뉴스 머리기사를 차지했고 이듬해 이를 소재로 한 영화도 만들어졌다. 전재산을 차압당한 일가족이 보험설계사 출신 사위를 맞아 전문 보험사기단으로 변신하는 내용의 코미디 영화 <하면된다>(감독 박대영·2000년 개봉)가 바로 그것이다.

박 전 경감은 기자에게 당시 작성했던 가족사기단의 ‘계보도’를 꺼내보였다. 가장 위에 이름을 올린 김 여인 부부는 무려 12번에 걸쳐 일부러 사고를 내고 수억 원의 보험금을 타냈다. 부부의 세 자녀도 사기극에 동참했다. 서울시내 유명대학 재학생이었던 이들은 20대 초반 어린 나이에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보험 귀족’ 생활을 해 충격을 줬었다.

조직의 보스격인 김 여인은 당시 베테랑 보험 설계사로 특히 손해보험과 상해보험 상품을 완벽하게 꿰고 있는 ‘보험천재’였다. 그는 여러 회사를 옮겨 다니며 직접 보험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회사 내부에 뒤를 봐줄 인맥까지 구축해 놓을 정도로 치밀했다.

“그런데 아무리 본인이 설계사라해도 가족과 자신 명의로 수십 개의 보험에 가입하고 시도 때도 없이 보험금을 타 가니 업계에서 소문이 안 좋을 수밖에 없었지요.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채고 다른 회사 보험조사팀이 움직였는데 그때마다 이 여자는 고객센터와 소비자단체에 진정, 고발을 해댔습니다. 보험회사가 선량한 고객의 뒷조사를 한다는 식으로 말이지요. 서비스가 생명인 기업으로서는 확실한 물증이 없이 섣불리 건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김 여인 때문에 속앓이를 하던 후배가 박 전 경장을 찾아왔다. 역시 형사 출신으로 당시 T보험사 조사관이었던 후배는 소속 설계사인 김 여인에 대한 의구심을 털어놓은 것.

직감적으로 ‘수상한 낌새’를 느낀 박 전 경장은 곧바로 정보망을 풀가동해 김 여인과 주변인을 훑었다. 그 결과 부모와 자식, 형제와 조카사위까지 동원된 희대의 가족사기단 실체가 드러날 수 있었다.

박 전 경장은 또 유독 부부의 큰 아들 조모(당시 26세)씨 이름을 가리키며 웃지 못 할 일화를 들려줬다.

“김 여인 사건의 계보도를 만들면서 조직원 개개인이 몇 번이나 보험금을 부정 수령했는지 ‘카운트’를 했지요. 그런데 이 친구만 가담 횟수가 눈에 띄게 적더군요.”

과연, 둘째 아들과 막내딸은 각각 3번, 5번 사고를 당해 적잖은 보험금을 타 간 기록이 있었다. 그러나 장남 조씨는 딱 한번 고의사고를 일으켜 보험금을 타갔다는 얘기다. 여기엔 나름의 가족사가 얽혀 있었다.

“알고 보니 큰 아들은 김 여인 소생이 아니라 남편의 전처가 낳은 아이더군요. 은연 중 ‘작업’에서 큰 아들을 따돌렸다고 볼 수 있지요. 또 작은 아들과 딸에게는 최고급 상아로 깎은 인감도장을 만들어주고 장남은 시장에서 판 5000원짜리 막도장만 줬다는 거 아닙니까.”


마지막 9개월 ‘제2의 강호순’ 쫓는다

박 전 경장은 오는 10월 지난 25년 간 몸담았던 회사를 떠난다. 정년을 앞둔 그는 마지막으로 ‘제2의 강호순’으로 점찍은 패륜범의 뒤를 쫓고 있다. 이 사건에 걸린 보험금은 10억원, 아내와 두 아들 등 처자식을 모두 잃은 대가로 받는 돈이다.

“처음 조사 의뢰를 받은 순간부터 석연찮은 점이 적지 않았습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남편이 사고나기 몇 개월 전부터 집중적으로 거액의 보험을 가입한 흔적이 있고, 과거에도 몇 차례 크고 작은 보험금을 수령한 기록이 있더군요.”

조사가 진행 중인 사건이라 더 이상의 자세한 언급은 어렵다며 박 전 경장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지난해 검거된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면면과 여러모로 닮은꼴인 까닭에 그는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장모와 아내를 화마(火魔)에 가두고 억대의 보험금을 챙겼다는 정황이 드러났지만 강호순은 끝내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강호순의 보험조사를 지휘했던 터라 박 전 경장의 안타까움은 더 크다. 경찰과 달리 수사권이 없는 민간 조사원 신분인지라 손 쓸 도리가 없었던 것.

“강호순과 같은 부류의 보험사건은 해결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일반적인 보험사기는 2명 이상의 공범이 있기 마련인데 강호순 같은 패륜범들은 철저히 단독으로 움직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수집한 자료를 갖고 경찰이 수사의지만 제대로 보인다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사건들입니다.”

숨쉴 틈 없이 사건을 해결해도 박 전 경장은 사망보험금을 노린 패륜범죄가 매년 3~4건씩 꾸준히 벌어진다고 말했다. 가족의 ‘목숨 값’을 건 치졸한 도박이 계절행사처럼 반복되는 셈이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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