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기업 성완종씨 자살에 따른 뇌물리스트 파문으로 세상이 벌집 쑤셔놓은 듯하다. 뇌물 리스트에 대한 진실은 반드시 규명돼야 할 것이고, 그 책임은 마땅히 검찰 몫이다. 몸통을 지키기 위한 꼬리자르기는 이미 불가능 해보이고 정치권력의 입김 또한 전혀 맥을 쓸 수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쪽지에 거명된 인사들의 수사 성과만으로 모두 해결될 일도 아닌 것 같고 사건의 끝을 현재로선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정황이다.

어쩌면 메모 쪽지에 거론된 인사들은 성완종 씨의 구명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죄로 희생양의 올가미를 덮어 썼을 수도 있다. 비자금 조성액은 200억대가 넘는데 쪽지에 주장하고 언론 보도로 나타난 금액은 겨우 15억 원대라는 점에서 의혹과 궁금증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그는 지난 노무현 정권에서 비리사건 때마다 가벼운 처벌을 받고 그 조차 불과 몇 달 만에 심지어는 집행유예 확정선고 1달 만에 사면 복권된 전력이 드러나 있다. 이 대목이 시사하는 바를 짐작 못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런가. 초등학교 학력으로 알려진 사람의 기업 성공이 그 정도였고, 인맥 형성이 그 정도이며, 처세술이 그 정도였으면 그가 어떻게 세상을 요리하고 용병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는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그러기 때문에 문재인 새정연 대표의 대여 압박이나 정부 질책이 생각만큼 여론의 힘을 얻지 못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오히려 뭣 묻은 개가 겨우 흙 묻은 개 나무라고 있다는 비아냥마저 없지 않은 터다. 자신의 구명에 실패한 ‘친박’세력에 그 정도 금품을 뿌려댔으면 가벼운 처벌과 빠른 사면 복권을 성공토록 만들어준 세력에겐 얼마나 많은 금품 로비를 벌였겠느냐는 의혹이 비대해진 양상이다.

남이 흉내 못 낼 인고 끝에 자수성가에 성공한 사람이 막다른 골목에 몰려 절망감을 벗어나지 못할 때 택할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라고 한다. 한 가지는 그럭저럭 해볼 것 다해봤다는 생각에서 모든 미련을 버리는 경우다. 또 한 가지 생각은 소위 물귀신 작전으로 같이 죽자는 쪽으로 독기를 품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물론 자기가 믿고 있던 세력에 의해 한없이 억울하게 됐다는 생각을 가졌을 때의 피맺힌 배신감 때문일 것이다.

결국 기획수사가 예기치 못한 부메랑을 맞은 형국이다. 검찰 수사 중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가 작년 이후 이번을 포함해 9명이나 된다. 미수에 그친 사람도 3명이다. 작년 2월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에서 조사받던 이 모씨가 여객선에서 바다에 투신해 숨진 사건도 사전구속 영장 실질심사가 예정된 당일이었다. 그해 6월 대전지검에서 수사 중에 자살한 이 모 철도시설공단 부장은 유서에 “검찰이 윗선을 밝히라고 추궁해 괴롭다”고 했다.

이처럼 주요 피의자가 숨지면 검찰 수사는 ‘공소권 없음’등으로 종결되거나 큰 차질을 빚고 사건전모가 묻힐 수밖에 없다. 수사가 난항을 겪으면 수사 불신은 물론이고 검찰의 권위는 국민의 권익과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존립 근거까지 땅에 떨어지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한다.

법조계 내에서는 영장 청구 후 구속 여부 결정까지 사나흘 이상이 소요되는 대목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사전구속영장 제도가 도리어 큰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사실을 엄중히 판단해 보완책 마련을 시급히 해야 한다는 견해를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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