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1일부터 성년후견제도가 시행된 후 2014년 6월 30일까지 선임된 성년후견인의 91%가 친족인 것으로 드러났다.

성년후견제도는 장애, 질병, 노령 등 정신적 제약으로 의사결정능력이 부족한 성인에게 가정법원의 심판이나 후견계약을 통하여 선임된 후견인이 재산관리 및 일상생활과 관련된 신상보호를 지원하도록 하는 제도다.

종전의 행위무능력제도가 의사능력이 부족한 이들을 금치산자 또는 한정치산자로 분류해 행위능력을 제한한 반면 성년후견제도는 피후견인의 잔존능력을 활용하고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을 그 취지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기존 금치산자와 한정치산자의 후견인을 친족으로 한정했던 것을 성년후견제도를 도입하면서 친족뿐만 아니라 변호사나 사회복지사 등 전문가를 후견인으로 선임할 수 있도록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그런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춘진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지난해 9월 대법원으로부터 받아 공개한 ‘성년후견제도 시행 이후 시도별 성년후견 종류별 피후견인 현황’ 등 자료를 보면, 전체 피후견인 785명 중 친족후견인을 둔 피후견인은 717명으로 91.3%에 달했으나, 전문후견인을 둔 피후견인은 20명으로 2.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제도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같이 친족후견인이 선임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은 후견인에게 지급할 보수 등 경제적인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지만, 피후견인이 상당한 재력을 가지고 있고 자녀나 가까운 친족들이 피후견인의 재산을 사실상 향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성년후견제도가 활용되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 보니 피후견인의 신상보호나 의사결정 지원 보다는 재산관리권과 법률행위 대리권을 활용하여 사실상 증여를 받거나 재산을 빼돌리는 방편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친족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재산에 대한 횡령이나 배임 등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형법의 친족상도례(친족간 일정한 재산범죄는 형을 면제하거나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처벌의 특례) 규정이 있어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업무상 횡령죄에 친족상도례의 규정을 적용하는 취지는 친족 사이에 재산범죄가 발생한 경우 그 처리를 친족 내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려고 한 것이다. 업무상 횡령죄는 타인의 위탁에 근거하여 물건을 점유하는 자가 그 위탁의 취지에 반하여 그 물건을 부정 취득하여 소유권 등을 침해하는 범죄로서 위탁관계 위배를 그 행위의 핵심적 요소로 한다.

하지만 가정법원의 선임에 의하여 후견인의 지위가 부여되고 가정법원의 광범위한 감독을 받으면서 피후견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후견인은 가정법원이 위탁자의 지위에 있기 때문에 가정법원과 후견인 사이에 친족관계가 존재하는 것을 전제로 한 친족상도례의 규정은 적용될 수 없다.

하지만 죄형법정주의와 친족후견인에 대한 범죄 예방효과를 고려하여 후견인이 친족이더라도 친족상도례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명시적인 규정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정법원이 미성년후견인을 변호사 등 전문후견인으로 선임할 경우 현실적으로 미성년자와 동거하면서 신상보호 등 사실행위를 가까운 친족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그 친족도 후견인으로 선임하여 가정법원의 감독을 받을 수 있도록 미성년후견인도 성년후견인과 마찬가지로 복수로 선임할 수 있도록 법 개정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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