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서 돌아오자마자 내놓을 카드는 무엇일지를 두고 정치권은 이런저런 관측을 내놓으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미 ‘성완종 리스트’에 거론된 8명중 한 명으로 언론을 장식했던 이완구 총리는 사실상 3천만원 수수 의혹으로 인해 ‘사의표명’을 한 상황이다. 갑작스럽게 터진 ‘성완종 리스트’로 인해 박 정권이 집권 3년차를 맞아 국정 최대 과제로 삼은 공무원연금개혁과 노동시장 구조개혁 역시 동력이 상실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스스로 퇴로를 차단한 채 ‘특검 정국’을 조성해 정면 승부를 벌일 것이라는 관측이 여권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은 정치권에서 요구하고 있는 특검을 공식적으로 수용해 여야 불법정치자금 관행을 적폐로 규정하고 강하게 정치개혁 메스를 가할 예정이다.

- “여야 특검 원한다고?  마다하지 않아”
- 이명박-노무현 불법정치자금 특검정국

박근혜 대통령이 부패와의 전쟁에 대한 의지를 표현한 것은 3번이다. 이완구 총리가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3월 17일 국무회의를 통해 “총리가 추진하고 있는 부패청산은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반드시 사명감으로 해달라”고 첫 번째 의지를 밝혔다.

두 번째는 지난 세월호 참사 1주기인 4월16일 ‘성완종 리스트’ 파문과 관련해 “부정부패에 책임있는 사람은 누구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국민도 그런 사람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 번째는 해외순방 중 이완구 총리의 사의 표명 소식을 듣고 “검찰은 정치 개혁 차원에서 확실히 수사해 모든 것을 명백히 밝혀내주길 바란다”고 톤을 높였다.

박 대통령 정치권 단속 들어가다

한마디로 그동안 정치권의 고질적인 적폐였던 불법정치자금 관행을 이참에 확실하게 도려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특히 집권 3년차를 맞이해 역대 정권에서 손도 대지 못했던 공무원연금개혁과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라도 정치권에 대한 단속이 필요하다는 인식도 밑바탕에 깔려 있다. 박 정권의 최대 치적이 될 수도 있는 사안을 정치권의 손에 놔뒀다가는 유야무야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조바심도 엿보인다.

박 대통령의 정치개혁에 대한 수사 요구는 공교롭게도 ‘성완종 리스트’로 인해 낙마한 이완구 총리에 대한 반격처럼 정치권은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이 총리는 인사청문회 기간 갖은 의혹과 구설수에도 박 대통령이 지켜낸 인물이었지만 불법정치자금으로 날아간 이상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 전반에 대한 수사로 확대시킬 수밖에 없게 됐다.

특히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비자금을 조성한 시기가 2006년부터 2013년으로 노무현, 이명박 정권까지 겹쳐 있고 시기적으로도 2007년 대선과 2012년 대선까지 있어 불법대선자금 수사로 확대될 공산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성 전 회장이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자유민주연합 등 여야를 넘나들며 인맥을 쌓아왔다는 점도 검찰과 청와대에서 눈여겨 보는 대목이다.

당장 새누리당은 노무현 정권 시절 성 전 회장이 두 번씩이나 특별사면을 받은 배경에 뒷돈이 오가지 않았겠느냐고 공세를 펼치고 있다. 반면 여당 내 친이명박계 의원들은 참여정부 시절 이뤄진 특별사면으로 MB 정권과는 무관하다며 서로 공방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정치 공방은 향후 전개될 여야 불법정치자금 수사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당장 ‘성완종 리스트’에 포함됐지만 이완구 총리에 가려 잠시 사라져 있던 허태열 전 비서실장과 홍문종 의원 그리고 유정복 인천시장이 재차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성 전 회장으로부터 7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허태열 전 비서실장은 그 시기가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시절이다. 당시 이명박 후보와 박빙의 대결을 벌이던 때로 성 전 회장의 로비 스타일 상 경선뿐만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 본선캠프에도 적잖은 돈이 흘러들어갈 공산도 배제할 수 없다.

‘읍참마속’ 적군·아군 다 내친다

역시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거론된 홍문종 의원과 유정복 인천시장의 경우에는 2012년 박근혜 대선캠프에서 요직에 있던 인사로 대선자금조로 성 전 회장이 돈을 건넨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홍 의원은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아 60만 명이 넘는 거대 조직을 관리했고 그 휘하에만 20여 명의 현역 의원과 200여명의 당 사무처 및 보좌진이 참여하고 있었다. 유 시장은 직능총괄본부장을 맡아 대선 직전까지 1000여개가 넘는 직능 단체가 박 대통령 후보 지지선언을 해 대선 승리 1등공신이 됐다. 또 성완종 메모에 이름이 거론된 서병수 부산시장의 경우에는 선거자금을 총괄하는 당무조정본부장을 맡고 있었다.

불법정치자금 수사가 불법대선자금 수사로 확대되고 박 대통령을 만든 최측근들까지 거명되고 있어 청와대에서 먼저 ‘성역없는 수사’를 촉구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청와대에서는 “여야 대통령과의 친소 관계, 지위 고하에 구애받지 말고 성완종 전 회장 관련 의혹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오른팔격인 이완구 총리를 잃은 이상 최측근까지 수사선상에 올려놓고서라도 정치권의 고질적인 적폐인 불법정치자금 관행을 이참에 끊어버리겠다는 강한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대신 불법대선자금 수사로 번질 경우 친박 인사들뿐만 아니라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해 친이계 그리고 참여정부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와 야당 인사들까지 검찰의 수사대상에 오를 수밖에 없게 된다.

이를 감지한 문재인 대표는 먼저 선수를 치고 나왔다. 문 대표는 4월23일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특검을 통한 진실규명을 요구한다”며 특검 도입을 공식 제안했다. 문 대표 역시 청와대의 이런 기류를 사전에 간파하고 “사건의 본질은 정권 차원의 불법 정치자금 문제다. 특히 불법대선자금 수사의 경우 돈의 용처가 중요하다“며 ”돈정치와 결별하고 부패정치의 사슬을 끊어낼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대통령 역시 해외 순방직전 김무성 대표와 청와대에서 만난 자리에서 ‘특검’도입관련 김 대표를 통해 “진실규명에 도움이 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공개회의에다 당시 이완구 총리 거취 여부가 정국의 핵으로 떠오른 상황으로 이런 박 대통령의 발언은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이상 박 대통령이 귀국 후 꺼내들 정국 반전카드는 ‘특검 수용’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힐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4월29일 재보선을 이틀 앞두고 국민들과 정치권의 초미의 관심사인 후임 총리 인선을 발표하는 것은 자칫 선거에 역풍이 불 수 있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2012년 박근혜 캠프 대선총괄본부장을 맡은 김 대표 역시 특검 수용입장일 뿐만 아니라 2012년 불법대선자금 수사에 ‘나도 수사에 응하겠다’며 ‘야당도 응해라’고 문 대표를 압박한 바 있다. 청와대 여야가 특검을 수용하고 불법대선자금 수사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외형상 ‘자신있다’는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다. 하지만 특검이라는 속성상 정치적 ‘딜’이 가능해 검찰 수사보다 한발 더 나아갈지는 미지수다.

靑·與野, ‘특검 한 목소리’ 숨겨진 노림수

우리나라에서 특검이 도입된 것은 1995년부터인데 총 11번이 있었지만 ‘이용호 게이트’, ‘대북송금’,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의혹’정도만 검찰수사보다 진척됐고 나머지 9번은 정치공방과 딜로 유야무야됐다. 특히 법조계에서는 검찰의 중립성 논란이 일 때 도입되는 것인데 정치권이 선수를 쳐 특검 도입을 수용할 경우 검찰의 수사 의지가 없어지는 효과가 있어 부정적 측면도 있다. 사실 특검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되는 시점에 검찰 수사는 중단되고 박 대통령이 특검을 임명하면 수사 자료를 이관해 공식적으로 수사가 종료된다.

결국 문 대표가 새특검안을 들고 나온 것이나 집권 여당과 청와대가 특검에 긍정적인 배경에는 불법정치자금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자신들의 운명을 검찰에 맡기기보다는 정치권 입맛에 맛는 인사를 통해 ‘정치적 딜’이 가능하다는 점이 주요한 이유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아울러 현재 검찰 수사를 견제하려는 속셈도 깔려 있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결국 사법부 안팎에서는 특검정국을 통해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올해 최대 국정과제인 ‘공무원연금개혁안’과 ‘노동시장 구조 개혁안’을 여야가 통과시키도록 압박하고 대신 ‘몸통’보다는 ‘깃털’ 수준의 여야 정치권 인사들만 구속시키면서 특검을 재차 유야무야 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보내는 배경이다.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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