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전 총리가 총리 재임 중이던 2006년 12월 20일 삼청동 총리공관 오찬 때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 달러를 받았다는 사건이 터져 나와, ‘받았다’ ‘안 받았다’의 진실공방이 치열했다. 그 공방의 여운은 무죄 확정된 지금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당시 1심과 달리 2심 재판부는 곽 전 사장의 진술의 임의성과 당시 5만 달러를 보유할 수 있었다는 점은 인정했으나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해 무죄 판결했다.

항소심 판단은 “곽 전 사장이 장기간의 구금을 피하기 위해 허위로 진술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검찰은 대법원에 즉각 상고 했으나 대법원 판단도 항소심 손을 들어줬다. 그 밖에도 한 전 총리가 2007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모 건설 시행사 측으로부터 모두 9억 원 규모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벌였다.

이때 시행사 대표 한모씨는 한 전 총리에게 2007년 1~4월 두 차례에 걸쳐 6억 원가량, 9~10월 3억 원 가량을 현금과 달러로 건넸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한 전 총리에 대한 소환조사 후 혐의 입증을 자신했다. 기소 후 1심 재판부는 돈을 제공했다는 진술을 믿지 못하겠다고 무죄를 선고했지만 항소심은 징역 2년과 추징금 8억8302만2000원을 선고했다. 다만 “원심과 항소심의 판단이 다르고 현직 국회의원인 점을 고려한다”며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이날이 2013년 9월 16일이었다. 한 전 총리 측은 항소심 판결을 정치재판으로 몰며 대법원에 상고했다. 그 후 2015년 4월달이 다 가도록 대법원 선고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를 비판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나 담당 재판부인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아직 심리중이라는 입장만 되풀이 하고 있다.
사법부가 야당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상고심 재판부가 정해지고 1년 7개월이 넘도록 선고 기일이 잡히지 않으니 이런 저런 오해가 일어날 만도 하다. 뇌물사건의 중요한 쟁점은 말할 필요 없이 ‘청탁의 실현’ 여부이다. 앞선 5만 달러 사건에서 보듯이 검찰은 곽 전 사장에게 “한 전 총리가 당시 현장에서 정세균에게 ‘곽 사장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고 추궁했는데, 곽 전 사장은 ‘곽영욱을 잘 부탁한다가 아니라 그냥 잘 부탁한다’였다”고 답했다. 이 대목은 재판에 한 전 총리가 곽 전 사장을 지칭해서 청탁하지 않았다는 공방을 일으켜 뇌물수수의 정황증거로 인정되기 어려운 법리적 상황을 만들었다.

결국 “곽영욱 5만 달러는 귀신한테 줬나”라는 의혹만 남겼을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이완구 총리의 3천만 원 진실공방은 국민정서상으로는 정말 별것 아닌 것 일 수 있었다. 이 총리를 아직 총리로 칭하는 것은 25일 현재까지 대통령 외유중이어서 사표 수리가 안 됐기 때문이다. 결국 두 달 만에 사의표명을 할 수밖에 없도록 그가 궁지에 몰리게 된 건 검찰수사나 법률적 판단보다는 여론의 압박을 견뎌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한명숙 전 총리의 일관되게 혐의를 부인하는 정신세계와 이 총리의 웃불 끄기에만 바쁜 정신세계가 극명하게 달랐다. 모든 해명성 발언이 하나같이 거짓으로 드러나 버린 상황에서 더 버틸 재간이 없었던 게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는 법이지만 친하지 않다던 성 전 회장과 1년간 217번 전화통화를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의 입장은 한 전 총리와 전혀 다른 세계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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