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홍등가…유리창 넘어로 그녀들이 웃음을 팔다

서울 3대 텍사스촌 중 막내 격인 ‘천호동 텍사스촌’. 40년 전 천호동 재래시장 선술집 주변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이곳은 2004년 성매매특별법 이전에 이미 강제 철거를 당한 쓰라린 역사가 있다. 2001년 당시 부임한 주상용 전 강동경찰서장이 “매춘을 뿌리 뽑겠다”며 매일같이 단속을 벌인 결과, 170개가 넘었던 천호동의 텍사스촌 업소들이 모조리 문을 닫았다. 갑작스러운 철거에 천호동 업주들과 성매매 여성들은 각각 살 길을 찾아 평택, 수원, 용주골로 떠났다.

그런 그들이 8년 전 ‘제2의 도약’을 꿈꾸며 이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2년 후 터진 성매매특별법과 경기불황으로 천호동에 남아있는 영세민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

현재 천호동에는 단 30여 개의 업소만이 처량히 홍등을 밝히고 있다.

지주들 때문에 재개발 역시 불확실한 상황에서 “제발 일할 권리를 달라”고 외치는 천호동 텍사스촌 사람들의 마지막 호소를 들어봤다.

2010년 3월 23일 오후 8시. 전날 내린 폭풍우로 씻긴 서울의 밤은 청명했다.

천호동 번화가는 오랜만에 찾아온 봄을 맞이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끝이 보이지 않는 술집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려한 네온사인이 달빛마저 삼켜버렸다. 그렇게 15분쯤 걸었을까. 정신없이 쏟아지는 네온사인과 사람들이 점차 시야에서 사라진다.

미아리와 달리 천호동 텍사스촌 거리는 비교적 넓고 밝았다. 불법이라고 하기엔 천호동 텍사스는 고스란히 실체를 드러낸 채 하나 둘 홍등을 밝혔다.

입구 한켠에는 ‘청소년 보호구역’이라고 쓰인 대형 현수막이 쓸쓸히 밤공기에 휘날리고 있었다.

그 앞에 모인 업주들과 주변 상인들이 하나 둘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 뒤로 듬성듬성 불이 들어온 업소마다 나체에 가까운 늘씬한 여성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다들 속이 훤히 보이는 유리창 안에서 교태 넘치는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멍하니 업소를 쳐다보고 있을 때 이차성 천호동 텍사스촌 업주 대표가 나타났다.

아직 손님이 없던 터라 텍사스촌 골목에는 기자와 이 대표만이 걷고 있었다. 그 덕에 아가씨들의 시선은 오로지 기자에게 쏠렸다. 시선의 주체에서 대상이 된다는 것은 원하든, 원치 않든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2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걷는 내내 수십 명의 여성들의 따가운 시선에 노출된 것이 꽤나 부담스러웠다. 한편으론, 매일같이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들의 삶이 얼마나 고될까란 생각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특히 요즘 천호동에서 매춘을 하는 여성들 대부분은 30대이다. 겉보기에는 20대 못지않지만, 하나같이 사연 없는 사람들이 없다.


“생계위해 뛰어든 주부들 많아”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이혼 후 아이를 키우기 위해 이곳에서 일을 시작한 여성들도 많다.

이들은 대개 큰 도로에 있는 업소보다는 구석에 있는 작은 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붉은 조명 아래 집창촌 여성들이 뿜어내는 씁쓸한 담배연기에 한 가족의 엄마로서, 아니 여자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삶의 시름이 함께 배어나오는 것만 같았다.


“마지막 남은 유리 한 장, 깨지기 직전”

업소를 지나 사무실에 들어갔다. 오늘도 역시 기자에게 할 말 많은 업주들이 하나 둘 이야기를 꺼낸다.

먼저 이 대표가 운을 뗀다. “천호동 업주들이야말로 서울지역 텍사스촌에 남은 영세민들 중에 최하층 영세민들입니다”

천호동에서만 30년을 살았다는 그는 “장사가 잘 됐던 예전에도 미아리와 청량리에 비하면 천호동은 게임이 되지 않았다”며 “미아리가 대기업이었다면 여기는 그 아래 중소기업 정도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매매특별법이 생기기 전까지 미아리는 관광차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을 만큼 호황을 누렸다. 그에 비해 천호동은 소박한 편이었다고 이 대표는 회상했다.

특히 그는 주상용 전 서장 재임 당시 겪었던 철거를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린다고 분개했다.

“솔직히 성매매특별법 실행 당시보다는 주 서장이 철거했을 때가 정말 죽을 맛이었죠. 하루아침에 아무런 보상 없이 철거하라니. 그나마 업주들은 나아요. 증거 사진 찍는다고 헐벗은 여자애들 벽에 세운 뒤 마구 사진을 찍어대는데 너무한 것 아닙니까. 애초에 우리에게 인권은 없어요.”

이 대표 옆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업주 A씨도 한마디 거들었다. “툭하면 만만한 우리만 찌르는 것 같아. 기자님도 생각해봐. 요새 술집마다 성매매 안하는 곳이 없잖아. 돈 많은 사람들 다 ‘룸이다, 출장 안마다’ 숨어서 하는 건 안 잡고, 왜 우리같이 힘없는 사람들만 건드는지 참.”

이들의 고민은 이뿐만이 아니다. 성매매특별법을 악용한 ‘꼴불견 손님들’로 곤욕을 치르고 있기 때문.

한참 컴퓨터 타자기를 누르고 있던 업주 B씨는 “아가씨들한테 서비스 받을 거 다 받고도 온갖 욕에 돈까지 돌려달라고 하는 손님이 엄청 늘어났다”며 “그럴 때마다 속절없이 돈 주고, 달래고 미칠 노릇이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고하겠다”는 말 한 마디에 어느 누구도 손을 쓸 수 없는 게 천호동 텍사스촌의 현실이다. 매일 밤, 손님 10명 중 3명 정도가 이렇게 아가씨들과 업주를 더 힘들게 하고 있다고.

경찰 단속과 악덕 손님때문에 천호동을 떠나고 싶지만 막상 떠나지 못하고 있는 이들에게 마지막 희망은 ‘재개발로 받을 보상금’이다. 그러나 실제로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업주는 거의 없다.

이 대표는 “이거 자체가 불법인데 보상을 해주겠습니까? 그래도 아무런 보상없이는 이 사람들 갈 데가 없습니다”며 담배를 물었다.

그는 천호동 업주들의 신세를 유리창에 비유했다.

“강남 등지에 고가 성매매업자들은 자신들을 방어할 창이 수도 없이 많죠. 아마 쉽게 뚫리지 않을 겁니다. 근데 우리는 툭 치면 그냥 깨져버려요. 우리가 갖은 건 유리창 한 장 뿐이니까요.”

씁쓸한 이 대표의 말처럼 천호동 텍사스촌 내 늘어져 있는 붉은 유리창은 어쩐지 더 시리고, 깨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한때는 하루 순수익만 100만 원”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업주들의 하소연을 한 시간 넘게 듣고 있을 즈음 한 아가씨가 홀연히 사무실로 들어왔다.

“아, 짜증나. 할 말만 간단히 해요. 나 바빠요.”

신경질적인 그녀의 첫마디는 날선 고양이를 닮았다. 연분홍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타난 8등신 몸매의 C씨는 인터뷰 내내 극도로 기자를 경계했다.

“나 기자들 와서 이러는 게 제일 싫어. 우리들 캐내서 뭐할 건데”

이제 갓 집창촌 생활 2년이 넘었다는 C씨는 사회에서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한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산전수전 겪은 사람들이예요. 이거 없어진다고 죽을 사람들 없어. 제일 싫은 게 우리 같은 여자들 여기 철수되면 뭐하고 살겠냐고 묻는 거야. 나 철거되면 이 짓 더는 안 해.”

차가운 눈빛과 말투에도 어쩐지 그녀가 밉지 않았다. 오히려 시큰둥한 말 속에 담긴 그녀의 고된 삶이 느껴져 마음이 적적했다.

“기자 분은 얼마나 버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일만큼 여자가 사회에서 돈 벌 수 있는 직업이 별로 없잖아. 남들은 뭐라고 할지 몰라도 난 적어도 내 일에 당당해.

장사가 잘 될 때는 하루에 수령액만 100만 원이 넘는다는 C씨는 계속해서 날을 세웠다. 상처받은 사람들 특유의 자기방어였다. 그러나 “언니 화났어요?”라고 난감한 표정을 짓는 기자에게 이내 실소를 터트린다.

“남자들한테 사근거리기도 바쁜데 여자들한테까지 그래야 돼?”라며 웃는 그녀의 모습은 소탈하고, 천진해 보이기까지 했다.

15분간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그녀는 성급히 업소로 나갔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던 C씨는 어느새 속옷만 입은 채 붉은 빛 아래 앉아있었다.

청명한 3월의 밤공기 어딘가에 우리의 시선이 부딪쳤다.

오늘도 C씨는 또 다른 누군가와 시선이 부딪칠 것이다. 달빛을 머금은 천호동 홍등가의 밤은 그 시선만큼이나 공허했다.

[김수정 기자] hohokim@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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