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법무부장관이 21일 국무총리 후보자로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지명되었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은 황 지명자가 “사회 전반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아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고 정치 개혁을 이룰 수 있는 적임자”라고 밝혔다. 그에 반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야당과 다수 국민의 바람(기대)을 짓밟은 독선적 인사”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총리가 “부정부패를 뿌리”뽑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고 정치 개혁”을 이룰 수 있다는 김 수석의 논평은 과장된 표현이다. 총리 직위가 그럴 만한 자리가 못되기 때문이다. 또한 “국민의 바람을 짓밟은 독선”이라는 문 대표의 비판도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총리에 대한 “국민의 바람”은 그토록 크지 않다. 총리는 서열상으론 행정부 2인자이지만, 단순히 대통령을 보좌하는 자리이며 대통령의 말씀을 대독(代讀)하는 정도로 그친다는 데서 그렇다.

지난 날 어느 총리는 취임하자마자 총리 집무실 집기를 청와대 쪽으로 모두 바꿨다. 자신을 총리로 임명해준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 표출이었다. “임을 향한 총리”형이다. 또 어떤 총리는 퇴임할 때 까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대통령에게 문안 전화를 했다. “문안 총리”형이다.

우리나라 총리가 “임을 향한 총리” “문안 총리”형으로 그칠 수 밖에 없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헌법 66조는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행정의 ‘수반은 대통령’이라고 못 박고 있다. 그 대신 총리의 역할은 헌법 86조에 명시된 대로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부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 부처를 통할한다.’고 했다.

총리의 역할은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 부처를 통할 대행하는 데 그친다. 대통령의 말씀을 대독하는 정도임을 의미한다. “임을 향한 총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는 헌법과 권력구조이다. 이런 총리에게서 “부패를 뿌리 뽑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름없다.

총리가 소신껏 국정을 끌고 가다가는 대통령과 부딪친다. 이회창 총리처럼 대통령에 의해 해고되고 만다. 그런데도 일부 국민들이 “책임 총리” 운운 하는 것은 대통령 중심제의 권력구조와 헙법 86조를 숙지하지 못한 탓이다. 총리 폐지론이 끊임없이 제기될 수 밖에 없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인 미국에서도 서열상 2인자인 부통령은 ‘대독 부통령’으로 그친다. 초대 부통령을 지낸 존 애덤스는 “부통령은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하찮은 자리”라고 했다. 시어도 루스벨트 부통령은 “부통령이 아니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고 불평했다. 해리 트루먼 부통령은 “부통령이란 소의 다섯 번째 젖꼭지 같은 자리”라며 쓸모없는 직책이라고 비꼬았다.

황교안 전 법무장관이 맡게 된 총리도 “소의 다섯 번째 젖 꼭지”같은 역할을 크게 넘을 수 없다. 황 총리 지명자는 법무장관으로서 어려운 일들을 소신껏 해냈고 기대를 모았다. 그는 재임 27개월 동안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 수사에 착수해 그를 사회로부터 격리시켰다. 뿐만 아니라 그는 헌법재판소로부터 통진당 위헌 결정을 이끌어냈다. 그밖에도 그는 세월호 참사 사건, 청와대 정윤회 문건 유출, 성완종 8인 리스트 등을 처리하며 법과 원칙대로 밀고 가려했다고 평가되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총리보다는 법무장관으로 계속 남아 법무부를 주도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 그가 “소의 다섯 번째 젖 꼭지”로 훼자되는 총리가 되기에는 너무 아쉽다. 개인에게는 영광이지만 국가엔 손실이다. 잘못된 인사였다. 그러나 그는 이미 총리로 지명되었다. 법무장관 시절 처럼 법과 소신을 발휘, “소의 다섯 번째 젖 꼭지”이상의 역할을 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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