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든 조폭, 코스탁 기업 넘본 까닭은

조폭의 지형도가 변화고 있다. 조직을 확대해 초대형 조직으로 변모하는 것은 물론 합법을 가장해 기업화되고 있다. 조폭조직이 진입했던 기업군이 건설업·대부업 등이 고작이었지만, 최근 들어선 M&A를 통한 코스닥 기업까지 사냥해 기업형 조직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전국적인 계보를 가진 조폭조직들이 사채시장을 통해 코스닥 시장에 들어와 50%이상의 기업들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또 하나의 사회범죄조직으로 기능이 확대되어감에 따라 대비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무자본으로 코스닥 회사를 인수해 가장납입, 횡령, 주가조작으로 이익을 얻으려고 한 기업사냥꾼들이 검찰에 검거됐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판사 김영진)는 지난 6일 조폭 김모(38)씨, 서모(41)씨를 등 2명을 구속기소하고 추가 2명을 불구속기소했다. 또한 해외도피 중인 사채업자 김모(37)씨를 지명수배했다.


무자본으로 코스닥기업 인수 주가조작·횡령

전국적 조직인 범서방파 김태촌 씨의 중간보스로 알려진 김씨는 사채업자 김모씨와 함께 2007년 무자본으로 코스닥 상장한 의류업체 W사를 인수했다. 그리고 고향선배인 오락실업주 출신 서씨를 회사 대표로 내세웠다.

당시 자기자본금이 10억 원인 W사는 자본잠식률 50% 미만이었다. 김씨는 관리종목을 해지하기 위해 유상증자를 실시해 자본증자를 한다. 이때 김씨는 사채업자 2명으로부터 자금을 차용해 223억 원을 유상증자 실시한다. 그리고 161억2000만 원을 가장 납입하여 빚을 갚는 수법을 사용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김씨는 분식회계를 통해 회사자금 43억8000만 원을 주가조작 자금 사용 목적으로 횡령했다.

김씨는 2000년대 초부터 명동사채 시장에서 사채업자의 해결사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코스닥 기업들이 사채를 빌려 기업을 인수하고, 유상증자로 자본을 증자해 분식회계로 다시 돈을 빼돌려 갚는 행위들을 지켜보면서 한탕의 꿈을 키웠다.

사건을 담당한 검찰의 한 관계자는 “현재 해외로 도피 중인 사채업자 김씨가 주범인 것으로 보인다. 자금의 흐름이나 분식회계 등을 처리할 수 있는 인물이라곤 김씨 밖에 없다. 현재 구속중인 김씨의 경우 범서방파의 중간보스이며, 기업경영이라곤 전혀 모르는 인물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사건이 일어난 직후 W사의 한 직원은 “김 씨가 회사를 인수한 뒤 엉망이 됐다. 빈껍데기가 됐다. 회사에 조폭들이 들락거리면서 여자사원들은 무서워서 회사를 다닐 수 없을 정도였다”고 증언했다.


범서방파 조직원 코스닥상장 인수 사기

조폭의 기업인수는 W사 뿐만 아니다.

2004년 기업인으로 변신한 뒤 회삿돈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주가조작에까지 관여해온 조직폭력배 두목들이 덜미가 잡히기도 했다.

검찰은 서방파 부두목 출신 L(54)씨와 양은이파 부두목 출신 K(47)씨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증권거래법 위반, 공갈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 조사 결과 L씨는 1999년9월 D사의 L회장의 회사에 대한 가수금 15억 원을 대신 갚아주는 조건으로 회사를 인수했다. 하지만 L씨는 회사 인수 당시 회사자금을 인출, 가수금을 갚았다. 돈 한푼 안들이고 직원 200명이 넘는 회사를 손에 넣은 셈이다. L씨는 무려 18억 원의 회삿돈을 횡령해 개인 빚을 갚거나 타인 명의로 아파트를 사는데 쓴 것도 모자라 회사자산을 타법인 명의로 돌리는 등 회사에 100억 원 가량의 피해를 끼쳤다.

이씨 인수 직전 자본금 72억 원에 부채비율 457%로 비교적 견실했던 D사는 불과 1년반만에 자본금 21억 원에 부채비율 1556%의 부실기업으로 전락한 뒤 2001년 2월 끝내 부도를 냈다.

지난 2008년에도 범서방파 조직원의 코스닥 인수 사기사건이 발생했다. 그해 6월 범서방파 조직원 출신 하모(당시42)씨도 코스닥업체 S사의 최대주주 회사인 T사를 M&A하는 과정에 개입해 주식인수 대금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당시 T사의 주식을 96억 원에 다른 업체에 넘기는 과정에 개입해, 사채업자에게 유상증자시 헐값에 지분을 넘겨주겠다고 속여 인수금을 받고, T사 주주 우모씨 등에게 지급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사용한 혐의이다.

조폭들이 코스닥 기업에 뛰어드는 이유가 뭘까. IMF이후 우후죽순 생겨난 벤처기업들이 코스닥 시장에 진입한다. 특별한 기술력과 자본력이 없던 기업들은 주가조작으로 한탕을 꿈꾼다. 기업들은 주금납입을 위해 사채와 손을 잡고, 사채에 돈을 빌려 유증자 등을 통해 자본을 증자하고, 그것을 분식회계를 통해 횡령한다. 이 과정에서 사채업자에 기생해 있던 조폭들이 자연스럽게 기업과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조폭이 코스탁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도 조폭의 고학력화가 한 몫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경찰은 “종전처럼 고교를 중퇴하고 조직에 가입하는 경우가 드물 정도로 최근의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신규 가입자들은 대학 재학자들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조폭의 코스닥 진입은 사회적 현상

또한 “조직원들의 학력 수준이 높아지면서 가져온 현상은 건설업, 폐기물처리업, 대부업 등의 합법을 가장한 사업 진출이 많다. 일부 조직은 유흥주점·사채업 등으로 자금을 마련하고 주가조작을 통해 기업 사냥꾼으로 나서는 경향까지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검찰 관계자는 “조폭이 무식하다는 것은 옛말”이라며 “지능화된 조폭들이 축적한 부를 이용해 권력층에 접근한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했다.

코스닥 기업을 경영하는 L회장(46)은 “현재 코스닥 기업 50%이상이 조폭과 연관되어 있다. 사채를 사용하거나 증자를 하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접촉하게 된다. 문제는 이들이 돈을 빌려주는 것을 미끼로 주가조작 등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가조작의 피해는 고스란히 선량한 개미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이 결국 조폭을 양성하는데 사용된다. 사회적 차원에서 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주리 기자] park4721@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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