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MERS) 감염 공포가 확산되면서 병원과 학교는 물론 산업 전반이 텅 비어가는 느낌이었다. 서울시 교육청은 강남·서초구 초등·유치원 126개에 휴업조치를 내렸다. 6월의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대한민국은 메르스 공포로 마치 중세기 흑사병이 창궐했던 때처럼 죽음과 공포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WHO), 외국의 메르스 전문의학 기자, 미국인들의 반응은 달랐다. 메르스 확산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방한한 WHO 합동조사단은 10일 “메르스 확산과 학교는 연관이 없기 때문에 학교들의 수업 재개를 강력히 권고한다.”고 했다.

미국 서부의 명문 고등학교인 하버드 웨스트레이크(Harvard Westlake) 고등학교 교사 20명은 6월11일부터 한국 역사와 문화를 배우기 위해 12일간 한국을 방문키로 결정했다. 중국·홍콩 등의 관광객들이 한국 방문을 무더기로 취소할 때였다. 그러나 하버드 웨스트레이크 교사들은 한국 보건 당국의 대처 상황과 메르스 바이러스 특성을 면밀히 검토하고는 한국 여행을 예정대로 추진키로 했다.

8일부터 서울에서 열린 ‘세계과학기자대회’에 참석한 의학·과학·환경 전문기자들도 메르스 감염을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한 참가 기자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자기 부인과 ‘서울에 같이 와서 지하철 타고 다니면서 서울 문화를 즐기고 있다.’며 ‘왜 한국 사람들은 길거리에서도 메르스 감염을 지나치게 걱정하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했다. 이어 그는 ‘지역사회 감염도 없는데 학교들이 줄줄이 휴교를 한다는 데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외국 기자들의 지적대로 한국 국민은 ‘메르스 감염을 지나치게 걱정’한다.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레밍 근성이 발작한 탓이다. 레밍은 북극산 들쥐로 떼지어 군거(群居)한다. 앞장선 놈이 달리다 벼랑끝에서 바다로 떨어져도 뒤따르는 놈들도 줄줄이 따라가 떨어져 죽는다. 우리 국민도 레밍처럼 남이 하면 줄줄이 따라가는 성향이 크다. 한국인이 레밍 같다는 비유는 1980년 8월 존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이 했다. 자존심이 상하는 말이었지만, 부인할 수 없다. 상당수 우리 국민들은 미국 고교 교사들처럼 메르스 바이러스 특성과 보건당국의 대처 실태를 면밀히 검토, 독자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레밍 근성은 2008년 광우병 파동 때도 발작했다. 근거도 없이 미국산 쇠고기 먹으면 광우병에 걸려 “뇌에 구멍이 숭숭 뚫린다”고 했다. 미국인들은 같은 쇠고기를 아무 탈없이 먹었는데 우리나라에선 “뇌에 구멍이 숭숭”하며 난리를 쳤다. 레밍 근성이 몰고온 국가적 수치였다.

박근혜 대통령도 14일로 예정되었던 미국 방문을 4일 전인 10일 전격 연기했다. 그의 방미 연기는 메르스에 대한 총력 대응의 의지 표출이었다. 그렇지만 메르스 사태가 얼마나 심각했으면 대통령이 방미까지 미뤄야 했느냐는 불안과 공포를 증폭시키기에 족했다. 박 대통령은 방미 연기보다는 메르스를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과학적으로 국민에게 설득했야 옳다. 대통령이 메르스 공포에 휩싸여 흔들린 게 아닌지 의심케 한다.

물론 메르스 감염 차단을 위해선 철저히 경계해야 하고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국민 모두는 공포에 떨지만 말고 메르스 바이러스의 특성과 보건당국의 대쳐 등을 차분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중세기 창궐한 흑사병인 듯 지레 겁먹고 심리적 공황상태로 빠져들어가선 안 된다. 남이 겁낸다고 나도 덩달아 두려워 해선 안 된다. 나 자신은 물론 국가와 사회를 마비시키고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마저 위축시킨다. 들쥐 레밍이 아니라 이성을 갖춘 인간으로서 냉철히 분석하고 대처해야 한다. 여기에 메르스 재앙을 이기는 지름길이 열린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