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12년 만에 월드컵 본선무대에 진출한 한국여자축구대표팀이 사상 첫 월드컵 16강을 목표로 조별리그를 치르고 있다. 비록 지난 10일 세계 강호인 브라질을 상대로 1차전에 패하면서 16강 진출까지는 쉽지 않은 길을 가게 됐다. 하지만 여러운 여건 속에서도 당당히 대한민국의 저력을 발휘하고 있어 그들의 값진 도전에 축구팬들이 응원을 보내고 있다. 세계 강호들을 향해 최선의 기량으로 맞서고 있는 윤덕여호의 도전기를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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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코스타리카전 교두보 삼아 강호들과 경쟁
 지소연 등 세계적 선수 배출에도 열악한 환경…생존 위해 필승을 담다 

윤덕여 감독이 이끄는 한국여자축구대표팀이 지난 10일 캐나다 몬트리올에 위치한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브라질(FIFA 랭킹 7위)을 상대로 한 1차 예선전에서 0-2로 패해 아쉬움을 남겼다. 이날 한국은 두 차례 실수로 덜미를 잡혔다. 전반 32분에는 수비수 김도연이 백패스 미스로 선제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고 후반 7분에는 조소현이 패널티박스 안쪽에서 파울을 범해 패널티킥으로 추가골을 내줘야 했다.

이에 대해 윤덕여 감독은 “브라질은 충분히 승리할 만한 조건을 갖춘 팀이다. 이제 2, 3차전은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최선을 다해 후회 없이 경기를 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다만 윤 감독은 “(브라질전에서) 체력에는 문제가 없었다. 단지 우리 실수로 인해 실점한 장면은 아쉽다. 이런 점을 고쳐야만 좋은 팀으로 발전할 수 있다. 실수한 선수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까 걱정된다. 빨리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감독은 또 “어느 팀도 가볍게 보지 않는다. 코스타리카와의 2차전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하겠다”며 “코스타리카는 신구조화가 잘 돼 있다. 특히 등번호 10번인 크루즈의 개인 능력이 뛰어나다. 잘 마크하겠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우리 수비수들은 나름대로 자기 역할을 잘했다. 사실 이런 강한 팀하고의 경기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선수들은 아마 더 자극받아 2차전을 준비할 것 같다”며 격려하기도 했다.

이날 패배로 한국은 조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아직 2경기가 남아 있어 여전히 16강 진출 가능성은 남았다.

특히 2차전인 코스타리카 전은 한국팀의 16강 진출의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브라질과 1차전에서 패하면서 승점을 얻지 못했다. 반면 한국의 1승 제물로 꼽히는 코스타리카는 선전한 끝에 스페인과 1-1로 비기면서 승점 1점을 획득했다.

결국 한국은 코스타리카를 반드시 이겨야 안정권에 들 수 있는 승점 4점에 다다를 수 있다.

더욱이 한국이 3위 자리에서 16강 경쟁을 하게 될 경우 승점은 물론 골득실차도 매우 중요해진다. 이에 따라 코스타리카전에서는 다득점을 해야 교두보를 튼튼히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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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4강 후광도 반짝

이처럼 윤덕여호가 16강에 진출하기까지는 쉽지 않아 보이지만 월드컵 본선 무대에 진출한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기에 충분하다. 실제 한국은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약체로 평가돼 아직도 한국여자축구가 성장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한국여자축구는 그간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자생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왔다. 2002 한일월드컵 이후 2003 미국 여자월드컵에 첫 출전하면서 한국여자축구는 주목을 받았다.

당시 월드컵 4강을 이룬 직후라 축구팬들은 환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세계의 벽은 높았고 3전 전패 1득점 11실점으로 쓸쓸하게 짐을 싸야 했다.

특히 당시 선수들은 축구가 두 번째 전공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육상, 수영, 필드하키 출신들이었다.

이후 1990년생 전후로 세대가 바뀌면서 순수한 여자축구 시대가 열렸다. 일명 ‘월드컵 키즈’들이 등장하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2010년 8월 지소연이 뛰던 대표팀은 독일에서 열린 FIFA 20세 이하 여자 월드컵에서 3위를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지소연은 무려 8골을 터트리며 실버슈(득점 2위), 실버볼(MVP 2위)을 차지했다.

한 달 뒤 한국 축구사는 새롭게 작성됐다. 2010년 9월 25일 트리니다드코바고의 해슬리 코르포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FIFA 17세 이하 여자월드컵에서 한국이 정상에 올랐다. FIFA 주관 대회에서 한국이 우승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로써 여민지 세대가 등장하며 또다시 여자축구의 바람을 일으켰다.

이에 한국 사회는 여자축구의 열악한 현실에 대해 이곳 저곳에서 지원책을 쏟아내는 등 붐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열정은 오래가지 못하고 열악한 환경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특히 한국여자축구는 체계적이지 못한 지원에 기회를 번번이 놓치면서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선수들은 훌륭하게 성장해 한국여자축구의 부흥을 도모하고 있다. 우선 첼시 레이디스에 진출한 지소연은 최근 잉글랜드프로축구선수협회로부터 ‘올해의 여자선수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선수로 인정받았다. 또 지소연과 여민지 세대가 함께 하모니를 이루면서 12년 만에 월드컵 무대에 진출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이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것만으로도 한국대표팀은 한 단계 성장했음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더욱이 한국대표팀은 최근 치른 미국과의 평가전을 통해 자신감을 끌어올렸다. 지난달 31일 미국 뉴저지 레드불 아레나에서 열린 미국(FIFA 랭킹 2위)과의 평가전에서 한국은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특히 한국은 미국의 60경기 연속 득점을 틀어막으며 탄탄한 수비로 미국 공격진을 묶었다. 당시 미국 선수들은 한국의 선전에 충격을 받았기도 했다.

‘외로웠다’
女축구 현실 대변

이런 가운데 출정식에서 밝힌 전가을 선수의 한마디가 축구팬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여자축구대표팀은 지난달 18일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KT 올레스퀘어 드림홀에서 출정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을 비롯해 축구협회 관계자들과 선수 가족과 축구팬들이 모여 윤덕여호의 선전을 기원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정 협회장은 “열약한 환경에서도 한국여자축구가 큰 발전을 이뤘다. 이제 새로운 역사를 준비하고 있다. 모든 이들의 응원을 당부한다”고 격려했다.

이후 진행된 토크 콘서트에서 선수들을 대표해 월드컵을 앞둔 각오를 전하던 전가을은 “대한민국에서 여자축구 선수로 산다는 것이 좀 외로웠다. 이 자리 오기까지 정말 많이 노력했다”며 눈물을 보였다. 그는 또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각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지금 흘리는 눈물이 헛되지 않도록 감동적인 경기를 보여 주겠다”고 모든 선수들의 심정을 대변했다.

더욱이 이날 전가을이 전한 ‘외로웠다’는 한마디는 그동안 대한민국 여자축구계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축구팬들에게 씁쓸함을 전했다.

▲ 전가을 선수<뉴시스>
인조잔디 등
변수 극복이 열쇠

브라질의 벽을 넘지 못했지만 윤덕여호의 각오는 대단하다. 실제 윤 감독은 이번 소집에서도 미드필더 이영주(23·부산상무)가 소속팀 경기에서 무릎부상을 당해 제외됐지만 추가인원을 발탁하지 않았다. 내부 긴장감을 더욱 끌어올리겠다는 게 윤 감독의 복안이었다.

물론 브라질 전에서 실수에서 비롯된 실점을 내줬지만 공격라인이 제대로 발동하지 못했던 것도 패배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만큼 코스타리카전 이후부터는 좀 더 적극적인 공격자세가 요구된다. 특히 브라질 전에서 ‘지메시’ 지소연의 슈팅이 없었던 점이 치명타가 된 만큼 지소연의 슈팅 찬스가 더욱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앞서 지소연은 지난 4월 러시아와의 1차전 평가전에서 0-0 팽팽한 균형을 거침없이 깨트리며 팀 승리를 이끌어 1-0의 성과를 이뤄냈다.

결국 지소연의 슈팅이 이뤄지지 않으면 한국은 승리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함께 인조잔디, 실내 돔구장에 대한 적응도 영향을 미친 만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백전노장 김정미는 몬트리올올림픽 경기장 잔디가 높아 패스의 정확도가 떨어졌다고 귀띔했다. 그는 “미국에서 연습한 인조잔디와는 또 달랐다. 어제 처음 1시간 공식훈련을 한 후 곧바로 경기에 임했는데 잔디가 많이 높다. 공이 바운드되고 불규칙하게 멈춰버린다. 패스워크에 문제가 있었다”면서도 “다음 경기인 코스타리카전에는 좀 더 잔디에 적응할 수 있기 때문에 오늘보다 분명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결국 선수들이 주어진 환경을 이겨내고 빨리 적응하는 것이 한국대표팀의 승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축구대표팀은 어려운 역경을 이겨내고 본선진출을 이뤘다는 것만으로도 박수 받기에 충분하다. 또 아직 2, 3차전이 남아 있는 만큼 16강을 향한 윤덕여호의 필승의지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여자축구대표팀은 오는 14일과 18일 코스타리카와 스페인을 상대로 조별예선을 치를 예정이다.

todida@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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