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병원서 수술 받다 사망…소리 없이 장례 치른 내막


DJ정부 시절 동교동의 실세로 군림하며 막강파워를 과시했던 A씨가 지난해 말 사망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A씨는 지난해 11월 서울소재 한 종합병원에서 지병인 간경화 수술을 받던 중 수술대 위에서 명을 달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DJ정권을 논할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할 정도로 동교동의 핵심인물로 꼽힌다. 그런 그의 죽음이 왜 그동안 세간에 드러나지 않았던 것일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A씨는 김홍일 전 의원과도 매우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국정원의 B 전 과장도 김 전 의원과의 관계를 증언한 바 있다. 하지만 김 전 의원측은 A씨와 아무런 친분이 없다며 A씨와 관계를 공식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베일 속에 가려진 A씨는 DJ정권시절 막강 권력을 휘두르며 국정원에까지 영향력을 미쳤던 것이 사실이다. DJ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A씨는 그러나 생전에는 철저히 그림자 뒤에 숨어 배후정치를 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그의 존재를 제대로 아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동교동의 그림자 가신으로 살았던 A씨의 미스터리한 행적을 따라가 보았다.

A씨의 사망 사실을 최근에서야 접한 이들은 대부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 A씨 같은 중요인물의 사망 사실이 왜 세상에 드러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시한다. 일부에서는 “그의 죽음이 알려지면 과거 정부의 비밀들이 다시 수면위로 부상할 것으로 우려해 동교동 측이 쉬쉬한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A씨가 DJ정부시절의 비리를 가장 많이 알 것이라는 추측이 오래전부터 나왔다. A씨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소문이 무성하다. 특히 그의 출신에 대한 말이 많이 돌았다. 전직 국정원 직원들과 동교동 사정에 밝은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A씨는 호남지역 조폭출신 인사라고 한다. 이 때문에 DJ정부 당시 호남 조폭 세력이 동교동과 은밀한 커넥션을 맺고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이권 사업에 개입하고 있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정치권에 나돌았다.

또 A씨는 동교동으로 흘러들어오는 각종 검은 돈을 세탁하는 일을 담당했다는 증언도 있다. DJ 정부 시절 동교동 핵심인사의 최측근 이었던 K씨는 ‘그림자 가신’ A씨가 막대한 정치자금을 관리했다고 털어놔 주목을 끈다.

K씨는 “DJ 정부 때 A씨는 얼마 후 막대한 정치자금을 움직였다. 그는 IMF 당시 기업 구조조정에도 일부 관여한 것으로 안다”며 “내가 알기로 하루에 수십억 원이 A씨를 통해 움직였다”고 말했다.


급한 성질이 죽음재촉

그렇다면 A씨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일까.

A씨에 대해 잘 아는 이 인사는 “A씨가 간경화 악화로 세상을 떠났다.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장례식은 조용히 치러졌다”며 “지병이 있기는 했지만 생명이 위험한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A씨의 죽음은 주변인들에게 너무도 갑작스러울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A씨는 평소 술을 즐겨 간이 좋지 못했다. 건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간경화를 앓게 된 A씨는 부와 권력을 얻은 뒤에도 항상 몸이 걱정이었다. 그는 주변의 만류와 걱정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술을 즐겼다고 한다. 그러다 수년 전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돼 병원에 입원한 뒤로 술은 일절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나 술의 유혹을 떨치기 어려웠던 A씨는 고민 끝에 간 이식 수술을 받기로 하고 결정했다. 얼마 후 A씨는 한 종합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A씨는 이식 수술을 통해 다시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병원은 간 이식 수술을 위해 간 이식 검사를 실시했다. 간 이식 수술은 여러 가지 적합성과 부작용 등의 여부를 가려내기 위해 여러 가지 까다로운 검사를 거쳐야 한다. 이 검사를 제대로 받아야만 수술이 진행될 수 있다.

그러나 평소 성격이 급했던 A씨는 까다로운 검사들을 모두 마다하고 기본 검사만 실시한 뒤 바로 수술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기본 검사에서 통과하면 수술 이후 부작용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말을 누군가로부터 들었기 때문이었다.

A씨의 고집에 병원은 ‘수술이 잘못돼도 병원에 아무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아내고 수술을 감행했다. 그 결과 수술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식 간에 대한 급격한 거부반응이 나타나더니 A씨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베일 속 그림자 가신

이 같은 부작용은 병원 측도 원인을 알기 힘든 일이라고 한다. 이런 불의의 사태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많은 검사를 거치는데도 A씨는 급한 마음에 이것을 거부하고 수술대에 올라 그만 운명을 달리한 것이다.

A씨의 사망 소식을 접한 한 전직 국정원 인사는 “A씨의 사망으로 베일에 가려진 DJ정권의 여러 의혹들을 밝히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아쉬워했다.

또 A씨는 동교동의 여러 정치적 결정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는 소문이파다하다. A씨의 재산 규모는 구체적으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다만 주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실제 재산이 1000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인사들의 말에 따르면 과거 확보한 기업지분까지 합치면 알려진 것보다 재산이 더 많다.

그러나 A씨의 가족들이 전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사정이 다르다. 알려진 바와 달리 A씨는 재산이 많지 않으며, 현재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가족들이 직접 주변에 경제적 어려움을 하소연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에 대해 잘 아는 또 다른 한 인사는 “최근 A씨의 아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 있다. 그의 아내로부터 ‘현재 A씨가 남긴 재산이 거의 없어 지금 돈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며 “믿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그의 아내는 그렇게 이야기 했다. 지금 돈 빌려갔던 사람들 중 일부는 돈 빌린 적 없다며 벌써 시치미를 떼고 있다”고 혀를 찼다.

그의 가족들 말을 그대로 믿긴 힘들다. A씨에 대해 잘 아는 야당 측의 인사는 A씨의 재산에 대해 “한마디로 ‘눈먼 돈’이 됐다”며 “적어도 수백억 원은 넘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한편 그의 죽음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히 묻힌 것을 두고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소문에 따르면 A씨 사망 후 그의 재산 상당부분이 증발한 것으로 전해진다. 없어진 재산은 대부분 A씨의 해외 재산이거나 차명으로 관리하던 재산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사라진 A씨의 재산중 일부가 정치권 비자금이 아니냐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동시에 그가 정치권 비자금 관리인이라는 소문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A씨의 재산이 없어졌는지 여부와 정확한 재산 내역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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