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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갈아타기 대체로 만족 … 현지재건 예산 대거 투입
오바마 “푸틴이 옛 소련 영광 재현하려 한다”며 성토

[일요서울 | 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은 독일 남동부 알프스 산지의 독일 최고봉 추크슈피체산(2,963m) 기슭에 자리 잡은 인구 2만6000명의 소도시다. 여기서 3㎞ 남짓 떨어진 그림 같은 휴양지에서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캐나다·일본의 주요 7개국(G7) 정상이 6월 7~8일 이틀 동안 회담했다. G7 정상회담은 1998년부터 러시아를 초청해 G8(G7+1) 형태로 개최되어 왔는데 러시아가 2014년 3월 크림반도를 합병하자 이에 격분한 G7이 2014년 브뤼셀 정상회의 때부터 러시아를 빼고 G7만으로 회의를 열고 있다.

이번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회의에서 G7 정상들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지난 2월 독일·프랑스·우크라이나와 민스크 평화협정에 합의한 러시아가 친(親)러시아 반군에 무기를 지원해 우크라이나 내분을 조장한다고 보고 7월 말까지 유효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 조처를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G7 정상들은 평화협정 조건이 제대로 이행되면 제재가 철회될 것이라면서도 “필요가 있을 경우 제재를 강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추가적인 경제제재 조처에 대한 토론이 G7 정상들 사이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옛 소련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경제를 악화시키고 국가와 국민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러 빼고 회의한 G7정상들

2014년 3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은 냉전 종식 이후 러시아와 서방 사이의 최악의 위기로 이어졌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이 불법이라며 합병 이후 미국 내 러시아 자산을 동결하는 등 러시아에 각종 금융제재를 가했다. 그 중 크림반도 주민들이 지금도 피부로 실감하고 있는 제재는 크림반도 지역에서 비자카드와 마스터카드의 효력이 정지된 일이다. 이 바람에 크림반도 주민들은 각종 결제에 현금만을 사용하고 있어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러시아 본토의 은행들이 크림반도로 건너가 신용카드 사업을 벌이는 것을 한때 검토하기도 했지만, 만약 그랬다가는 자신들마저 서방의 금융제재 대상에 포함될 수 있어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크림반도에서는 관광이 주된 산업인데, 서방의 제재 이후 외국 관광객을 태운 크루즈 선박의 방문은 끊어지다시피 했으며, 러시아 본토에서 오는 관광객도 급격히 줄었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크림반도가 러시아 영토로 환원(크림반도는 1954년 후르시초프가 우크라이나에 양도했다)된 이후 이곳 주민들 가운데 공공 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월급은 꽤 올랐지만, 지난 1년 사이 물가가 봉급보다 더 빠르게 올라 현지인들의 살림살이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 팍팍해졌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러시아 정부는 새로 러시아 국민이 된 주민들을 다독거리고 현지의 인프라를 재정비하느라 크림반도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붓고 있다. 모스크바국립대학의 나탈리아 주바레비치 경제학 교수가 《이코노미스트》에 밝힌 바에 따르면, 크림반도의 전체 예산 가운데 85%가 러시아 중앙정부로부터 지원된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는 지난 4월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하느라 치른 비용(서방의 경제제재로 인한 손실 포함)이 2014년 한 해에만 270억 달러에 달했다고 밝혔다. 크림반도 주민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은퇴자들에게 연금을 올려주고 현지 인프라를 개선하는 데 앞으로도 엄청난 예산이 들어갈 예정이어서 러시아 본토 주민들 사이에서 “러시아 국민의 세금을 언제까지 크림반도에 쏟아 부을 작정이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합병된 것은 2014년 3월 실시된 주민투표에서 압도적인 다수(96.6%)가 우크라이나를 버리고 러시아를 새 조국으로 택했기 때문이다. 2013년 12월 시작된 우크라이나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자 이듬해 3월 러시아가 크림공화국에 군대를 주둔시키면서 사실상 이 지역은 러시아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이로 인해 한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 위기가 고조되기도 했다. 크림공화국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면서 크림 의회가 러시아와의 합병을 결의했고, 이어 합병에 대한 찬반의사를 묻는 주민투표를 거쳐 독립국가를 선포했다. 그러면서 유엔과 각국에 크림공화국을 독립국가로 인정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우크라이나 정부와 서방은 “영토 변경은 (주민투표가 아니라)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한다”는 우크라이나 헌법을 들어 주민투표 결과가 무효라고 선언했다. 이에 맞서 러시아는 ‘국민의 기본 권리와 자결 원칙의 존중’을 규정한 유엔 헌장을 내세워 이를 유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크림반도는 전체 인구 200만 명 가운데 러시아계가 58%로 가장 많고 우크라이나계는 24%에 불과하다. 이어
타타르계가 10% 남짓으로 소수민족을 구성하고 있다. 크림반도 주민투표를 불법으로 보는 서방에서는 러시아가 크림반도의 비(非)러시아계 주민들을 겁박해 주민투표에 찬성하도록 유도했다고 주장하지만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는 이와 다르다. 한 마디로 “러시아 지배를 받는 지금이 우크라이나 지배를 받던 옛날보다 낫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계 58%로 가장 많아

2014년 6월 크림반도 주민들을 대상으로 “2014년 3월 16일의 주민투표가 주민의 의사를 반영한 것이었나?”를 물은 갤럽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2.8%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번에는 민족별로 조사 대상을 쪼개 러시아계 주민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자 93.6%가 ‘그렇다’고 답했고, 우크라이나계 주민은 68.4%가 같은 대답을 했다. “러시아에 합류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당신의 삶에 더 나으리라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전체의 73.9%가 ‘그렇다’고 답했다.

2015년 2월 독일의 조사 전문기업 Gfk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당신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찬성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82%가 ‘확실히 그렇다’고 답했으며 또 다른 11%는 ‘대체로 그렇다’라고 답했다. ‘모른다’와 ‘아니다’라는 응답은 각각 2%, 입장 표명을 유보한 사람은 3%였다. GfK 조사는 또 “우크라이나 언론이 크림반도를 공정하게 평가했는가?”를 물었다. 이에 대해 응답자의 1%만이 우크라이나 언론이 “전적으로 진실한 정보를 제공했다”라고 답했고, 4%가 우크라이나 언론이 그들을 “속이기보다 진실할 때가 더 많았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scottnearing@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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