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정 살해…용의자 신씨는 업소 단골”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 위치한 윤락가. 이른바 청량리588의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는 여종업원이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인 박모(31)씨는 지난 달 30일 오후 3시 50분께 박씨가 일하던 업소 복도에서 발견됐다. 날카로운 흉기로 복부를 깊게 베여 내장이 드러난 채로 숨져 있었다. 하지만 경찰 조사결과 박씨의 직접 사인은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인 것으로 드러났다. 다시 말해 범인은 박씨의 목을 졸라 먼저 살해한 후 사체를 훼손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은 잔혹성과 더불어 대낮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대담성을 띄고 있어 사건이 발생한 588 주변은 패닉상태에 빠져있다. 이에 이 일대 업소 여성들 중 상당수가 두려움을 호소하며 일을 쉬거나 휴가를 떠난 상태다.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로 신말석(52)씨를 지목하고 그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다. 신씨는 왜 박씨를 끔찍하게 살해한 것일까. 박씨가 처참하게 쓰러진 현장을 직접 찾아 사건의 전모를 따라가 봤다.

경찰은 사건 현장 주변 CCTV와 주변인들의 증언을 통해 신씨의 신원을 확보하고, 신씨를 찾고 있지만 그의 행방은 현재 오리무중이다. 이번 사건은 ‘치정관계에 의한 살인’이라고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박씨의 주변인들은 박씨가 매우 힘든 삶을 살았다는 점에서 그의 허망한 죽음을 더욱 안타까워하고 있다. 박씨는 힘든 삶을 살았음에도 그 무게를 이겨내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던 효녀였다고 주변인들은 입을 모은다.


가족 생계 책임졌던 효녀

짧은 생머리 150cm 초반의 키 그리고 작고 가냘픈 몸. 건강한 체구는 아니었지만 삶의 무게를 이겨내려는 의지만큼은 강한 박씨였다.

박씨는 가족의 생계를 혼자 책임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인들은 한결같이 “자기 한 몸 희생해 가족을 먹여 살린 착하고 불쌍한 아이”라고 박씨를 떠올렸다.

부산 출신의 박씨는 가정환경이 넉넉지 못해 20대 초반부터 집창촌을 전전해야만 했다.

2004년 성매매특별법 시행으로 ‘청량리 588’이 급격하게 몰락하면서 박씨는 588을 떠나야 했다. 잠시 사회생활을 했지만 벌이는 신통치 않았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자 생활고는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지난 2009년 7월에 다시 588을 선택했다.

윤락가로 다시 왔지만 많은 것이 바뀌어져 있었다. 포주가 고용해 선불을 주는 방식에서 업주에게 방을 전전세로 빌려 월세를 주고 영업을 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또 밤 영업을 주로 하던 과거와 달리 24시간 영업을 하고 있었다.

박씨는 바뀐 영업 방식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250만 원 방세를 내야하는 밤 영업을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다. 밤 영업은 손님이 많은 대신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 30대의 나이에 수수한 외모였던 박씨는 젊고 예쁜 20대 성매매 여성들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방세를 감당하지 못하자 쫓겨난 박씨는 사정한 끝에 100만 원 월세로 낮 영업을 시작했다. 그나마 낮 영업도 어머니 병간호 등으로 한 달에 10여 차례밖에 나오지 못했다.

낮 영업도 장사가 안 되긴 마찬가지여서 5명의 손님을 받는 것이 평균인 이 업계에서 박씨는 하루 2~3명의 손님 밖에 받질 못했다고 한다. 업주 A씨는 “박씨가 어머니 병원비만 고정적으로 200만 원을 썼다”며 “평소 주변에서 돈을 많이 빌려 썼다”고 전했다.

박씨의 하루의 낙은 일이 끝난 후 소주 1병을 사서 마시는 것이 전부였다. 남자친구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내성적인 성격에 속내를 잘 이야기 하지 않았던 탓에 박씨 주변에 관해 상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신씨 최근에 자주 다녀가

사건 당일 박씨의 일상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아침 11시쯤 커피 한잔을 시켜먹고 12시 무렵 C씨와 강아지와 관련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눴다. 굉장히 밝은 목소리였다. 그 후 1시 20분경 김밥을 배달시켜 먹었다.

하지만 3시 45분경 업소 복도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업소 주인인 윤모씨가 박씨를 제일 처음 발견했다. 발견 당시 박씨는 상의만 걸친 채로 복부가 30cm 가량 베여 내장이 노출돼 있었다.

용의자로 특정된 택시기사 신씨는 이날 오전에 왔다가 오후 2시경 다시 오겠다고 돌아갔다. 그 후 박씨가 전화를 걸어 신씨와 통화했다. 2시 45분경 해당 업소에서 나오는 신씨의 모습이 흐릿하게 녹화된 영상을 마지막으로 신씨의 행방은 묘연하다. 경찰은 현재 해당 CCTV 영상과 범행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길이 25cm 가량의 흉기도 확보한 상태다.

박씨 주변인들은 “최근 신씨가 박씨를 자주 찾아왔다”고 이야기했다. 업주 B씨도 “신씨는 박씨의 오랜 단골로 외골수 같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중랑구에 위치한 신씨의 집에 갔으나 이미 종적을 감춘 후였다. 신씨의 집은 단칸방으로 행거만 덩그러니 놓여있고 살림 구색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업주 B씨는 “경찰이 신씨 가족들을 만났는데 그 가족들은 ‘당장 찾아내 잡아가라’고 말하는 등 가족들조차 외면했다고 한다”고 전해줬다.


대낮에 왜 아무도 몰랐나?

이곳 업소 수는 총 37여 군데로 성매매 여성은 60~70명 사이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밤 영업을 하고 있어 낮 영업을 하는 곳은 극히 일부다. 사건 당일 낮에도 박씨 업소 주변은 영업을 하지 않았던 상태로 알려졌다.

업소는 투명유리창 바로 안에 호객행위를 하는 공간이 있고 그 옆으로 공동욕실과 주방이 있다. 바로 뒤편의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세로로 늘어선 복도가 있다. 복도를 따라 너 댓개의 방이 있다. 여기에 박씨의 방이 있다. 5평 남짓의 방에는 침대와 화장대 등 간소한 짐만 있었고 방음이 전혀 되지 않아 옆방의 소리가 그대로 들렸다. 하지만 사건 당일 업소 안에 있었던 건 박씨 혼자였다. 더구나 철문을 닫으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밖에서 알아챌 수 없어 아무도 박씨의 비명소리를 듣지 못했다.

한편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인 신씨가 사건 당일 이후 집에 들어가지 않고 가족과 친구를 거의 만나지 않아 소재 파악이 어렵고 추가범죄의 우려 때문에 지난 3일 살인 혐의로 전국에 공개 수배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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