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관리감독, 신원노출 최소화 해야

[일요서울 | 조아라 기자] 보복범죄를 가리켜 흔히 ‘끝나지 않는 범죄’라고 한다. 보복범죄는 대부분 강력 범죄로 이어져 피해자가 끊임없이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다른 범죄 유형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임에도 지금껏 보복범죄 피해자는 사회적 도움을 받지 못했다. 부족한 정부인식과 협력, 정보공유가 범죄를 키워왔다는 지적이다.

지난해만 250건 넘어…솜방망이 처벌이 문제 
“피해자 위한 전담부서와 체계적 법률 구조 마련돼야”

# 경남 창원에서 음식점을 하는 A(51·여)씨는 지난 3월 아찔한 일을 겪었다. 동네조폭으로 불구속됐던 B(50)씨가 술에 취해 욕설을 하고 자신을 협박하며 행패를 부렸기 때문이다. A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B씨를 현행범으로 붙잡았다. 조사결과 B씨는 최근 2차례가량 이 음식점을 찾아와 술을 달라고 요구했으나 거절하자 행패를 부린 것으로 나타났다. 알고보니 B씨는 지난해 10월에도 행패를 부려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돼 이달 1심 재판을 앞두고 있었다.


# 형사합의 요구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후배와 가족을 협박한 C씨(52)에게는 징역형이 선고됐다. C씨는 지난해 11월 후배 D(46)씨에게 폭행해 전치 6주의 상해를 입혔다. C씨는 “동성애적 감정이 부담스러워 자신을 피하는 D씨가 싫었다”고 말했다. C씨는 형사합의를 요구했지만 거부당하자 앙심을 품고 D씨의 휴대전화 음성사서함에 ‘너와 네 가족을 살해하겠다’고 남겼다. 또 같은 날 병원에 입원 중인 D씨의 가족을 찾아가 알루미늄 야구방망이를 들고 ‘살해하겠다’고 협박했다. 광주지법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집단·흉기 등 협박)과 특정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보복협박) 등의 혐의로 기소된 E씨에게 징역 1년6개월 형을 선고했다. 

보복범죄 피해자가 늘고 있다. 지난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새누리당 이병석 의원이 대법원과 법무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6년 75건이었던 보복범죄 발생건수는 2013년 395건으로 5배 넘게 급증했다. 지난해에는 255건으로 지속적 증가세를 보였다.

가해자 형벌 턱없이 낮아

보복범죄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피해자의 신변이 안전하게 보호되지 못하는 데 있다. 보복범죄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범죄 신고자 등의 신원노출 위험부터 최소화해야 한다. 하지만 그간 공소장에는 피해자의 이름, 주소, 직업, 근무처 등 신상 관련 사항을 기재해야만 했다. 범죄 장소의 구체적 지번, 건물번호, 공동주택의 동·호수 등의 상세한 집주소와 피해자의 근무처 등 지나치게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노출시킨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또한 피해자의 신상정보가 담긴 영장 범죄사실을 그대로 사본으로 첨부해 피의자에게 통지하던 관행도 문제를 키웠다.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이용해 피의자 가족이나 대리인을 알아낸 미체포 공범들의 합의종용과 보복범죄가 끊이지 않은 이유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수사기관에 증거로 제출된 서류 등도 범죄피해자의 신상정보를 노출시켰다.


지난해 광주지방법원은 성폭력 피해자의 이름과, 주소, 주민등록번호 등을 기재한 판결문을 가해자에게 송부해 논란을 빚었다. 경찰에게서 피해자 연락처를 얻어간 피의자도 있었다. G씨는 2012년 5월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싶다”며 자신을 강제추행으로 신고한 피해여성의 전화번호를 얻어갔다.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것에 앙심을 품은 G씨는 20여 차례에 걸쳐 협박전화를 해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가해자에게 구형된 낮은 형벌도 문제다. 이병석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04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보복범죄로 1심 판결을 선고받은 범죄자는 모두 1146명이었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인 563명이 집행유예나 벌금형 이하의 선고를 받았다.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보복범죄는 60% 이상이 신고 또는 피의자 조사 직후에 집중됐다. 집행유예로 석방 직후(9.4%), 출소 직후(7.7%)가 뒤를 이었다. 

피해자 지원책 마련돼야

수사기관의 허술한 보복범죄 관리감독도 문제를 키웠다. 경찰청, 검찰, 대법원, 법무부는 해마다 보복범죄건수를 통계수집하고 있다. 하지만 각 기관마다 서로 다른 통계시스템을 사용하다보니 기본적인 범죄건수조차 파악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2013년 “보복범죄가 범죄통계원표에서 빠져있어 각 기관별 집계 원칙이 없는 실정”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한국피해자지원협회 측도 “우리가 범죄 피해자를 위해서 활동을 하고 있지만 보복범죄로 인한 피해사례가 얼마나 되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보복범죄가 해마다 증가하자 지난해부터 공소장 기재방식이 변경됐다. 피해자의 신상정보는 최소화했다. 체포·구속 통지 영장은 피해자 신상 관련 부분을 삭제 후 통지하기로 하는 등 관행을 개선했다. ‘가명조서 작성·관리 지침’도 제정해 가명조서 작성이 가능한 범죄 피해자에 대해서는 그 신청 여부를 확인하고, 보복 우려가 있을 시엔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관련 지침이 제정됐다. 


범죄피해자를 위한 각종 보호·지원 정보제공 의무화가 권고됐다. 국민권익위는 2013년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범죄 피해자 권익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안’을 마련해 법무부, 경찰청, 기초자치단체에 전달했다. 검찰도 같은 해 “보복범죄는 원칙적으로 구속하고 양형기준상 최고형을 구형하는 등 엄정 처벌해 격리할 것”이라며 “수사초기에 핫라인을 구축하고 피해자 밀착보호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 해 국정감사에서 법부무가 보복범죄 예방 예산 5억5100만 원 중 46.5%가 사용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민간경호업체와 업무협약을 맺어 부족한 현장출동인력을 충원했지만 출동실적은 한 해 18건으로 매우 저조했다. 출동 시 참고해야 할 업무 매뉴얼과 지침사항도 없었다. 반면 경찰은 2013년까지 보복범죄 관련 예산을 집행 받은 적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외국의 사례처럼 신상정보 유출 방지를 위해 익명진술제도를 운영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더불어 범죄자의 위험성을 평가하고 체계적인 관리가 더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피해자지원협회 관계자는 “보복범죄 피해자를 위한 전담 부서와 체계적인 법률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한편 보복범죄 문제가 대두되자 새누리당 김태호 의원은 지난 5월 ‘특정범죄 신고자 등 보호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보복범죄 발생 우려가 있을 시 신변안전조치 기간을 연장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chocho62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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