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배신의 정치’가 화두로 떠올랐다. 물론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사퇴압박을 둘러싼 화제였다. 그런데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언급이 양갈래 해석을 낳았다는 점이다. 대개의 생각은 과거 박근혜 당대표 시절의 비서실장까지 지낸 사람이 대통령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소위 ‘문고리 3인방’을 염두에 둔 ‘청와대 얼라들’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대통령의 생각을 깔아뭉개는 듯한 유 의원의 처신을 배신으로 본 것 같다.
당 대표된 자리는 주류든, 비주류든, 친박이든, 비박이든 당 대의원들의 신임만 얻으면 충분히 자기 정치를 할 수 있는 위치다. 때문에 때로는 대통령과 정치적 마찰이 당연히 있을 수 있다. 그런 사정에서 당과의 마찰이 잦은 임기 말 대통령이 자신이 이끈 집권당을 탈당해 떠난 사례가 몇 번 있다.
그렇지만 집권당의 원내대표 직책은 전혀 그럴 수가 없는 위치다. 지금 원내대표로 불리는 그 자리는 과거 원내총무의 역할에 더도 덜도 다를 게 없다. 그렇다면 지난날의 원내총무가 어떤 정치를 폈던가를 생각해 보면 답은 절로 나온다. 소속당, 특히 여당 총무는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쉽도록 하기 위해 야당을 설득하고, 뜻이 다른 소속의원들의 소수 의견을 잠재우는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입으로는 정권의 성공을 말하고, 행동은 자신을 더 부각시키는데 주력하는 자기 정치를 한다면 이건 뭔가 혼돈을 해도 이만저만한 혼돈이 아닐 것이고, 착각을 일으켜도 보통 착각이 아니다. 그러면 박 대통령이 못 박은 배신의 정치는 자신에 대한 배신감보다는 원내대표에게 주어진 역할에 관한 배신의 정치를 말한 것임에 분명하다.
비박계라기 보다는 친이명박계의 수장으로 불리는 이재오 의원의 ‘기만 정치’는 또 어떤가, 그는 2011년 한나라당 중앙위원회 신년하례회 자리에서 “MB의 성공을 위해 일하는 게 국회의원과 장관이 할 일”이라고 말했던 사람이다. 그랬던 이 의원이 이번 유승민 사퇴파동에 대해서는 “당 지도부는 의원들의 의견을 대통령에게 제대로 전달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자리인데 거꾸로 청와대의 의견을 의원들한테만 전달하는 건 원칙에 옳지 않다”는 정반대되는 목소리를 냈다. 누구보다 ‘당청의 공조’를 강조했던 사람이 처지가 달라졌다고 낯색도 변치 않고 딴말을 해대는 이런 국민 기만행위에 무슨 더 할 말이 있겠나.
‘변절 정치’하면 떠오르는 여러 변절인물들이 있으나 특히 대표적 인물이 과거 경북 문경출신의 채문식 씨다. 10.26사건 이전까지 신민당의 중진의원으로 유신반대 투쟁에 앞장섰던 사람이 전두환으로 바통 터치된 5.17쿠데타 세력에 빌붙어 이른바 ‘국보위’라는 괴물 권력을 이끌고 그 정권하에서 국회의장직까지 해먹었다. 그 사이 동고동락하던 동료의원들은 온갖 고문에 쓰러지고 철창행을 하고 있는데도 자신은 신 권력에 도취돼 10년 세월을 누리고 살았던 사람이다.
더 기막힌 현실은 이런 자가 지역 일부 토호추종세력의 준동으로 민선지자체장을 압박해 문경시문화원 앞에 버젓하게 ‘의인’이나 ‘위인’으로 만세에 빚날 흉상을 조합해 낸 것이다. 이러니 정치가 환멸 당하고, 장래 희망을 묻는 어린학생들 설문조사에서 조차 그 옛날 풍광과는 전혀 다르게 ‘정치가’가 되겠다는 응답자가 최 하위권을 맴도는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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