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경창설 69주년’ 규모 커졌지만…

[일요서울 | 조아라 기자] 여경이 창설 69주년을 맞았다. 금녀의 벽을 허물며 경찰계로 진출한 여경들은 전체 경찰의 9.4%를 차지할 만큼 성장했다. 올 4월 기준으로 여경은 1만340여명이다. 업무영역도 전 경찰 분야로 확대했다. 경찰은 중장기적으로 전체 경찰의 10%를 여경으로 충원할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2011년 기준 서울지방경찰청 23개소 중 여성유치인보호관이 배치된 곳은 11개소에 불과했다. 서울청 측이 구체적인 수치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최근 확인 결과 여성유치인보호관 배치는 2011년에 비해 다소 늘어났다. 하지만 여경 배치가 늘었음에도 여전히 경찰에 의한 여성 인권 침해는 끊이지 않고 있다.


상명하복 경찰조직…알몸수색 등 여경 몫 
상습적 성범죄 노출…간부급 11명에 불과


A씨는 지난해 여경으로부터 브래지어 제출을 요구받았다. A씨를 포함한 5인은 세월호 집회에 참석했다 서울 동대문경찰서로 연행됐다. 이들은 유치장 입감 당시 이 같은 요구를 받은것이다. A씨는 “속옷을 입지 않은 상태에서 남자 경찰로부터 조사를 받아 내내 수치심을 느꼈다”며 “경찰 연행은 처음이라서 추가적인 불이익을 당할까 항의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속옷을 탈의한 상태로 40시간 정도 유치장에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유치장 수용 과정에서의 브래지어 탈의 조처는 규정 위반이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여성단체들은 “여성의 성적 수치심을 이용한 불법적인 조사”라며 동대문경찰서장의 징계를 강하게 요청했다. 논란이 커지자 경찰은 내부감찰을 벌였다. 감찰 조사에서 C여경은 “입감을 위한 신체검사 과정에서 와이어가 있는 브래지어의 경우 자해·자살의 위험이 있으므로 속옷을 탈의하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이후 동대문경찰서 측은 “수치심을 안겨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재발방지와 관련자 책임을 묻기 위해 조사 중”이라고 전했다.

‘여성전용유치장’ 서울 내 0곳

여경이 있음에도 여성 인권이 침해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상명하복의 경찰조직에서 여경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라고 지적한다. 여경이 앞장서 여성에게 속옷 탈의를 요구하고 알몸 수색하는 등 수치심과 모멸감을 주는 경우도 있다.


경찰은 2008년에도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현행범으로 체포된 여성들에게도 브래지어 탈의를 강요해 문제가 됐었다. 대법원은 이러한 경찰 행위를 위법으로 판결한 바 있다. 대법원은 2013년 김모씨 등 여성 4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위자료 청구 소송에서 각 150만 원씩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한국시그네틱스지회 여성조합원 7인은 2002년 여경으로부터 알몸수색을 당했다. 경찰은 여경에게 이들의 온몸을 만지도록 시켰다. 심지어 생리 중인 한 여성에게는 피가 흐르는데도 불구하고 발가벗은 채로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게 했다.


남녀를 한 공간에 유치시키는 문제도 시정되지 않고 있다. 경찰청은 2012년 여성전용실을 만들겠다고 알린 바 있다. 남녀 공간을 분리하지 않아 발생하는 여성의 수치심을 줄인다는 취지에서다. 특히 개방형인 유치장 화장실은 냄새와 소음 등으로 유치인의 인격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받았었다. 당시 경찰청은 “향후 5년간 1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시설 개선을 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또한 “인권 친화적 유치장 조성을 위한 개선안이 반영되면 여성 유치인의 권익보호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줬다. 하지만 서울청 23개 유치장 중 여성전용 유치장이 마련된 곳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여권 신장 나설 간부급 부재

여경의 수는 해마다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여경도 경찰 내에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지난 5월 후배 여경을 상습 성추행한 혐의(성추행)로 여의도지구대 소속 김모(51)경위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 경위는 약 2개월간 순찰차 안에서 같은 팀 소속 후배 여순경의 허벅지를 수차례 만진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예쁘게 생겼다. 같이 자자”고 말하는 등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혐의를 받았다. 당시 김 경위는 혐의를 전면 부인하면서도 피해자에게 ‘미안하다. 용서를 구한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소속 경찰서 여경 50여명은 영등포경찰서 수사과에 엄벌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경찰관 성범죄가 발생하자 경찰은 이달부터 전국 경찰서 여경 성고충상담관을 통해 조직 내 성범죄 발생 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다. 대상은 채용 5년 미만의 여경이다. 경찰은 이번 성추행, 성희롱 경험 유무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해 성범죄 여부가 드러날 시 해당 경찰관에 대한 감찰 및 전출 등 인사조치를 취한다는 방침이다.


강신명 경찰청장도 “성범죄와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데 대해 유감”이라며 “기본적으로 비위행위자에 대해 불관용 엄벌주의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원칙적으로 파면, 해임 등 엄벌주의를 기본으로 하되 사전 교육과 예방 조치의 필요성을 고민하고 있다”며 “사안별로 연령이나 기능에 따라 맞춤형 교육을 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여경의 권리를 신장시킬 수 있는 간부급의 부재를 문제로 꼽는다. 현재 총경 이상의 경찰 간부는 11명에 불과하다. 경찰청장 바로 아래 계급인 치안정감에 여성 최초로 올랐던 이금형 전 부산경찰청장도 지난해 말 퇴임했다. 경감 이상 관리자도 경정 90명과 경감 377명을 합해 500명이 채 되지 않는 실정이다. 반면 경위는 1448명, 경사는 3148명, 경장은 2773명, 순경은 2501명이다.


한 여경은 인터뷰에서 “조직 내 여경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리더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여경의 권리 신장 등을 위해 나서주는 선배 여경이 필요하지만 여전히 남성 비율이 높은 경찰 내에서 다들 나서기를 꺼려하는 분위기”라고 속내를 전하기도 했다.

chocho62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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