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세기에 활약한 통일신라의 해상왕 장보고(張保皐,?〜846)는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동아시아의 바다를 통해 한·중·일 삼국의 무역을 주도하며 교역범위를 인도·이슬람까지 확대한 ‘바다의 왕자’였다.
그는 한반도(신라)를 국제무역과 물류 중심의 해양부국으로 만든 글로벌 리더이자 탁월한 국제감각을 바탕으로 바다를 부의 원천으로 인식한 선각자이기도 했다.
또한, 그는 정치적 수완과 상인적 능력의 강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재당 신라인과 재왜 동포들을 조직화해 모든 시스템을 장악할 수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미국의 대학자인 랴이샤워도 장보고를 ‘상업제국을 건설한 위대한 무역왕’으로 높이 평가했다.
최근 대한민국은 해양수산부를 폐지했다가 다시 부활시키는 시행착오를 겪었고, 우리의 조선·해운산업은 국제경기 하락과 맞물려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와중에 임기택 부산항만공사 사장이 한국인 최초로 ‘세계 해양 대통령’이라 할 수 있는 국제해사기구(IMO)의 사무총장에 당선되는 쾌거를 이루었으니, 메르스 사태와 국가적 가뭄에 풀 죽어 있는 국민에게 단비 같은 낭보(朗報)라 하겠다.
임기택 당선자는 지난 2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격차를 줄이면서 전체적으로 화합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사회 기구를 이끌도록 하겠다”고 당선 포부를 밝혔다.
IMO는 유엔 산하 전문기구로 전 세계 해운·조선업 기술과 안전규범을 비롯해 해양환경 보호와 해상교통 정책을 총괄한다. 한국은 2011년 첫 번째 도전에서 2표밖에 얻지 못한 아픈 기억이 있다.
그러나 지난달 30일 영국 런던 IMO 본부에서 치러진 선거에서 임기택 후보는 ‘함께하는 항해(A Voyage Together)’라는 슬로건을 걸고 선진 유럽 중심의 해운질서가 아니라 후발주자들도 배려하는 IMO를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사무총장 선거는 피를 말리는 대접전이었다. 한국을 비롯해 덴마크, 필리핀, 케냐, 러시아, 키프로스 등 6개국 후보가 출마해 5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40개 IMO 이사국 중 26표를 얻어 당선됐기 때문에 무엇보다 자랑스럽다.
한국은 국제기구 진출 분야에서 수십 년간 많은 노하우를 쌓았다. 임 당선자가 내년부터 업무를 맡으면 2003〜2006년 활동한 고 이종욱 WHO(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 한국인의 긍지를 살린 반기문 UN(국제연합) 사무총장에 이어 국제기구 수장으로 활동하는 세 번째 한국인이 된다.
임 당선인은 IMO 사무총장 출마를 결심한 계기에 대해 “(내가) 한국해양대 항해과를 졸업한 마도로스(외항선원) 출신이다. 수년간 선원생활을 하며 여러 나라의 항만 당국과 해운 당국 움직임을 관찰했고, 우리 정부에서도 활동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이번 선거 결과는 해양수산부와 외교부의 ‘협업외교’의 성공적 모델”이라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중남미 순방을 계기로 중남미 세력을 우리의 지지기반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게 선거 전략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하며, 당선의 영광을 정부의 협업외교와 대통령에게 공을 돌리는 겸양지덕(謙讓之德)을 보였다.
부창부수(夫唱婦隨)라 할까. 윤병세 장관은 “외교력뿐 아니라 후보자의 능력 및 해운조선 분야에 대한 한국의 기여 등 삼박자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하며 임 당선자의 IMO에 대한 전문성, 친화력, 지명도를 칭찬했다.
이처럼 임기택 IMO 사무총장 당선의 원동력은 국민의 성원(民)과 정부의 지원(官), 그리고 임기택이라는 인물(人)이 삼위일체가 된 ‘창조 외교’의 성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 세계 각국이 바다 영토와 해양자원, 그리고 해외시장 확보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지금, 1200년 전 해상왕 장보고가 보여준 동북아 해상무역로를 개척했던 해양개척정신과 도전정신, 진취적 기상, 그리고 애민정신이 절실히 요구된다.
임 당선인은 장보고가 활동했던 그 시기의 성공비결과 강한 ‘해상리더십’을 되살려 해양산업을 둘러싸고 나타난 지역별·경제수준별 입장차를 좁혀 조화롭게 풀어나가길 바란다. 필요하다면 IMO를 통한 북한과의 해사 협력도 노력해 주길 바란다.
아울러 정부는 한국이 가진 기술과 노하우를 표준화한 뒤 IMO를 통해 다른 나라에서 채용할 수 있도록 해 한국과 세계 해양 산업이 ‘윈윈’ 할 수 있도록 신임 사무총장에 더 많은 성원과 지원을 보내야 한다.
‘다시 우리의 바다를 살려야 한다’는 해양산업인들의 염원 아래 세계의 바다를 우리 대한민국의 터전으로 만드는 ‘창조의 실크로드 바닷길’ 개척에 국민과 해양인, 그리고 정부가 혼연일체 하나가 되어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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