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학과 신설바람

▲<뉴시스>
[일요서울 | 조아라 기자] “통일은 대박이다.”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한마디 이후 통일시대 구축이 핵심 국정과제로 떠올랐다. 지난해 1월 남북 고위급 접촉 이후 남북관계 개선이 급물살을 타면서 통일안보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통일시대 대비 vs 일시적 관심
“장기적 관점에서 학문 역량 강화 필요”


최근 대학가에서 북한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 지난해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면서 대학들이 통일과 북한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드러낸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동안 찬밥 취급받던 북한연구가 다시 활기를 띤다고 반색했다.

활발한 북한연구 선두에 나선 것은 숭실대다. 숭실대는 지난해 4월 학술·연구기관인 ‘숭실평화통일연구소’를 개원했다. 숭실대는 지난해 초부터 ‘한반도와 평화 통일’과목을 교양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에 나섰다. 숭실대는 연구소 개원으로 통일세대 육성과 통일시대 준비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숭실대 관계자는 “통일시대를 살아갈 시민들을 교육하고 길러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통일준비라고 생각한다”며 “남북간 교육격차를 통일 이전부터 최소화할 방안에 대해 적극 연구하는 등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전했다.

‘통일’ 과목 잇달아 개설

건국대도 통일 관련 대학원을 신설했다. 인문학과 통일학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겠다는 기치 아래 지난해 9월 통일인문학 대학원을 개설했다. 통일인문학은 남북한의 사상적 차이, 식민지·분단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문학으로 치유하는 방법을 연구한다. 대학원 개설에 앞서 건국대는 2010년 통일인문학연구단을 출범했다. 건국대 관계자는 “분단과 통일이라는 한국의 특수한 현실을 인문학적 성찰의 과제로 삼고 있는 통일인문학연구단의 출범은 우리의 현실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경희대는 교양교육과정인 후마니타스칼리지에 ‘북한의 이해’ 과목을 신설했다. 성균관대는 대학원 과정에 ‘남북한 관계 연구론’ 수업을 개설했다. 인제대, 대진대, 용인대 등은 통일학부와 통일대학원을 운영 중이다.

일시적 현상 우려

일각에서는 대학들의 이러한 움직임이 일시적 현상은 아닐지 우려한다. 이들은 “대학에서 분단의 현실을 고민하고 통일에 대한 학문적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바람직하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정치적 판단에 의한 일시적 현상이 아닐지 걱정이다”고 속내를 밝혔다.

북한학과는 1990년대 탈냉전 분위기를 타고 신설 붐을 이뤘다. 하지만 현재 북한학과는 고사 상태다. 1994년 동국대 북한학과를 시작으로 명지대(1995), 관동대(1996), 고려대(1997), 조선대, 선문대(1998) 등이 잇달아 학부 과정에 북한학과를 신설했다. 숭실대는 1992년 통일정책대학원을 개설했다.

그렇지만 조선대가 신설 1년 만에 과를 폐지하면서 이후 줄줄이 폐과의 수모를 겪었다. 관동대의 경우 정원의 절반을 채우지 못해 2006년 학과를 폐지시켰다. 선문대는 2008년 동북아학과로 개편했으며, 명지대는 2010년 정치외교학과로 통폐합했다. 숭실대 통일정책대학원은 2006년 사회복지대학원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교육 내용 역시 사회복지 과목 위주로 달라졌다. 현재 학부과정에서 명맥을 잇고 있는 것은 동국대와 고려대 세종캠퍼스 두 곳 뿐이다. 동국대도 2011년 학과 구조조정 등으로 폐과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남북 대학 간 학술교류도 마찬가지다. 2000년대 햇볕정책과 남북 정상회담 등 평화적 기조를 타고 대학들은 북한대학과의 학술교류를 추진할 계획임을 잇달아 밝혔다.

서울대는 2005년 북한 김일성종합대학과 독도 공동연구, 방문강의 등 학술교류를 추진했다. 8·15 민족대축전 대표단 환송만찬장에서 당시 성자립 김일성대 총장은 정운찬 서울대 총장에게 평양 방문을 구두제안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후 어떤 교류가 진행됐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성균관대는 1998년 북한의 고려성균관과 자매결연을 맺었다. 국내 대학으로는 처음으로 북한대학과 결연을 맺어 화제였다. 자매결연을 통해 공동 학술대회나 학생 교류 등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재까지 가시화된 것은 없다. 한국외국어대는 북한 평양외국어대와 학술 협정 초안을 보냈지만 학술교류는 이뤄지지 못했다.

배재대는 비무장지대에 제2캠퍼스를 설립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답보상태다. 삼육대도 전신 ‘의명학교’가 있던 평양에 분교를 세우겠다고 추진했지만 흐지부지됐다.

전문가들은 “북한학 자체는 학문적 가치가 있다”면서도 “그간 대학들이 추진한 학과 신설과 통폐합을 살펴보면 대학이 정치적 흐름을 타고 있는 걸 알 수 있다”고 꼬집었다.

정치적 흐름보다는

관동대는 남북관계에 진전이 없던 2006년 학과를 폐지했다. 선문대와 명지대도 남북관계가 경색됐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사라졌다. 정치적 상황에 따른 남북관계 진전 여부가 학과 존폐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반면 통일이 핵심 국정과제로 떠오르면서 한동안 시들했던 북한학이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해 29명의 신입생을 뽑은 고려대 북한학과엔 190여 명이 지원해 평균 7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전공을 선택한 2학년 학생들 중엔 40명이 북한학과를 지원해 기존 정원을 30명에서 40명으로 늘리기도 했다. 2명씩을 뽑는 석·박사 과정에도 9명, 10명이 지원해 전과는 달라진 인기가 반영됐다. 

전문가들은 “북한학과는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문제에 큰 관심을 보일수록 더 각광받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정치적 상황에 따라 학과가 통폐합 위기를 겪을 수 있는 만큼 정치적 흐름에 휩싸이기 보다는 장기적으로 학문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chocho62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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