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불법정치자금으로 줄줄이 구속됐던 거물 정치인들이 속속 풀려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7월 초 열린우리당 이상수 전의원, 이재정 전의원, 여택수 전 청와대 행정관이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무엇보다 여권 인사의 석방에 대해 야당인 한나라당이 침묵하고 있어 그 속내가 궁금하다.우선 불법 대선자금 32억 6,000만원을 모금한 혐의로 구속됐던 이상수 전의원이 지난 7월 8일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이 전의원은 1심에서 징역 1년이 선고됐었다.또 한화로부터 10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았던 이재정 전 의원도 3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 전의원 역시 지난 8일 벌금형으로 감형됐다.

이재정 전의원은 특히 재판부가 구금일 50일을 60만원 일당으로 계산해 벌금도 내지 않게 됐다.그리고 여택수 전 청와대 행정관도 1심의 징역 1년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으로 석방됐다. 여 전행정관은 롯데그룹으로부터 3억원의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를 받았다. 이어 비록 정치인은 아니지만 여야 정치인들에게 불법자금을 제공한 혐의를 받았던 신동인 롯데쇼핑사장도 7월 23일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신 사장은 대선 당시 여야 정치권에 19억 8,000만원의 불법자금을 제공한 혐의를 받았다. 그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구형받았으나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풀려났다. 재판부는 1심과 달리 2심에 들어서자 불법자금에 관여됐던 여권 정치인에 비교적 관대한 결정을 내리고 있다. 이에 대해 언론은 ‘검은 돈을 받은 정치인에 대해 엄단하겠다’던 재판부가 이럴 수 있냐며 성토하고 있다. 또 ‘여권 인사들을 풀어주는 것이 정치적 계산에 의한 것이 아니냐’고 캐묻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눈길이 가는 곳은 바로 야당인 한나라당의 태도다. 여권 인사가 풀려나던 7월 8일과 9일 모두 한나라당은 이와 관련된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더불어 당내외에서도 여권인사 석방에 별다른 언급이 없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한나라당이 잠잠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당 인사 석방에 야당이 조용한 것은 관대한 판결이 한나라당 출신 거물 인사들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라 분석했다. 실제로 법원은 불법정치자금 판결에서 대체로 1심에서는 무거운 판결로 2심에서는 집행유예 등으로 수위를 낮추고 있다. 야당은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기 위해서라도 괜한 소동을 벌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는 듯하다.그리고 한나라당은 신동인 사장이 석방된 사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는 2심 판결문에서 친분관계 사안을 감안했다는 내용 때문이다. 또 그가 유력 정치인에게 자금을 제공했지만, 본인이 뉘우치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것도 포함된다.

따라서 야당은 이재정, 이상수 전의원 판결과 신 사장 석방이 오는 7월 28일로 연기된 서청원 전의원 선고공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표정이다. 현재 구속수감중인 야권 인사로는 서청원, 최돈웅, 김영일 전의원과 서정우 전 이회창 후보 법률특보 등이 있다. 김영일 전의원은 1심에서 징역 3년 6월에 추징금 11억원이 선고됐고, 580억원을 모금한 혐의의 최돈웅 전의원은 징역 3년이 선고됐다. 서정우 전이회창 후보 특보도 징역 4년에 추징금 15억원, 몰수 3억원이 선고됐다. 서청원 전의원은 한화에서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어 추후 법원의 결정이 주목된다. 또 김영일 전의원도 지난 16일 항소심 첫 공판에서 대선자금을 추가 독촉했다는 삼성 이학수 부회장의 주장에 ‘삼성측에 정치자금을 독촉한 일이 없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김영일, 최돈웅 전의원과 서정우 전 이회창 후보 특보의 경우 불법자금 규모가 크다는데 우려하고 있다. 불법 자금 규모로만 보면 여당 인사와의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만약 한나라당 차떼기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이들에게 관대한 판결이 내려질 경우 여론의 따가운 질책도 부담이다. 즉 법원의 판결에 야당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지 않아 논란이 크게 일지는 않았지만, 김영일, 최돈웅, 서정우 씨는 상황이 다르다는 의견이다. 일단 차떼기로 크게 홍역을 치르고 들어간 만큼 이들의 석방에 언론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또 법원 입장에서도 여권 인사 석방시기였던 지난 한달 간에는 사회적 이슈가 많았던 만큼 여론의 이목이 집중되지 않았다. 하지만 거액의 불법자금으로 사회적 파장을 낳았던 이들이 지금 석방된다면 국민적 비난을 면키 어려울 수 있다. 더불어 김영일, 최돈웅, 서정우씨 석방은 야당 스스로 이야기하고 있는 형평성 상 노 대통령 측근인 안희정, 최도술씨로 이어져야 하는 이유도 있다.

애초에 법원은 불법정치자금에 이례적으로 무거운 판결을 내렸다. 이는 불법정치자금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여론 때문이었다. 또 깨끗한 정치의 기본이 투명한 자금이라는 공감대에서도 비롯됐다. 하지만 법원은 김선일씨 사건과 수도이전 논란, 대중교통체제 파장, 친일규명법 개정 등 복잡한 정치 구도속에서 슬그머니 처벌의 수위를 낮췄다. 따라서 정치권은 법원의 태도 변화를 두고 여러 가지 추측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번 판결이 친노 계열의 여권 거물 인사 석방을 위한 신호탄이라 풀이하는 이들이 많다. 비교적 논란이 일 것 같지 않은 인사부터 시작해 야권 인사 석방 후 결국 노 대통령 측근 인사 석방까지 이를 것이란 내용이다. 하지만 여론은 깨끗한 정치구현을 위해서라도 법원이 여야를 막론하고 사안의 경중으로 엄격한 법적 잣대로 판결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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